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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 Aug 21. 2021

흙수저 공무원 부부의 상가주택 건축기7

- 떡진 앞머리에 숱이 없는 멍한 여자사진

한동안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사는 도시의 부동산 정체기이기도 했고 집값도 하락세였다. 집이 팔리지 않으면 집을 지을 수 있는 자본이 전혀 없으므로 집이 팔려야 다음 단계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매일 인터넷에 집에 대한 사진과 건축 관련 정보들을 캡처하며 사진첩만 채워갔다. 돈이 없으니 더 이상의 진도를 나갈 수 없었다. 사실 내가 해야 할 일들의 순서를 모르겠다는 게 진실일지도 모르겠다.


 넘쳐나는 정보와 자료들은 더 문제였다. 그 넘쳐나는 자료들은 모두 자본에 기반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자본이 많이 투입된 건물은 그 집만의 특유의 아우라를 뿜으며 그 건물 자체만으로도 빛이 났고 자본이 적게 들어간 건물은 뭔가 부족해 보였다. 자본주의 사회의 실태를 보여주는 한 단면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최소한의 자본으로 좋은 집을 짓는 것이 목표였지만 자료를 찾아볼수록 최소한의 자본으로 좋은 집을 짓기란 어렵고 어렵고 또 어려운 것이었다. 어떤 욕심을 얼만큼 버리고 덜어내느냐가 관건이었다. 우리의 자금 상황을 현실적으로 파악하고 그 안에서 집을 지을 계획을 세우는 것이 그 당시에 내가 가져야 할 가장 필요한 태도였다.     

넘쳐나는 온라인 자료들을 무작위로 수집해 캡쳐했던 사진들

인터넷에 홍수처럼 넘쳐나는 자료들을 보다가 이건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도서관에 가서 관련 도서를 빌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도서대출증이 없다. 둘째를 낳기 전에 큰아이와 가끔 가던 도서관이었는데 둘째를 낳고 나서는 한 번도 도서관에 간 적이 없어서인지 대출증을 어떻게 했는지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게 그렇게 급한 일도 아닌데 어떤 생각이 들면 바로 해야 하는 성격 탓에 급한 마음에 대출증은 새로 만들면 되지 싶어 씻지도 않고 8킬로가 넘는 둘째를 아기띠에 둘러 매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에도 역시 자료는 넘쳐났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차이 그뿐이었다. 우린 정보의 홍수에 파묻혀 살고 있음을 매일 실감한다. 상가주택, 건축, 집짓기, 설계 관련 도서 5권을 집어 들었다. 책 선정 기준은 사진이 많고 초보 건축자가 알아야 할 필수 사항 또는 기본지식이 수록된 것이다. 이런 책들은 왜 이렇게 무거운 거냐며 혼잣말을 되뇌며, 잠이 와서 짜증을 부리는 둘째를 달래며, 양손에 책을 들고 나는 식은땀이 줄줄 났다.     


대여를 해주는 사서 앞에 가서 책을 얹어놓고 대출증을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하니 요즘은 모바일 대출증이 바로 발급된다며 자기 앞에 앉으라고 했다. 간단한 인적사항을 적고 카메라가 달린 컴퓨터를 쳐다보라기에 쳐다보았다니 사서는 금세 ‘다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사서의 말대로 모바일 도서대출증이 정말 간단히 바로 발급된 것이다. ‘찰칵’ 소리음도 없이.    


그래서 내 모바일 대출증은 떡진 앞머리에 숱이 없는 멍한 여자 사진이다. 도서관에 갈 때마다 모바일 대출증을 내밀며 나는 혼자서 괜히 얼굴이 달아오른다. 그렇게 발급한 대출증으로 힘들게 빌린 두꺼운 책들은 식탁에 쌓아놓고는 몇 장 펼쳐보지도 못하고 반납기일이 지나고 나서 반납했다. 반납할 때도 아기띠를 매고 두꺼운 책을 양손으로 들고 땀을 삐질거렸지만 사진은 찍지 않아 다행이었다. 책 내용이 뭐였는지 제목이 뭔지 전혀 기억도 나지 않는다. 1살, 4살 남자아이 둘을 키우며 식탁이나 소파에 앉아 책을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는 전혀 없고 밤이면 밤마다 아이들을 재우다 지쳐 쓰러져 자기 일쑤이던 나날들이었다.


 그런 날들 사이에서 그저 상상만으로 근사하게 지어질 상가주택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보내며  시기를 버텼다. 나에게 있어서  시기는 버틴다는 말이 적당했다. 그러나 꿈이 있었기에  시기들은 힘들면서도 나에게 어떤 반짝거림의 순간들이었다. 잠투정이 심하던 둘째를 카시트에 태워 주택이 많이 지어진 동네를 이리저리 돌며 예쁘게 지어진 집들을 구경하며 사진에 담던 날들, 둘째를 업고 안고 업체에 전화를 하며 집안을 돌고 돌던 날들이 그땐  고되고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한 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는 것이었다.


헛된 날들은 없다는 어디서 주워들은 말이 가슴에 알알이 박혀 조금 더 힘을 내어 살고 싶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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