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전 작가는 정여울 작가님이 주목해야할 작가라고 추천해준 작가다. 노들장애인야학에서 활동했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노란 들판의 꿈" 을 썼다. 문제 그 자체보다는 문제를 겪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고 차별받는 사람이 저항하는 사람이 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인권의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이 사회의 들리지 않는 소리를 기록한다. 인구의 10퍼센트가 장애인이지만 그들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고,바로 그 이유 때문에 비장애인들은 일상적으로 자신들의 가해 사실을 인식할 수조차 없다고 한다.
이 책은 저자가 노들야학을 그만두고 쓴 노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곳에서 나왔을때 가지고 나온 게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시선' 이라는 아주 강력한 것이 저자를 따라온 것이었다. 노들은 세상의 끝이었으나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그 끝을 최전선으로 만들어 세상의 지평을 넓히는 경이로운 존재들이었다. 이 책은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나에게 "차별" 과 "저항" 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 책이다.
"사람들은 "차별이 사라져서 노들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는 말을 덕담처럼 했다. 선의로 한 말인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 말에 언제나 저항하고 싶었다. 노들은 차별받는 사람들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저항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차별받은 사람과 저항하는 사람을 같은 존재라고 여기거나 차별받았으므로 저항하는 게 당연하다고 쉽게 연결 지었다. 하지만 나는 차별받은 존재가 저항하는 존재가 되는 일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으며 오히려 순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차별받으면 주눅 들고 고통받으면 숨죽여야 한다.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복종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러라고 하는 게 차별인 것이다. 모두가 침묵하고 굴종할 때 차별은 당연한 자연현상이 된다."
40년을 방 안에서 산 사람,10년 동안 모은2 천만원을 시설에 기부하는 사람, 딱 한 번만이라도 누군가를 붙들고 펑펑 울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사람, 시설에서 학대당하는 사람, 힘들게 얻은 자유를 사랑한 사람, 장애 때문에 이혼 당하고 아이를 빼앗겨 돈을 모아 아이를 데려오는게 꿈인 사람, 거리에 턱을 없애달라는 유서를 쓰고 자결한 지체장애인,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요구하며 싸우는 사람, '짐승 같은' 현실 속에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사람들, 언니의 결혼식에도 부모의 환갑잔치에도 초대 받지 못한 사람, 바다를 한 번도 못 본 사람, 이동권을 보장해달라고 시위하는 사람들, 장애 아이를 학교에 보내달라고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는 엄마들, 집 없는 이들에게 주거비를 지원하는 데 고작 26억을 쓰면서 이들을 추방해 격리하는 수용시설에는 237억의 예산을 쓰는 이 현실에 대한 이야기,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의 역무원을 호출하려다가 휠체어와 함께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진 사람, 망치로 팔을 내려치는 것 같은 아픔이 24 시간 지속되는 신체적 통증을 감내해야하는 사람, 전기도 물도 끊긴 집에서 3개월을 지내는 사람들, 똑같이 대학가고 싶고, 연애하고 싶고, 돈 벌고 싶은 사람들인데, 버스 타고 고향에 가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고통이 사라지는 사회를 꿈꾸지 않는다. 여기는 천국이 아니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예수나 전태일처럼 살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들은 모두 일찍 죽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몸을 사리며 적당히 비겁하게 내 곁에서 오래 살아주길 바란다. 그러므로 나는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고통에 대해서 얼마간의 책임이 있고 어떤 의무를 져야 하는 것이다. 고통을 기록하는 마음은 광장에서 미경 씨의 머리를 밀어주며 "죄송해요" 라고 말했던 여성의 마음과 비슷할 것 같다. 바라는 것은 그가 나에게 안심하고 자기의 슬픔을 맡겨주는 것이고, 나는 되로록 그의 떨림과 두려움을 '예쁘게' 기록해주고 싶다.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세상은 '싸우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는 사회' 이기 때문이다.
"나는 장애인이 불쌍하다고 생각했어. 그랬던 내가 그 불쌍한 장애인들 속으로 떨어졌으니 인생이 비참해 죽을 것 같았는데, 그때 태수가 왔지. 그런데 그 장애인이 사람으로 보이는 거야. 불쌍한 장애인이 아니라 그냥 사람. 태수는 나한테 새로운 세계를 보게 해줬지. 충격적으로."
"장애인의 삶은 충격적이었지만 그 충격은 장애인의 열악한 삶 그 자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들이 그것을 온통 '문제' 라고 말했던 것에서 나는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자라온 세상에서는 누구도 그것을 '문제' 라고 말하지 않았다. 어떤 문제를 '문제' 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그 현실을 바꾸거나 최소한 직면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세상의 끝인 줄 알았던 거기가 최전선이었따. 나는 그런 이들의 저항이 세상의 지평을 넓혔다고 믿는다."
"누군가의 평생이 있어야만 평범함 사람들의 작은 상식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은 고통스러운 위로입니다."
"어떤 사람은 당연히 받는 선물을 어떤 사람은 평생 싸워서 얻는다. 자기 자신에게 권리를 선물한다는 일,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나는 꽃님 씨에게 배웠다."
"내가 충격을 받았던 건 장애인의 열악한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문제' 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들 옆에 서자 세계가 온통 문제투성이로 보여서 나는 정말로 충격받았다. 내가 타고 온 버스도, 지하철도, 내가 다닌 학교도 모두 문제였다. 나는 마치 중력이 다른 행성으로 이동한 것 같았다. 말하자면 그건 경쟁하는 세계에서 연대하는 세계로, 적응하는 세계에서 저항하는 세계로, 냉소나 냉담보다는 희망을 더 정상적인 것으로 보는 공동체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중에 가장 좋은 사람을 꼽으라면 바로 나 자신일 것이다. 중력이 다른 세계에선 다른 근육과 다른 감각을 쓰면서 살게 되기 때문이다. 노들은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다르게' 관계 맺을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특히 제목이 마음에 다가온다. 우리는 그냥 사람일뿐인데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상황, 제대로 된 삶의 질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 이야기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화가 나지만 차분하게 쓴 글이다. 홍은전 작가를 보고 매일 매일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글 쓰는 사람의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서 소수자로 불리는 사람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보지만,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사실에 이내 마음이 아파진다. 하지만 이 책에도 나왔듯이 섣부른 감정 이입은 하고 싶지 않다. 공감은 복잡한 감정이다. 세상의 변화는 '장애인' 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 '장애인에게 닥쳐온 어떤 세상' 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시작되며, 그것은 그 폭력적인 사회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살아가는 90퍼센트의 사람들이 비로소 '비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에 대해 성찰할 때일 것이라는 말을 새기고 싶다. 저자의 말처럼 내 몫의 싸움을 고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