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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애틀 닥터오 Jan 13. 2023

열정이 싫다

열정 말고 공생


나는 열정이 싫다. 열정은 약한 바닥과 기둥으로 세워진 어설픈 건물 같다. 겉모습은 멀쩡하지만 언제고 무너질 수 있어 사람에게 해가 될 수 있다. 열정은 많은 경우에 있어 경험이 없는 무지한 사람에게 자주 발생한다.


얼마 전, 구글 이메일이 가득 찼으니 관리와 주의를 바란다는 이메일이 왔다. 예전 이메일을 훑어보다 11년이나 된 케케묵은 이메일 하나를 발견했다. 이메일 제목은 ‘New Rising Star Dentist!’였다. 이게 뭐람? 스팸 메일이 아직까지 남아 있나 싶어 열어봤다. 아니었다! 내 손으로 직접 쓴 이메일이었다. 나를 지칭해 ‘새롭게 떠오르는 스타 치과 의사’라고 했던 것이다. 그 이메일에는 별 볼 일 없는 11년 전 이력서가 함께 딸려 있었다. 손이 오그라 들었다. 지금의 나로서는 그 옛날 나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11년 전, 치대를 졸업하고 세상으로 발을 디딛는게 매우 두려웠다. 신분 문제를 감당하며 고용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이력서를 쓰는 족족 낙방이었고,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최대한 화려하게 있어 보이는 것처럼 이메일을 이곳저곳 날리는 일이 고작이었다. 그 덕에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영주권에 볼모 잡혀 노예처럼 일하기는 싫었고, 남편이 졸업할 때까지 2년간 떨어져 지내야 것은 더더욱 싫었다. 현실에서 도피하고 있었던 그때 작성했던 이메일이었다.


지금도 손이 오그라 들고 이불 킥을 하게 만드는 그 이메일의 정체는 내 치기 어린 열정만 가득했다. 게으름, 두려움, 경험 없음을 열정이 가득 담긴 제목 하나로 다 가리려 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인지도. 거짓말로 꾸며진 허울 좋은 치장만 가득한 열정이 그래서 싫다.


혼자 하는 일에 열정이 대단하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런 열정이 그들을 다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열정이 두렵다. 경험 없는 열정으로 가득한 사람들에 섞여 있다 내가 다쳤고, 주변 사람들도 함께 힘들어했던 기억은, 열정에 대한 정의를 바꿔 놓았다.


내가 경험한 열정들은 대략 이러했다.


열정은 두려움이다. 미래를 알 수 없기에 무작정 앞으로 달려가고자 하는 거품같이 마음이 부풀어 오른 것이다. 알 수 없는 곳으로 가는 불안한 마음을 열정으로 가리려고 한다. 두려우니 혼자 갈 수 없다. 불나방을 끓어들이듯 열정에 이끌려 많은 사람들을 모으고 자신의 두려움을 희석시킨다. 열정 속에서 두려움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함께 있으니 두려움은 열정 뒤로 숨어 버리기 때문이다.


열정은 시간이 없다. 바쁘다. 우격다짐으로 모든 일들을 해치워 버리려 한다. 목표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야 직성이 풀린다. 아무것도 가늠할 수 없다. 결과의 끝이 어디인지, 언제인지 알지도 못한 채 달려가다 속도를 주체 못 하고 넘어져 버린다. 뒤 따라오던 모든 이들도 도미노처럼 와르르 넘어져 버린다. 그 열정은, 그 목표는 더 이상 이룰 수 없게 된다.


열정은 부자연스럽다. 반대에 부딪히고 방해가 많다. 타이밍이 맞지 않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한 사람의 우격다짐으로 돌격하는 꼴이다. 돈을 목표로 하는 사업의 열정, 사이즈를 부풀리기 위한 기업의 열정, 신자를 늘리기 위한 종교의 열정. 이 모든 열정들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불편하다. 불편한 열정과는 최대한 멀어지고 싶다.


열정은 교만이다. 열정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 옆도 보이지 않는다. 열정은 열정으로 가득한 나만 보일뿐이다. 함께 가는 이들이 누구인지 신경 쓰지 않는다.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수많은 희생을 간과한다. 그리고 모른다. 자신의 치기 어린 열정이 만든 그들의 피 흘림을. 뜨거움만 있는 불과 같은 열정은 자신의 이기심과 교만으로 함께하던 사람들, 그리고 자신까지 다 태우고 나서야 소진된다.


함께 하는 사람들의 보폭과 그들의 생각을 함께 나누며 가야 한다. 열정에 데인 나는 느리게, 천천히, 보폭을 맞추고, 자세를 낮춰 눈높이를 맞추어 함께 가는 봄날의 햇살 같은  따뜻한 공생을 원한다.


올해는 열정 말고 공생의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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