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나 Aug 21. 2021

흙수저 공무원 부부의 상가주택 건축기 8

-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 누구든 도와주고 싶어”


“선아야..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엄마가 잠긴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둘째를 아기띠에 매고 하원한 큰아이를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리고 있을 때였다.


외할아버지는 40년생으로 70세가 넘는 연세에도 공장에 경비로 근무하시며 명절 때마다 근육 자랑을 하시던 분이었다. 팔굽혀펴기 20개는 거뜬하다며 본인의 정정함과 건강함에 대해 이야기하며 늘 본인 걱정 말라하시던 분이셨다. 그런 할아버지가 감기가 걸리시더니 감기가 잘 낫지 않으셨다. 감기가 오래되니 폐렴이 되고 폐렴이 오래되자 폐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 몇 달 사이에 믿을 수 없을 만큼 할아버지는 야위어 갔다. 몇 달만에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야위고 양팔에 볼록 솟아있던 알통은 앙상한 뼈에 달라붙은 흐물흐물한 가죽이 되어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지난여름 한고비를 넘기고 요양원으로 오시고 나서 조금 상태가 좋아지는 듯하셨지만 식사를 제대로 못하시니 날이 갈수록 기력을 잃어가셔서 걱정이라고 엄마가 말씀하신 게 며칠 전이었다.  


   

한 두 달 전쯤 단팥빵을 사들고 요양원에 갔다. 나도 몇 달만의 방문이었다. 야위어진 할아버지 얼굴을 보자 눈물부터 나왔지만 얼른 눈물을 훔치고 할아버지 좋아하시는 단팥빵을 사 왔다고 드셔 보시겠냐고 했더니 드신단다. 나는 단팥빵의 빵 껍질을 모두 떼어내고 팥만 조금씩 작은 티스푼으로 입에 넣어드리니 맛있으신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시며 희미하게 웃으신다. 밀가루를 다 떼어내 팥만 남은 그 작은 덩이도 반을 못 드시고 손을 내저으셨다. 입을 닦여드리고 빨대로 물을 한 모금 드시더니 앉아계시다 이내 눈을 감으신다. 그러곤 금방 잠에 빠지셨다. 나는 간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남은 팥을 종이에 싸 냉장고에 넣어두고 간병인 아저씨에게 일어나시면 간식을 좀 더 드시게 해달라고 부탁의 말씀과 여분의 단팥빵을 아저씨 손에 쥐어드렸다.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뿐이었다. 그리고 그게 나와 할아버지의 마지막이었다.     


놀이터 벤치 앞에 멍하니 서서 눈물을 뚝뚝 흘리다 아기띠에 매달린 둘째의 버둥거림에 정신이 들었다. 신랑에게 전화를 하고 놀이터에서 더 놀겠다며 생떼를 부리는 첫째를 겨우 달래서 집으로 들어왔다. 아이 둘 엄마는 장례식장에 오래 있을 수도 없다. 엄마가 없으면 잠을 못 자는 아이 둘을 재우러 집에 다시 오려면 얼른 준비를 하고 너무 늦기 전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나는 할아버지가 떠나시는 길을 배웅하는 것보다 아이들 재우는 일이 더 중요한 거냐며 그런 생각을 먼저 한 나 자신이 너무 미워 집에 들어오자마자 소파에 앉아 엉엉 울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슬픈 건지, 이런 상황에 아이들 잠자리 걱정이나 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나서 우는 건지,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9개월짜리 둘째보다 더 아기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엄마가 우니 첫째도, 둘째도 덩달아 나한테 매달려서 운다. 나는 그 상황이 더 힘들어 울다가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퇴근한 신랑이 집에 오자마자 아이들 짐을 간단히 챙겨서 시댁으로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유난히 추웠던 2018년 겨울 아이들 사진 기록. 코로나가 없을때인데도 마스크를 쓰고 등원하던 큰 아이.


2018년 12월 8일. 유난히 춥던 날이었다. 장례식장엔 우리 가족과 이모네 가족, 외삼촌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조용히 인사드리기는 좋았다. 할아버지 가시는 길 배웅을 잘 못 해 드려 죄송하다고, 단팥빵 같은 거 말고 좋고 맛있는 음식 사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할아버지가 주신 용돈 가지고 나 갖고 싶은 것 사고 먹고 싶은 거 다 사 먹었으면서 나는 할아버지 용돈 한번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계속 죄송한 것만 떠올라 죄송하다는 말이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아이 둘 엄마인 34살 손녀는 아이들 때문에 마음껏 울지도 못한 눈물을 장례식장에서 다 쏟아내었다.     


