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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 Jul 14. 2021

흙수저 공무원 부부의 상가주택 건축기 3

- 불안감의 물려주고 싶지 않은 바람, 그 단 하나의 욕심

                                                         

매일 밤 아이들을 재우고 신랑과 식탁에 마주 앉았다. 나는 맥주 한 캔을, 술을 못 마시는 신랑은 사이다 한 캔을 앞에 두고 나는 땅을 사고 싶은, 사야 하는, 살 수 있는 우리의 상황과 이유에 대해 열변을 토해냈다.


“일단 집을 팔면 대출금을 갚더라도 일부 돈이 생기잖아. 그리고 땅에 대출도 할 수 있을 거고. 우린 공무원이고 신용이 좋은 편이니까 대출도 최대한 낼 수 있을 거야. 또 우린 행정공제회랑 공무원 연금 대출도 각자 낼 수 있고, 저번에 사무실에 직원 보니까 마이너스 통장도 거의 5천만 원까지 낼 수 있던데 나랑 자기랑 둘 다 마이너스통장 최대한으로 만들고 이 정도면 뭐 어떻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더 대박인 건 공인중개사 아저씨가 그러는데 그 땅이 위치가 좋아서 상가주택으로 지어서 1~2층에 임대를 놓으면 임대도 금방 나갈 거래. 자기 상가주택이 먼지 알아? 난 이번에 처음 알았잖아. 어쨌든 상가 임대료로 이자랑 원금의 일부를 충당할 수도 있고 내가 내년 7월에 복직을 하면 내 월급만큼의 고정적인 수입이 생기잖아. 어차피 우리 정년까지 일할 거니까 아주 기~일게 보고 갚기만 하면 되잖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머릿속에 생각나는 대로 얕은 지식으로 아무 말이나 뱉어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건 아무 말 대잔치였다. 땅을 사면 지가의 몇 프로의 대출을 낼 수 있는지 대출 이자는 얼마인지 대출 과정엔 또 뭐가 필요한지 나는 전혀 알지 못했고 그 흔한 마이너스 통장 한번 만들어보지 않은 터였다. 그런 내가 대출에 대해서 뭘 안다고 아무 말이나 던진 건지 그때 나는 아마도 조금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사실 집에 대한 욕심도, 땅에 대한 욕심도, 물질에 대한 욕심도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항상 내가 가진 부분에 대해 만족하며 감사했다. 그 당시 나의 욕심은 일상에서 아이에게 불안감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그 바람 하나였다. 그 작은 바람은 나를 용기 있게 만들었다. 아니 그건 용기가 아니라 어쩌면 ‘홧김’이라는 단어가 그 상황에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 그 작은 바람은 나의 ‘홧김’을 불러일으켜 행동하게 만들었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용기’가 아닌 ‘홧김’이었다. 신랑은 나의 억지스러운 이야기들에 약간 넋이 나간 듯했다. 지금 현재 내 귀에 어떤 이야기도 들리지 않음을 인지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겠지. 돈도 없으면서 왜 저러나 싶겠지. 그 ‘홧김’에 벌인 행동을 언제까지, 어디까지 끌고 나가다 언제 현실의 벽에 부딪혀 포기할지 두고 보겠다고 암묵적으로 이야기하는 듯했다.


며칠을 머릿속에 그 땅 생각으로 정신이 없었다. 혼자 여러 번 그 땅을 보러 가기도 하고 주말엔 신랑과 함께 땅 앞에서 서성대기도 했지만 혼자 난리부르스를 춰봤자 결말은 나도 신랑도 알고 있었다. 우린 돈이 없었고 고로 땅을 살 수 없다는 결말 말이다.


시부모님은 우리 집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도시와 농촌 중간 즈음되는 지점에 땅을 사서 집을 지어 살고 계셨고 땅을 사본 경험도 집을 지어본 경험도 있으셨기에 나는 신랑 다음으로 어머님께 이 땅의 존재에 대해 말씀드렸다. 우리가 아파트에서 스트레스받던 상황을 말씀드린 적이 거의 없었기에 어머님은 며칠 전 일어난 층간소음 사건에 대해 약간 놀라셨지만 의외로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어머님은 내가 신혼집에 들어가기 일 년 전쯤에 그 집을 신랑 명의로 구입하셨는데 신랑과 아가씨가 살던 집의 전세계약이 만료된 시점이라 그 집에 미리 들어가서 신랑과 아가씨가 살기로 했었다. 이사를 한 날 어머님은 이웃에 인사를 한다고 아랫집 옆집 윗집에 떡을 돌렸고. 금방 주문해서 가져온 시루떡을 접시에 담아 아랫집에 인사를 갔다. 벨을 누르고 윗집에서 왔다는 어머님의 말에 아랫집 아주머니가 문을 열어 주셨는데 문을 열자마자 “지금 청소기 미셨어요?”라고 물으며 나에게 보냈던 그 서늘하고 날카로운 눈빛과 차디찬 목소리로 떡을 든 어머니에게 쏘아붙인 것이다. 어머님은 적지 않게 당황했지만 “오늘 이사를 와서 청소한다고요. 떡 좀 드세요” 라며 어머님 할 말씀만 하시고 올라오셨더랬다. 늦은 밤도 아니고 낮에 청소기를 미는 게 잘못된 건지 낮에 청소기를 밀었다고 떡을 가지고 인사 온 어르신에게 쏘아대는 게 잘못된 건지 따지고 싶지도 않았고 따져서 잘잘못을 가릴 수 있는 대상도 아니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그냥 우리 아들이 좀 별난 사람 위층에 살게 됐네. 어쩌나 ‘라고 생각하며 신랑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이런 이야기들을 미리 함으로써 아랫집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심어주고 싶지 않았고 이미 거기가 우리 집이었기 때문이다.


