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추천받은 정용준의 '가나' 라는 단편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그의 글쓰기를 추동하는 에너지는 죽음충동입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문장으로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이 책에는 표제작 ‘가나’를 포함해 ‘떠떠떠, 떠’ ‘벽’ ‘굿나잇, 오블로’ ‘구름동 수족관’ ‘먹이’ ‘여기 아닌 어딘가로’ ‘어느 날 갑자기 K에게’ ‘사랑해서 그랬습니다’ 등 단편 9편이 실렸습니다.이 중, ‘떠떠떠, 떠’는 제2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정용준 작가님의 작품들은 묘사가 특히 눈에 띕니다.
소설은 절망이 가득합니다. 주인공들은 모두 사라지고 죽고 싶어합니다.
표제작 가나는 죽은 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시간은 죽고 싶다는 생각의 끝없는 회귀이고, 삶은 그것을 버텨내는 불안함이자 미쳐가는 정신의 바다를 향해하는 돛 없는 배였다. 난 끝없이 표류하고 조금씩 침몰했다." - 가나-
"크고 작은 바위들이 곳곳에 솟아 있고 바위틈마다 색색의 말미잘이 셀 수 없이 많은 촉수를 흔들며 움직였다.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고, 작은 새우들은 머리카락과 수염 속에 기어들어와 제 몸을 숨겼다. 해류가 몸의 방향을 바꾸어놓았다. 난 꽃씨처럼 느릿느릿 바닷속을 떠다녔다. 모래 속에 반쯤 잠김 폐선이 보였다. 수초와 이끼가 페선의 몸체를 뒤덮고 있었다. 폐선은 진흙을 뒤집어 쓰고 낮잠을 자는 게으른 당나귀 같았다. 불 꺼진 폐선의 선실은 발광하는 꼬리민태들로 분주했다. 청록색으로 빚난는 꼬리가 흔들릴 때마다 낡은 선실은 등을 켜놓은 것처럼 조금씩 되살아났따. 조탈실에는 해마들이 단정한 모습으로 떠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조타실의 주인은 자신들이라는 듯, 곧게 선 해마의 몸은 고상하고 위엄 있어 보였다. 폐선의 갑판에 달라붙은 검은 고동들의 더듬이는 물속에서 느릿하게 흔들렸고 몇몇은 바지 위로 기어 올라왔다. 정수리 위로 커다란 바다거북이 천천히 지나갔다. 무심한 바다거북의 눈동자가 나와 잠시 마주쳤다. 폐선의 엔진이 곧 돌 것만 같았다. 녹슨 스크루가 회전하고 모래 속 깊이 처박힌 닻이 거품에 둘러싸여 천천히 떠오를 것만 같았다. 나는 조타실의 타를 잡고 바다거북이 만들고 간 길을 따라 항해하고 싶었다. 몸이 조금씩 짓물러갔다. 몸속에서 푸른 가스가 피어오르고, 난 점점 가벼워짐을 느꼈다. 발밑의 폐선이 우물에 떨어진 돌멩이처럼 조금씩 작아져갔다" - 가나-
‘해류가 몸을 떠민다. 그것은 무겁고 밀도가 높은 바람과 같았다. 그 흐름에 따라 천천히 발이 움직이고, 난 바닷속을 산책하듯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지금 이곳을 어찌 형용할 수 있을까, 부드러운 흙 속에 심겨진 나무뿌리처럼 나는 바닷속에 잠겨 있다. 생각이 난다. 회전하는 스크루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그때, 내 심장이 멈췄을 것이다. 오른쪽 허리가 심하게 손상되었다. 헤쳐진 살점과 내장들이 붉은 해초처럼 흔들린다. 갈치 두 마리가 내 곁에 맴돈다. 갈치가 움직일 때마다 칼날이 흔들리듯 날카로운 빛이 반짝거린다." - 가나-
"
"영원히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해도 뜨지 않고, 아침도 오지 않고, 빛조차 완전히 사라져 이 세상이 온통 깜깜했으면" - 어느 날 갑자기 K 에게.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500 kg 넘는 거대한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 없고 심하게 훼손된 신체를 갖고 있는 누나와 그를 돌보는 동생의 고통스러운 이야기 <굿나잇, 오블로>. 어느 날 갑자기 머리에 혹 같은 게 자라기 시작한 취업 준비생인 남자의 이야기인 <어느 날 갑자기 K에게>, 엄마의 인생을 위해서 이제 막 죽음을 결행할 작정인 태아가 태중에서 하지 못한 마지막 말 <사랑해서 그랬습니다>는 독특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사랑해서 그랬습니다가" 가장 가슴이 아팠습니다. 사라를 사랑해서 사라를 위하는게 뭔지 알기 때문에 태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작품입니다. 포기하는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마지막 반전이 훌륭한 작품입니다.
안다는 것은, 누군가를 가장 많이 또 깊이 안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많이 생각한 마음이다. 내 모든 것을 지금 멈추겠다. 사라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해서 그랬습니다-
그런데 작가의 이야기에는 절망 속에서 사랑이 흐릅니다. 그의 아름다운 죽음의 문장들이 놀라운 작품입니다. 소설가의 유일한 윤리는 좋은 글을 쓰는 것이라고 믿는 작가. 글의 힘을 의심하지 않는 작가, 소설을 평생 칠백 편 정도 쓰고 싶은 작가의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