3일간의 장례를 마치고 발인 당일에도 둘째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날씨가 추웠고 산소가 멀어서 둘째를 데리고 갈 수가 없었다. 모든 장례절차가 잘 끝났고 우리 집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기에 낮잠에서 막 깬 둘째를 데리고 식당으로 갔다. 3일간의 장례로 모두 지쳐있었지만 또 홀가분한 모습이기도 했다.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셨기는 하셨지만 엄마, 이모, 외삼촌 모두 마음의 준비를 조금씩 해 왔기에 보내드리는 것도 마음을 정리하는 것도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힘든 과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


20년도 전에 돌아가신 친할아버지는 매우 정정하셨는데 뇌출혈로 쓰러져 많은 기억을 잃어버리고, 몸도 가누지 못하는 할머니의 병시중을 혼자 다 하셨다. 비록 할머니의 흐릿한 정신은 또렸해지지 못했지만 일어나 앉지도 못하던 할머니를 매일 부축해 운동을 시켜 가며 걸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기적적인 일이었다. 그 일을 손수 혼자 해오신 할아버지께서 맛있게 점심식사를 드시고 여느 때처럼 할머니와 동네 산책을 다녀오신 뒤 소파에서 낮잠을 주무시다가 영원히 눈을 뜨지 못하셨을 때 우리 가족은 모두 너무 힘들어서 아주 오래도록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할아버지가 떠난 그 자리를 맴돌며 서성거렸다. 준비되지 않음 죽음은 남아있는 자들에게 그 존재에 대한 부재가 실감 나지 않아 자주 지금 이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되지 않곤 했다. 20년도 전에 암으로 돌아가신 외할머니 곁에 묻힌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를 만나서 삶이 아름다웠노라고 말하셨을까.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추어탕 집에서 추어탕을 먹는데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옆에 있던 이모가 왜 이리 못 먹냐며 내 앞에 앉아있는 둘째를 받아서 이모 앞에 앉혔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부동산 아주머니의 전화였다. 오늘 오후에 집을 보러 올 수 있냐는 전화였는데 2시간 후에쯤 가능하다고 하니 그때 오신다고 한다.


통화를 끝내고 나니 이모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너네 이사 가니?” 정리도 못하고 나온 집을 치워야 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허기가 져서 추어탕 국물을 마시며 우물우물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아랫집 아주머니 이야기부터 부동산에 가게 된 이야기, 땅에서 구원의 빛을 본 이야기, 그리고 돈 문제로 포기했다가 결국은 땅을 사게 된 이야기까지. 긴 이야기였지만 짧은 이야기였다.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이야기.


이모는 처음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도 했고 그 큰일을 어떻게 그렇게 대책 없이 저질렀는지에 대한 놀람이었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너희 집을 지을 돈이 있니?” “일단 현재 아파트를 팔고 남은 대출금을 갚고 나면 7천만 원 정도가 남을 것 같은데 나머지는 오빠랑 나 연금대출이랑 행정공제회 대출, 마이너스 통장까지 최대한 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 아직 집을 짓는데 들어가는 돈이나 이런 거에 대해서는 안 알아봐서 전혀 감이 안 오긴 해.” 이모는 더 놀란 듯했다. 평생 공무원 생활을 이어온 이모였다. 공무원 부부의 빤한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우리가 계약금 천만 원도 없는 상황에서 2억짜리 땅을 샀다고 하니 놀랐을 것이고 거기다 상가주택을 짓는다면서 그 돈을 모두 대출로 충당한다고 이야기하니 더 놀랐을 것이다.     


밥을 다 먹고 이모는 우리가 구입한 땅을 보고 싶다고 했다. 며칠 동안 잠도 못 자서 피곤할 텐데 다들 그 땅이 어떤 땅인지 궁금해했다. 이모, 외삼촌, 부모님, 언니네 가족까지 온 식구가 모두 그 땅 앞에 모였다. 엄마는 지난번에 한번 보러 온 적이 있지만 아빠도 처음 본 땅이었다. 모든 일들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진행되어서 누구와 이런 사안에 대해 상의할 시간도 없었다. 시부모님과 부모님 외 다른 가족에게 구체적인 이야기를 한 것도 처음이었다.