층간소음 문제에 이어 나는 바로 ‘그 땅’에 대해 이야기했다. 초등학교 앞 코너에 있는 평당 280만 원이라는 그 땅에 대해 나는 부동산 아저씨에게 들은 한 귀로 흘려버린 이야기들을 애써 기억에서 더듬어가며 하나도 빠짐없이, 또는 약간 엠에스지를 첨가하여 이야기했다. 나름 우리 집안에서 부동산 쪽으로 가장 관심이 많으신 어머님의 땅에 대한 판단을 듣고 싶었다.


어머님은 이렇게 좋은 땅은 찾기 힘들다고 하셨다. 위치도 좋고 이 위치에 이만한 가격이면 정말 좋은 땅이라고 땅만 보면 정말 너무 탐나는 땅이라며 극찬을 하셨다. 그런데 어머님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다. 우리의 사정을. 그렇기에 땅을 살 수 없어서 너무 안타깝다는 아쉬움에 대해 말씀하시며 나에게 미안하다 하셨다. 우리가 도움을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난 어머니에게 그런 말씀을 듣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고 어머니가 우리에게 미안하실 일은 눈곱만큼도 없다고 생각했다. 어머님은 내가 결혼도 하기 전에 최대한의 대출을 내서 우리의 첫 집을 구입하셨고 우리가 결혼하기 직전까지도 우리 집의 대출금을 함께 갚아주고 계셨다. 시부모님의 경제상황에서 우리에게 최대한 많은 도움을 주셨으며 나는 항상 시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었다. 내가 어머니에게 듣고 싶었던 말은 이 땅을 사야 할 확신에 대한 것이었다.


“어머님, 그래서 이 땅이 정말 좋은 땅은 맞는 것 같죠?” 나는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을 듣기 위해 어머님에게 질문을 했다. “그래. 아주 좋은 땅이지” 네. 어머님. 저는 그 말이 듣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머님은 땅, 대출, 집에 대해 나보다 훨씬 더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계셨기에 우리가 이 땅을 사는 건 지금 상황에서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고 계셨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좋은 땅이라고 해서 다 살 수 있는 건 아니지. 여기는 위치가 좋기 때문에 상가주택을 지어야 할 텐데 그럼 2층 이상의 건물을 올려야 되고, 그러려면 건축비가 또 어마어마할 텐데 땅값의 30프로의 자본도 없는 상황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얘야.” 어머님은 마지막의 ‘얘야’에 어떤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담아 강렬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그 강렬한 어조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구구절절 맞는 말씀이다. 지금까지 난 무엇을 한 것인가. 총알도 없으면서 총을 쏜다고 여기저기에다가 총구를 겨누기를 미친년처럼 해댔단 말인가. 혼자서 이미 땅을 사고 집을 팔고 집을 짓는 과정의 시뮬레이션을 열심히 돌리던 나는 어머님의 말씀에 그 시뮬레이션을 반대로 돌리며 다시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렸다. 그 넘쳐나던 자신감과 열정은 어디로 도망가버리고 갑자기 기운이 쏙 빠지면서 더 이상의 고민은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그래서 처음에 땅에 대해 신랑에게 뜬금포 이야기했던 날처럼 다시 신랑에게 전화로 통보했다.

“내가 그 땅에 대해 가진 건 환상이었어. 지금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내 눈앞에 보이는 어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나는 환상 같은 걸 붙들고 있었나 봐. 이제야 다시 현실로 돌아왔어. 인근 아파트 1층 매물이 나온 게 있는지 알아볼게.” 신랑은 내가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에 안도하는 듯했고 한편으론 미안해하는 듯했다. 우리 신랑은 어머님 아들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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