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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 Aug 10. 2021

흙수저 공무원 부부의 상가주택 건축기6

“아늑하고 깨끗한 10층 집이 있습니다”


매일 청소하며 이부자리를 정리하던 때의 안방

집을 내놓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보러 오겠다고 부동산에서 여러 번 연락이 왔다. 그때마다 나는 10분 만에 깨끗한 집 만들기 신공을 펼쳤으며 우리집을 팔게 되는 아쉬움과 우리집의 좋은 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랫동안 살려고 했던 집이라 리모델링하며 마루와 화장실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보일러도교체하고 인덕션도 새로 했구요. 오후 내내 해가 들어와서 겨울엔 정말 따뜻하고 여름에도 시원해요. 정말 오래 살고 싶었는데 저희도 갑자기 이사가야할 어쩔 수 없는 일(이상한 아랫집)이 생겨서 너무 아쉬워요. 이 집에 이사오고 아이도 둘 낳고 좋은 일이 많았어요. 이 집을 사시는 분에게도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거예요.”


아랫집에 대한 단 하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만 빼고 모두 진실이었고 진심이었다. 이 집은 정말 좋은 집이지만 (아랫집 때문에)예비 매수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여러 번 부동산에서 매수자들과 집을 보러 왔다. 당연히 집이 쉽게 팔리지는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부동산에 집을 내 놓은지 얼마되지도 않았지만 이상한 조급증이 올라왔다. 아니 그 당시엔 당연한 조급증이었다. 빨리 집을 팔아야 집을 지을 돈이 조금이라도 마련되니, 집이 빨리 팔리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었다.


땅을 매매 하고 2주쯤이 지나 부동산에서 매수자가 집을 보러오겠다고 연락이 왔다. 당시 나의 하루 일과는 언제든 매수자에게 단정한 집을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매일 아침을 청소로 시작했기에 청소를 마치고 아이 낮잠을 겨우 재운 뒤였다. 60대중반으로 보이는 아저씨와 30대 초반의 아들이 부동산 아주머니와 함께 집을 여기저기 둘러봤다. 집안 곳곳을 여러 번 둘러 본 부자는 집이 관리가 아주 잘되어있고 들어오면 손댈게 하나도 없겠다며 아주 마음에 들어했다. ‘역시 모든 건 하늘의 계시였어. 땅 사고 집도 이렇게나 빨리 거래 되다니. 감사합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올레를 부르며 내가 가진 우리집의 애정에 대해 TMI를 늘어놓았다.


집에가서 상의를 해보고 연락주겠다고 했지만 내 마음은 이미 우리집은 그 부자 소유로 바뀌어있었다. 그만큼 우리집에대한 호감을 표시했고 부동산 아주머니도 나에게 눈짓으로 잘 될 것같다는 사인을 계속 보냈다. 그 부자가 집을 보고 난 뒤 얼마 있다가 부동산 아주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부자의 조건은 매매가를 500만원 절충하는 것이었다. 우린 지금 100만원도 아쉬운 상황이었지만 500만원을 더 받겠다고 일억천오백만원을 날릴 순 없었다. 언제 또 올지모르는 기회였다. 그러겠다고 했다. 급한건 우리였다. 우리는 지금 밀당같은 것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150만원의 가계약금이 바로 입금되었다. 신랑과 나는 그날 저녁에 축배를 들었던가. 축배는 들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치킨을 시켜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 아파트에대한 대출금을 갚고나면 실제로 우리에게 남는돈은 6500만원 정도 밖에 되지 않겠지만 어쨌든 모든 일이 순리적으로 흘러가는 이 상황에 매우 흡족했다.


그러나 그 흡족한 상황도 잠시, 다음날 아침에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매수자쪽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계약을 파기하고 싶다는것이었다. 하늘까지 봉긋 솟았던 자신감과 핑크빛 미래는 다시 한순간에 좌절되었다. 가계약금을 입금하고 나서 매수자 쪽에서 계약을 파기하면 그 계약금은 우리가 돌려줄 필요가 없다. 가계약금의 성질은 보통 정식 계약을 체결하기 전 향후 매매계약을 체결하겠다는 의사표시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도자가 계약을 파기하면 매수자에게 두배의 가계약금을 물어주는게 부동산쪽의 관행이라는 것은 얕은 지식으로 알고있었다. 하루아침에 계약 파기라니. 그런데 또 부동산 아주머니께서 하는 말씀이 매수자가 개인적으로 어려운상황이라서 가계약금을 돌려주면 안 되냐는 부탁의 말을 덧붙였다고 하셨다. 아, 울고 싶었다. 우리도 매달 60만원의 넘는 이자가 나가는 어려운 상황이란 말이다.


매수자가 우리집을 방문했을 때 말들과 눈빛이 생각났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너무 오래되서 춥고 햇볕이 안들어오는데 우리집은 햇볕이 잘 들어와서 너무 좋겠다는 이야기. 집 전체가 깨끗하고 하얘서 도배도 새로 할 필요 없겠다는 이야기들과 우리집을 찬찬히 여기저기 둘러보던 따뜻한 눈빛이. 그래. 정말 우리집을 사고 싶어서 계약금을 바로 입금했겠지만 금전적으로 어려움이 있었겠지. 우리가 이 돈을 돌려주지 않는다고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원래 이 돈은 우리 돈이 아니었는걸. 부동산 아주머니께 매수자 계좌를 알려달라고 이야기했더니 이렇게 쉽게 가계약금을 돌려주는 매도자는 거의 없다며 부동산 아주머니가 연신 고맙고 미안하다 말했다.


우리가 받은 150만원을 매수자에게 입금했고 부동산 아주머니에게서 문자가 왔다. 매수자가 우리집이 정말 마음에 들었고 꼭 사고싶었는데 이전 집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도저히 살수 없는 상황이라서 계약을 파기하게 됐다고. 정말 고맙고 너무 미안하는 인사를 꼭 전해달라고 했다는 문자였다. 가계약금을 돌려준건 정말 잘한일이고 앞으로 우리에게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우린 똑같이 가계약금을 돌려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반대의 입장이라면 우린 돈을 받을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우린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자, 다시 청소를 열심히 해야한다. 새로운 부동산 여러 곳에  전화를 돌렸다.
 “아늑하고 깨끗한 10층 집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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