 땅을 둘러본 가족 모두 그 땅을 마음에 들어 했다. 초등학교 바로 앞 코너인 것도, 동네의 변두리지만 외진 곳은 아니라는 것도, 조용하고 깨끗한 주변 환경도 어느 하나 부족한 게 없어 보이는 땅이라고 한 마디씩 했다. 그러나 마지막엔 결국 자본도 없이 땅을 사고 대출에 의존해서 모든 걸 진행해야 하는 우리의 상황에 대한 우려와 걱정으로 근심 어린 얼굴들이었다. 정작 이 일을 벌인 우리 부부만 태평했다. 태평했다라기 보단 이미 일은 저질렀고 걱정해봤자 나아지는 것이 없었기에 애써 태평해 보이려 애썼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저녁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이모네가 우리에게 1억을 빌려준다는 전화였다. 천만 원도 아니고 1억이라니. 믿기지 않아 재차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땅도 대출로 산 마당에 아무리 모든 대출을 끌어 모은다고 해도 이렇게 자본이 없는 상황에서는 2층짜리 상가주택을 짓는 것도 어려울 수도 있다는 이모의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실제로 건축업자, 시공업체들과 통화를 하면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실제로 이모한테 빌린 돈을 포함해서 모든 대출을 동원한 돈으로는 3,4층의 건물은 택도 없었고 2층짜리 상가주택을 짓는 자금도 버거웠다.     


땅을 사고 집을 짓는 과정의 한 단계씩을 건너면서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들에 힘겹기도, 모두 포기하고 싶기도 했지만 우리를 믿어주었던 양가 부모님과 이모, 이모부를 생각하며 다시 힘을 내 끝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이모는 나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것이 내가 부담될 수 있으니 엄마를 통해 돈을 빌려주겠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마침 여유자금이 생겨서 빌려 줄 수 있는 거라고 부담 가지지 말고 받으라는 이야기까지 더해주었다. 그러나 이모가 3년 뒤에 그 돈이 필요한 사안이 있어서 그전에 갚으면 좋겠다고. 3년의 기한 동안 어떠한 담보나 제약사항 없이 1억을 빌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었다.


우리는 운이 정말 좋았다. 부모님도 아닌 이모가 그렇게 큰돈을 빌려준다는 건 사실 아주 희박하고 낮은 확률의 가능성이다. 이는 돈이 많고 풍족해서가 아닌 어떤 크나큰 마음의 일이라는 것을 돈이 없는 나도 알고 있었다.     

일은 내가 저질러 놓고 이모에게, 또 엄마에게까지 마음의 짐을 지어주는 것 같아 미안했다. 너무 미안해서 도움을 받지 않겠다고 이야기할까 하는 생각을 아주 조금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미안하고 고맙고 염치없었지만 절실히 필요한 도움이었기에 뿌리칠 수 없었다. 사실 어디든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고 싶었지만 양가 부모님도, 형제들에게 손을 내밀 상황이 아니었기에 우리가 벌인 일 우리가 끌어안고 가보자고 했던 것이었다. 막막하기만 했던 자금 상황에서 기대도 하지 않았던, 아니 생각조차 못했던 이모의 도움의 손길은 그동안 꽉 조여왔던 내 숨통이 트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엄마와의 통화를 끝내고 이모에게 문자를 보냈다. 전화를 할 낯이 서지 않았다. 이모, 이모부에게 정말 고맙다고. 그냥 받을 수는 없으니 2%의 연 이자를 드리겠다고. 그리고 3년 안에 돈을 꼭 갚겠다고. 이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이모에게서 이내 답장이 왔다.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 누구든 도와주고 싶어”

   

그 문자를 읽자마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다. 집안 형편에 맞춰 대학에 가면서도 입학금이 없어 입학할 때 첫 등록금을 대준 것도 이모였다. 그 뒤로는 학자금 대출을 해서 대학을 다녔고 휴학을 하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몇 해를 학자금을 갚았다. 남은 학기는 주간에는 일을 하고 야간으로 수업을 들어가며 겨우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친구들이 해외로 유학을 가고, 각종 동아리 활동, 대학 생활로 20대를 보낼 때 나는 새벽기차를 타고 공무원학원에 다니며 시험을 준비하고, 23살에 이른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첫 발령받은 읍사무소의 담당 이장님은 나에게 손녀 같다며 참외며 무, 배추 등을 수시로 챙겨주시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 인정해주길 바란 건 아니지만 이모의 그 말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들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열심히 살아온 내가 대견했고 앞으로 더 열심히 살고 싶었다. 지금도 나는 삶에 지치거나 내 안의 게으름이 올라와 모든 것이 귀찮고 무력해질 때 이모의 그 말을 생각한다.


“열심히 사는 사람을 보면 누구든 도와주고 싶어”    

작가의 이전글 흙수저 공무원 부부의 상가주택 건축기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