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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 Dec 03. 2021

거대한 두려움과 설명할 수 없는 이끌림

흙수저 공무원 부부의 상가주택 건축기 12


 매일 밤 아이들을 재우고 건축, 시공사, 상가주택, 집짓기 등을 검색하며 깜깜한 밤 아이들 옆에 누워 눈이 빠질 것 같은 날들을 보내던 중이었다. 신랑이 이 집 좀 보라며 아이패드를 내 손에 쥐어줬다. “오~ 오~ 오~ ”나는 그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들을 보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단정하고 반듯한 직사각형 모양의 이층 집. 상가주택이 아닌 전원주택이지만 그 단정하면서도 군더더기 없고, 세련된 집의 내외관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거기다가 그 집을 지은 업체가 우리 아파트 건너편 상가에 있는 업체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신랑이 보여준 집은 우리집에서 5분 거리의 전원주택 단지에 지어진 집이었다. 집의 위치가 표시되지는 않았지만 그 주위 경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 집에 대한 사진과 정보가 올라온 사이트는 그 업체가 운영하는 블로그였는데 블로그에는 이미 그 업체에서 작업한 포트폴리오가 많이 올라와 있었다. 리모델링을 주로 하는 업체 같아 보였다. 아파트 리모델링 작업이 주를 이뤘다. 리모델링을 한 아파트들도 멋졌다. 인터넷 오늘의 집 같은 사이트에 나올법한 집들이었다. 몇 날 며칠을 시간만 나면 그 블로그에 들어가 봤던 사진을 보고 또 봤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하얀색 이층집이 눈에 아른거렸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집을 짓고 싶지 않았다. 평생에 한번 나의 집을 짓는 것이기에 누가 보아도 ‘아, 이 집 괜찮네’라는 생각이 드는 집을 짓고 싶었다. 블로그에서 내가 하얀색 집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던 것처럼 누군가 우리집을 보고 그렇게 생각해 주길, 아니 내가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집을 짓기를 원했다. 이미 온라인에서 이 보다 더 멋지고 휘황찬란한 집들은 많이 봤지만 온라인 속 정보들은 나와 너무 멀게, 또는 비현실 적으로 느껴졌다.


신랑에게 이번 주말에 그 집을 실제로 보러 가자고 이야기했다. 그 집을 찾아가서 뭘 어떻게 해보겠다는 게 아니라 내 눈으로 그 집을 보고 싶었다. 물론 그 집주인과 만나 이 집을 시공한 업체가 어떤지, 돈은 얼마나 들었는지 등등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건 무례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저 멀리서 그 집을 실제로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정말로 이 블로그의 사진과 일치하는지 말이다.  


사실 우리에게 그 집이 실제로 사진과 일치하는지 하지 않는지는 중요한게 아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다. 이런 집을 지으려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들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데 왠지 그 집을 실제로 보러 가고 싶었고, 그 집을 지은 업체와 직접 만나 상담을 하고 싶었다. 내가 처음 어떤 이끌림으로 부동산에 들어갔던 그날처럼 나는 그 집을 지은 업체를 초록창에 검색해 전화를 걸었다.


“블로그에 올라온 2층짜리 하얀 집을 보고 전화드렸거든요. 00동에 2층 45평 정도의 상가주택을 지으려는데 견적이 어느 정도 나올까요?”

마음이 급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돈이었으므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2층 상가주택이라.. 견적은 집을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기 때문에.. 뭐 얼마가 든다 말씀드리기 어렵고요.. 시간 되실 때 오셔서 상담을 한번 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대충이라도....?”

“대충으로라도 말씀드리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일단 알겠습니다. 조만간 전화 한번 드리고 상담하러 갈게요”

“네 그러세요~”

젊은 목소리의 남자는 나의 물음에 약간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이었고 대략 5~6억 정도 든다는 어느 업체들과는 다르게 집을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그 남자의 말에 어떤 이상한 안도감과 믿음이 생겼다.


그 주 주말에 신랑과 우리집에서 5분 거리의 전원주택 단지에 그 집을 보러 갔다. 산 중턱쯤에 있는 전원주택 단지였다. 땅을 분양한다는 커다란 현수막을 여러 번 지나가면서 보았던 기억이 있는 곳이었다. 새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니 저마다 각자의 특징을 가진 집들이 작은 앞마당과 함께 길 가를 따라 주욱 이어져 있었다. 구불한 길을 따라 거의 산 중간쯤 올라갔을 때 우리가 블로그에서 보았던 그 하얀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에서 본 모습 그대로였다. 내부는 블라인드로 가려져 있었지만 모니터를 통해서만 보던 집의 모습을 실물로 본 경험만으로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가 생겼다. 막연하게만 느껴지고 손에 잡히지 않던 집을 짓는 일을 이제는 진짜로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참을 집 근처를 서성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일 당장 그 업체에 상담을 하러 가야겠다고 신랑과 이야기했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저장해 두었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지난번에 상가주택 문의드렸었는데 오늘 상담이 가능하냐고 하니 오후 2시쯤 방문하면 된다고 해서 그러겠다고 했다. 지난번 건축가와의 상담 후 첫 상담이었다. 땅을 사는 속도에 비하면 집을 짓는 속도는 현저히 느렸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집이 팔리지 않아 돈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집이 팔릴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어떤 것도 진행할 마음이 들지 않아 나의 그 불도저 같은 실행력도 주춤거렸다.


