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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 Jul 13. 2021

본다

- 엄마가 되어가는 시간

나를 본다. 눈 비비며 시간을 확인하는 나를 본다.

6시 35분. 평소보다 20분 정도 늦은 시간이다.

머리 위로 이불을 끌어올리며 짧은 시간 동안 운동을 나가지 않을 핑계를 찾는다.

‘운동할 시간이 짧다. 오늘 아침은 어제보다 더 추워졌다’


나는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사실 아침마다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핑계를 찾는다. 하지만 알고 있다. 그냥 일어나서 운동화만 신고 나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두 달 동안 하루를 여는 아침 운동에 익숙해졌고, 알람이 없어도 이 시간만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지곤 했다. 늦게 일어난 탓에 잠옷을 벗기도 귀찮아 잠옷 위에 목이 올라오는 티를 욱여 입고 요가 바지를 입는다. 긴 양말을 발목까지 끌어올리고, 점퍼를 입고, 모자를 쓰고, 운동화를 신는다. 아이들이 깰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며시 현관문을 열고 문밖으로 발을 내딛으면, 그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쾌감과 짜릿함을 느낀다.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 큰 시계가 6시 42분을 가리킨다. 지금부터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18분. 한발 한발 내딛는다. 생각이 들어왔다가 나간다.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하루 중 유일하게 내 호흡을 느껴보는 시간이다. 발을 내딛으며 어제저녁 함께한 글쓰기 수업을 떠올린다. ‘내가 아닌 것‘에 대해 생각한다. 언제부턴가 엄마, 아내, 딸, 며느리… 라는 나를 수식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던 ‘나’를 생각한다. 수식어의 삶에 파묻힌 나머지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 내가 꿈꾸는 것을 잊고 산 여러 해, 수많은 날들을 떠올린다.


내가 여기 있는데 내가 여기 없는 기분을 느끼며 내 안으로 나를 가라앉게 했던 날, 알 수 없는 묵은 감정들이 종종 나를 찾아와 눈물짓던 날,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아무 문제없는 평온하고 행복해 보이는 날들 속에서 공허함이 밀려와 혼자서 당황했던 날…


가끔 나는 슬펐다. 왜 슬픈지 몰라서 슬펐다. 슬플 이유가 하나 없는데 슬퍼서 슬펐다. 따뜻한 집, 안정적인 직장, 자상한 남편, 토끼 같은 아이들. 슬플 이유가 없었는데 슬펐다. 엄마, 아내, 직장인, 딸, 며느리 모두 다 있는데 결국 진짜 ‘나‘는 없는 거 같아, 텅 빈 내가 슬펐다. 그런 나의 슬픔을 아무도 이해하지도, 알아주지도 않아서 나는 까만 어둠, 텅 빈 방에서 혼자 슬펐다. 그래서 나는 읽고 썼다. 쓰고 싶었다. 그때마다 나는 조금 힘이 났다. 웃는 날도 있었다. 이런 내가 이상한 게 아니란 걸 어떻게든 증명하고 싶었다.


다시 걷는 나를 본다. 아침 바람맞으며 두 팔을 흔들며 빠른 걸음으로 걷는 나를 본다. 모두가 잠든 시간, 이불을 박차고 나와 걷고 있는 나를 본다. 내가 걷는 이유는 결국 ‘나’였다. 나는 수식어의 ‘나’가 아닌 오롯한 ‘나’이고 싶었던 것이다. 긴 하루 중 나를 위해 걷는 이 시간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나를 충만하게 했다. 때문에 아침 운동을 거른 날에는 하루 종일 양치를 안 한 것 같은 찝찝한 기분을 느끼곤 했던 것이다.


시계를 본다. 6시 59분. 마음이 급해진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학교 운동장을 벗어나며 집에서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한다. ‘집에 가자마자 어젯밤 끓여 놓은 어묵탕을 데우고, 계란 프라이를 해야지. 아이들 등원 가방을 챙기고, 사과도 깎아 놔야겠다. 맞아. 빨아놓은 스타킹이 없으니 어제 신었던 걸 신어야 겠네’

아침마다 가족들을 위해 준비하는 과일

혼잣말을 하며 집 앞에서 급하게 뛰어 들어가는 나를 본다. 현관문을 들어서며 운동화를 벗는 순간, 수식어의 나는 긴 하루를 시작하겠지. 하지만 괜찮다. 온몸으로 나를 느끼며 걸은 이 시간이 있으니, 오늘 하루도 충만한 마음으로 살아내고 싶다. 수식어인 나를 모두 끌어안은 나, 이 또한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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