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모든 것
나는 모태교인으로 태어나 오랫동안 식사 기도의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게 항상 문제였다. 밥을 먹기 위해 자리에 앉으면 자동으로 기도하는 습관은 언제 어디서고 나타난다. 사람이 많으나 적으나, 집이나 밖이나, 편한 곳에 있으나 불편한 곳에 있으나 기도를 위해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는다. 신앙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숭고하고 거룩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습관으로 만들어진 기도 내용은 식상했다. 영혼이 들어가 있지 않은 10초도 안 되는 짤막한 이기적인 기도일 뿐이었다.
‘이 음식을 먹고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해 주세요.’
나트륨이 많이 들어간 라면을 먹을 때도, 치즈가 옴팡지게 들어간 탄수화물 덩어리 피자를 먹을 때에도, 고온에 여러 번 튀긴 고칼로리 야밤 치킨을 먹을 때에도 기도의 내용은 변함이 없었다. 건강하지 않은 것을 먹으면서도 그 짧은 영혼 없는 이기적인 기도를 통해 건강해 지기를, 불필요한 살이 찌지 않기를, 소화가 잘 안 되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배가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기도는 대체 하나님이 들어주실지 의문스럽다. 안 들어주셔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식사 기도 내용에 회의를 느끼던 여러 날이 지나고 있었다. 딱히 기도 내용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깊은 고민도 하지 않던 어느 날이었다. 교회에 은퇴하신 어떤 목사님이 이사를 오셨다. 새 가정 환영 비슷한 모임으로 여러 교인 분들과 식사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대표로 그 목사님이 식사 기도를 하셨다.
“하나님, 이 식사에 차려진 모든 음식이 이곳에 오기까지 적당한 물과 햇빛과 영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음식을 위해 씨를 뿌려 가꾸고, 거두어 먼 길을 운반한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땀을 기억하게 하여 주세요. 우리가 주께서 주시는 자연의 풍요로움을 항상 감사하게 하시고, 이 음식이 있기까지 보이지 않는 손길과 그분들의 노고를 감사하게 하여 주세요. 그분들의 경영에 복을 주셔서 날로 번창하게 하시고 안팎으로 건강하게 하여 주세요.
식량 문제가 세계 이곳저곳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자리에서 함께 음식을 나누게 하신 것은 크나큰 은혜입니다. 우리가 받은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우리가 먹은 만큼 나누고 봉사하게 하여 주세요. 다시 한번 음식에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감동과 충격이었다. 그렇다. 식사기도는 이러해야 했다. 음식을 먹고 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해 달라는 얄팍한 이기적인 기도가 아니라, 이 음식이 오기까지 공짜로 수여된 햇빛과 눈, 비와 바람, 번개와 공기가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씨 뿌리는 손과 발, 그분들의 노고와 땀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했다.
이 기도를 마음에 깊이 새긴 다음부터는 내 앞에 놓인 음식이 다르게 보였다. 아무리 하찮은 음식이라도 그 안에 담긴 귀한 손길들이 떠올려졌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 있든지 그분들이 잘 되기를 기도했다. 식당에 가서는 내 돈을 내고 먹는 음식일지라도 음식을 준비하는 주방장들과 서버들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감사의 마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차도를 달릴 때, 내 앞을 가로막는 덩치 큰 느림보 트럭들에게도 더 이상 짜증을 내지 않게 되었다. 그 트럭 운전사는 나를 입히고 먹이는 물건들을 싣고 동서남북으로 분주히 오가는 고마운 사람이 아닌가.
기온 이상으로 전 세계가 식량난의 조짐이 이곳저곳에서 보인다. 아보카도도 더 이상 먹을 수 없다는 기사를 보았고, 바나나도 몇 년 안에 그 씨가 마른다고 한다. 그뿐이랴. 쌀과 빵마저도 이제 식탁에서 자주 볼 수 없는 날이 곧 올지도 모른다. 미래에는 없는 대로 또 적응해서 살겠지만, 지금 누릴 수 있는 먹거리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는 식사 기도가 즐겁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하나의 작은 쌀알에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정성이 보인다. 먹는 것뿐 아니라 내가 살아 있는 지금의 나의 존재마저도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의 결과라 생각하니 내 몸이라 하여 마음대로 굴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겸허해진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러하지 않을까. 그 어떤 것 하나도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없다. 누군가의 시간과 노력이 아니면 존재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오늘도 나를 위해 쏟아낸 누군가의 시간과 배려, 관심과 도움으로 숨 쉬고 있음에 감사하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