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나 Nov 18. 2021

우리 사라지지 말자(20.12.11)

하루10문장 글쓰기

 

#. 우리 사라지지 말자


1. 아빠는 울증이 올 때마다 사라지고 싶다고 했다.


2. 산에 가서 목을 맬까, 어디 가서 뛰어내릴까 싶은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오르다 자식들이 손가락질 받을까 봐 괴롭지만 어쩔 수 없이 산다고 했다.


3.그러다 조증이 오면 통장에서 돈을 찾아 노름판으로 가 하룻밤 사이에 몇 백만 원을 잃고 집에 와서는 잔소리를 하는 엄마에게 심한 욕을 하며 본인이 번 돈인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며 엄마의 마음을 할퀴곤 했다.


4. 울증과 조증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자주 주기적으로 아빠를 엄습했고, 나는 차라리 아빠가 계속 울증이기를 바랐다.


5. 울증은 아빠의 마음만 나락으로 빠진 듯 괴로운 거였지만 조증은 엄마를 비롯한 우리 가족들이 아빠가 어떤 사고를 칠까 전전긍긍하며 마음을 졸이는 시기였다.


6. 조증일 때 아빠는 자기가 세상의 중심인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돈도, 말도, 행동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과했으며 그럴 때마다 나는 그런 아빠도, 힘들어하는 엄마도 외면하고 오직 내 삶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7. 그러나 그럴수록 나의 불안감과 무기력감은 내 삶까지 침전하게 만들었다.


8. 아빠는 지금도 여전히 울증과 조증을 오가고 내 마음은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한다.


9.진심으로 아빠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여러 날들이 있었다.


10. 아빠가 마음의 병이 있다고 해서 아빠를 온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이해하고 싶어졌던 어느 날부터 나는 아빠가 사라질까 봐 불안해하는 나를 발견하고, 울증이든 조증이든 부디 우리 가족이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아픔으로 지나가길 바라고, 또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베란다 너머를 바라보던 그 남자의 뒷모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