그런데 그 불도저가 다시 시동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집이 팔린 것은 아니지만 가계약금이 입금되었고 어찌 됐건 이제는 진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뒤흔들었다. 상담을 하러 간 사무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건너편의 큰 길가에 있는 작은 상가였다. 하얀 간판에 00 디자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무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하얀 테이블에 애플 컴퓨터만 덩그러니 놓여 있고 투명한 의자 두 개가 있었다. 인기척이 들리자 테이블 뒤의 하얀 문에서 어떤 젊은 여자가 나와 “상담하러 오셨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라며 물었다. “아.. 네”라고 엉거주춤 의자에 앉아 그 작은 공간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키가 크고 젊은 남자가 그 하얀문을 열고 나왔다.


이 동네에 80평 대지를 샀고 2층짜리 상가주택을 짓고 싶은데 사실 우리에게 자본이 많지 않다. 홈페이지에서 본 2층짜리 하얀 집을 보고 연락을 드렸다. 그런데 주로 리모델링을 위주로 하시는데 시공까지 하는 게 맞는 건지 나는 최대한 간단하면서도 요점을 짚어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 사장님은 약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자기들은 리모델링 전문업체가 맞고 시공을 전문으로 하지는 않는다. 홈페이지로 본 2층짜리 집은 우리가 시공한 게 맞지만 평수가 작아서 시공사 면허가 없어도 가능한 크기였지만 80평 대지에 2층 상가주택을 지으려면 시공사 면허가 필요한 면적이다. 그리고 우리가 설계는 하지만 건축을 전문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랑 작업을 하려면 면허를 가진 건축가를 따로 끼고 작업을 해야 한다. 또 궁금해하시는 견적은 설계도가 어떻게 나오고 어떤 자재를 쓰고 마감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대충이라도 말씀드리기는 어렵고, 생각해 보시고 우리와 작업할 마음이 있으시다면 계약금을 걸고 설계도가 나오면 견적을 내 볼 수 있다. 일단 견적을 받으려면 설계 작업을 할 수 있는 작업에대한 계약금을 내야 한다. 계약금은 200만원 이라고.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니 복잡하다는 말로 부족했다. 시공과 건축설계 관련 면허가 없는 리모델링 업체와 작업을 한다는 것은 면허 비용을 우리가 따로 지불해야 된다는 의미였고 결론적으로 이중계약으로 작업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중계약에 대한 비용은 당연히 우리의 몫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책임도 우리의 몫일 것이리라. 만약 계약금을 내고 견적을 받았는데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의 견적이 나온다면? 계약금만 날리고 업체를 알아보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하는 일들에 비하면 200만원은 적은 금액이었지만, 사실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그만큼 우리는 어려운 상황이었고 집을 끝까지 지을 수 있을지 조차 확신이 없었다.


이건 모험이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시작하는 모험. 모험은 원래 그러한 것이지만 모험을 떠나기 전에는 누구나 두렵다. 거대한 두려움이 나를 엄습했다. 난감한 표정의 사장님이 나에게 한 이야기들을 신랑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 이 리모델링 업체에 대한 설명할 수 없는 이끌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나조차 알지 못했다.


물음표만 남긴 상담을 마치고 나오며 내가 그 당시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는 내가 이런 글을 쓴다는 생각조차 못했기 때문에 어떠한 기록도 하지 않았다. 그땐 기록을 할 만한 내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도 했다. 그러나 그 기억을 복기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두렵고 혼란스러운 것을 보면 그 당시의 나는 정말 두려웠을 것이다.

 

나 혼자 감당되지 않던 두려움과 막막함으로 어깨를 한껏 늘어뜨린 채 유리문을 밀고 나오던 그때의 나를 만나 꼭 안아주고 싶다. 괜찮다고. 다 잘될 거라고. 그러니 너무 두려워말라고. 너는 네가 믿고 있는 것보다 더 정확한 판단력을 가졌다고. 네가 설명할 수 없던 그 이끌림이라는 감정조차 너를 좋은 길로 안내하는 신의 목소리였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너의 그 두려운 감정에 매몰되지 말고 너를 믿고 나아가면 된다고.  


그 시간을 무사히 지나온 내가 두려움에 잔뜩 움츠린 그때의 나에게 따뜻한 위로를 해 주고 싶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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