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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 Nov 09. 2021

베란다 너머를 바라보던 그 남자의 뒷모습

흙수저 공무원 부부의 상가주택 건축기11

온오프라인으로 정보를 수집해가며 또 업체들과 전화로 상담을 하며 그 보다 더 많은 시간을 육아와 살림을 하며 정신없이 지나던 추위가 가실 듯 가시지 않고 꽃망울이 곧 터질 듯 말 듯 한 봄의 초입이었다. 어느 평일 저녁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려고 고무장갑을 끼고 있을 때였다. 핸드폰이 울렸다. 아파트 상가에 있는 부동산 전화번호였다. 전화번호부에 입력해놓아서 금방 알 수 있었다. 한동안 집을 보러 온 사람도 없었기에 부동산 전화번호를 보자 괜히 마음이 들떴다. “사모님~ 저녁시간에 죄송해요. 혹시 지금 매수자와 집을 좀 보러 가도 될까요?” “네~~ 괜찮아요~~ 지금 바로 오셔도 되세요”나는 고무장갑을 내던지듯 벗으며 이야기했다. “네~그럼 10분 정도 후에 도착할 것 같아요”“알겠습니다” 마음이 급해졌다. 바닥에 널브러진 밥풀떼기와 장난감들. 저녁 준비로 지저분한 싱크대. 그러나 나는 10분 청소의 달인이 아니었던가. 신랑에게 안방과 작은방 정리를 시키고 나는 주방과 거실을 정리했다.     


다다닥 다다닥. 척척.     


띵동 벨소리와 동시에 간신히 정돈되어 보이는 정도의 집 상태를 만들 수 있었다. 안방에 작은 무드등을 켜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집안의 분위기가 조명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는지 알고 있는 나는 분위기를 좀 아는 여자이니 말이다. 아이들은 태블릿 피씨를 켜서 소파에 조용히 앉혀 놓았다. 어수선하고 정신없는 상황은 매수자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도 있다.


앞치마를 고쳐 입고 문 앞에 섰다. “들어오세요~ 저녁시간이라 집이 좀 어수선하지만 편하게 보세요~”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부부와 공인중개사 아주머니가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저녁시간에 죄송해요. 일 마치고 오면 시간이 지금밖에 안돼서요” 화장기 없지만 단정해 보이는 인상의 여자분이 말씀하셨다. “아니에요~아니에요~ 저희도 지금 시간이 편하답니다. 편하게 구경하세요” 남편으로 보이는 분은 말씀은 없으셨지만 안방, 작은방, 베란다, 보일러실까지 꼼꼼히 문을 열어보며 집안을 살폈다. 매수자가 집을 보러 올 때마다 내가 너무 말을 많이 해서 집이 팔리지 않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던 때라 그날은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부부도 조용히 집안을 살폈다.


잠깐의 시간이 아주 길게 느껴졌다. 조용히 그러나 차분히 집을 둘러본 남자분이 “집이 참 깨끗하고 좋네요” 라며 살짝 미소 지었다. 그 미소가 너무나도 착한 사람의 미소라 나는 순간 이상한 아랫집 아주머니에 대해 이야기할 뻔했다. “낮에 또 집 보러 오세요. 저희 집은 해가 많이 들어와서 오후에는 더 따뜻하고 좋답니다” 부부는 따뜻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왠지 그 부부가 이 집의 새로운 주인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부부가 집을 보고 가고 나니 긴장했던 것인지 다리에 힘이 빠져 소파에 털썩 앉았다. “자기, 저 부부 우리 집 마음에 들어 하는 거 같지? 그런데 아랫집 때문에 뭔가 미안한 기분이야” “그렇게 생각하면 집을 팔 수 없지. 자기와 맞는 집이 있는데 우리랑 아랫집이 맞지 않을 뿐이야. 그냥 그뿐이야. 우리집이 좋은 집인 건 사실이잖아. 자기도 동의하잖아?” “응. 맞아. 좋은 집이지. 우리집. 오래 살고 싶었는데. 정말.”우리는 홧김에 무슨 일을 저지른 걸까. 나는 내가 몇 개월 전에 저지른 일들이 모두 꿈처럼 아득히 느껴졌다. 안방에서는 따뜻한 붉은 불빛이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부부가 다녀간  얼마 지나지 않아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부부가 집을 마음에 들어 한다고. 조만간 다시 연락하겠다고. 가계약금을 받고도 엎어진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설레발치지 않겠다며 잔금이  들어와야지 집이 진짜 팔리는 거라고 신랑에게 큰소리를 쳐놓고 나는 그날  아이들을 재우고도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이제 진짜 본격적으로 집을 짓는 작업을 시작해야 된다는 막막함,  분야에선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지만 혼자서 나아가고 싶은 치기 어린 마음, 그럼에도 결국은   거라는 믿음,  집에서의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들이 자꾸  머릿속을 헝클어 놓았다.  헝클어짐에 나는 혼자 눈물지었다 웃었다 하며 까만 밤을 보냈다.   

  

인스타에서 건져올린 우리집 사진 몇 장. 지금보니 괜히 눈물이 난다.

며칠 뒤 주말 오후 부동산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그 부부가 다시 집을 보러 오고 싶어 한다고. 집에 있으니 언제든 오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다행히 그날은 아이들은 신랑과 시댁에 가고 오랜만에 나 혼자 집에서 나른한 주말을 보내던 날이었다. 햇살이 온 집안을 품는, 우리집이 하루 중 가장 아늑해지는 그런 오후 주말이었다. 부부는 그날보다는 조금 지친 모습으로 우리집에 왔다. “귀찮게 해 드려서 죄송해요”라며 토요일 근무를 하고 오느라 오늘도 조금 늦었다고 말씀하셨다. 정말 괜찮다고 천천히 둘러보시라 이야기했다.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늦은 오후, 부부는 방 여기저기를 둘러보고는 거실에 서서 베란다를 바라보며 방을 둘러본 시간보다 더 오래 서있었다. 거기 서 있는 그 마음을 나도 왠지 알 것 같아 마음이 괜히 울렁거렸다.  


“잘 봤습니다. 벽지도 너무 깨끗하고 마루 바닥도 흠 없이 깨끗하네요. 이사 오더라도 손 볼 곳이 없겠어요” 남자는 지쳐 보이는 안색이었지만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네, 이 집 이사 오고 아이 둘 낳고 키우며 매일 쓸고 닦았어요. 이사 오고 좋은 일도 많았고요. 이 집을 사시게 되신다면 두 분께도 좋은 일이 많이 생기실 거예요” 정말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아 내 마음을 이야기했다. 이사를 나오고 난 뒤에도 오랫동안 그 부부가 그 집에서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해지곤 했다.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거실에 서서 한참을 베란다 너머를 바라보던 그 남자의 뒷모습이 가끔 생각났다.    


부부가 집을 보고 가고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가계약금을 입금하겠다고. 100만원은 바로 입금되었고 4일 뒤 우리는 부동산에서 계약을 하기 위해 만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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