사십 년을 넘게 주로 친절했다. 표정은 그리 보이지 않았어도 마음은 항상 친절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게 미덕이라 배웠고, 상대방의 기분을 언짢게 하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라고 지도받았다. 딱히 누구의 가르침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린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그러했다.
더 나아가, 의식주를 제공받았고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사람들 중, 권력의 일인자였던 그분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은 금기시되었다. 평화로운 마을의 지하 괴물이 깨어나지 않고 긴 잠을 자게 하는 가장 최고의 수면제는 친절이었다. 웃는 얼굴과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인사하며 먼저 말을 걸어 분위기를 좋게 하는 것이야 말로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었다.
어린 둥지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친절은 온몸에 배어 뼛속까지 자리 잡은 습관이 되었다. 결국 친절은모두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에 갇혀 버렸다. 지하 괴물을 감당할 자신이 없으니 무조건적인 친절을 만들어내는 친절 공장이 되고 만 것이었다. 기성품처럼 만들어진 친절은 어디서든 팔리는 듯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반짝이는 친절을 장착한 이들은 더 짓밟혔고 더 괴롭힘을 당했다. 친절을 짓밟는 괴물은 더 이상 친절을 먹지 않았다. 사십이 넘어서야 친절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사실 다 자란 성인에게는 그 어디에도 괴물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괴물이라 생각하는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힌 어린 나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괴물을 잠재워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나를 깨워야 했다. 이미 성인이 된 나를 안팎으로 인지해야 했다.
웃는 얼굴에 침 뱉는 사람들이 있었고, 먼저 다가가 도움을 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지 않고, 오히려 가볍게 보며, 무시하고 짓밟는 사람들이 있었다. 겉모습은 괴물 같지만 속은 아무것도 없는 텅텅 비어 있는 그런 사람들. 어린 시절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던 괴물의 정체도 괴물을 가장한 보잘것없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무능한 소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친절은 괴물을 잠재우는 진정제나 수면제가 아니었다. 친절은 보석과 같아서 그것을 알아보고 귀하게 받을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했었다. 만들어진 친절로 누군가를 진정시키고 평화롭게 하는 것은 더러운 아첨과 같다. 친절이 부적합한 사람에게는 침묵으로, 혹은 올바른, 올바르지 않은 상황에 대해 단호하게 설명해야 옳다. 누군가 큰 소리를 낸다 하여, 나에게 상처를 준다하여 두려움으로 주눅이 든다면 무능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와 행동을 두려워하는 것과 같다.
빈 껍데기의 괴물은 자신의 큰 목소리, 큰 행동에 반응하는 사람들로 인해 그들의 몸집은 더 비대해지고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나는 친절한 사람이 되지 않기로 한다. 무의식적인 웃음을 제거하고 말을 아끼며, 덜 착해 보이고, 덜 친절하게 사는 방법을 연습한다.
무엇이 혹은 누군가가 두려워서, 혹은 그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때론 좋은 이미지를 주기 위해 쓰이는 친절은 삼가도록 하자. 아름다운 마음은 더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아껴두자. 귀중한 것일수록 소비적이거나 헤프지 말아야 하지 않은가. 친절은 친절한 사람에게, 감사하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