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계절에 따라 느끼는 소소한 일상을 소재로 쓴 평범함을 사랑하는 박연준 시인의 에세이집이다. 특이한 점은 겨울로 시작을 했다는 것이다. 지금 봄이니 봄부터 읽어도 무방할 것 같다. 강아지, 고양이, 개구리, 호텔의 조식 풍경, 흰 머리, 택시 기사, 머플러, 감자, 옥수수, 카페에 들어오는 사람들, 할아버지와의 추억, 몽당연필, 피로, 기러기 등...일상의 소소한 것들이 글쓰기의 소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가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에 대해서 알게 된 것들이 있다. 그네 타는 것을 좋아하며, 발레가 취미이며, '몽당' 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고, 카페 창가에 앉아 나무바라기가 되는 것을 좋아하고, 키우는 식물들에게 말을 거는 취미가 있고, 스스로를 엄살이 많다고 말하며, 행복한 순간을 매일 기록하는 '행복일기' 공책을 갖고 있는 시인, 아우국을 끓이는 아침이 근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나이든 분께 꽃을 드리는 일이 행복한 사람, 독자가 준 30년 된 선물을 받고 흐느껴 우는 사람이며, 일렬로 한 곳을 향해 동시에 나아가는 기러기들을 보고 눈물이 날 것 같다는 시인이다.
이 시인의 수수함과 일상의 소재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살 수 없는 것들의 목록' 이라는 제목의 글이 좋았다.
주머니가 가벼워져 마음이 누추해지려고 할 때마다, 연필을 들고 작성해보는 목록이 있다. 어디에서도 살 수 없는 것들의 목록!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는 세상이지만 물질로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실력' 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작가의 글솜씨나 화가의 그림 실력, 수영선수의 수영 실력, 발끝으로 도약하는 발레리나의 춤동작, 피아니스트의 유려한 연주.... 누군가 오랜 시간을 들여 연마한 기술, 자기 인생을 걸어 쌓은 전문성은 돈으로 가질 수 없다. 좋은 날씨, 마음의 평화, 우아한 태도 역시 돈으로 살 수 없다. 늙지 않는 생각, 다정한 마음,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자존감)은 돈으로 살 수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동시에' 나를 사랑하는 일, 가족의 신뢰, 친구들의 우정은 어디에서도 살 수 없다.
'호두 세알, 초코쿠기 한 개' 글도 좋아서 공유한다.
공책을 살펴보니 무람하게도, 행복이 죄다 자그마한 일들이란 걸 깨달았다. 일상에서 언제라도, 누구와라도 누릴 수 있는 것들. 소소하고 평범한 일들. 별일 없이 잠자리에 들고, 별일 없이 침대를 정돈하는 아침. 계절을 겪고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는 일이란 것임을 알게 되었다. 시인 블레이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상의 명성을 누리는 것이 달갑지 않다. 인간이 누리는 세속적인 영광은 무엇이든 그 크기만큼 영적인 영광을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이익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나는 오직 예술을 위해 살기를 소망한다. 그러므로 바라는 게 없다. 나는 아주 행복하다.
결국 행복은 '바라는 게 없는 상태' 다. 소소한 창작에 몰두하거나 고요한 내면을 돌보기 위해 시선을 자기 내부로 돌리는 일이다. 우리는 작은 행복을 잊고 살다, 일상이 비틀어질 때에야 비로소 '진짜 행복' 을 생각해보는지도 모른다. 평생 ' 큰 행복' 을 찾아 헤매는지도 모른다. 그런 건 없다. 큰 행복이라는 것. 행복에게 덩치가 있다면 분명 아주 작을 것이다! 눈 밝은 사람만 찾을 수 있을 만큼.
바라는 게 없는 사람은 꿈과 희망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당신에게, 세상에게 바라는 게 없는 사람이다. 바란다면 오직 스스로에게만, '산실하게' 바랄 것. 무엇보다 행복은 '바라기' 보다 '찾기'에 가깝다. 찾아내고 감사하기.
행복은 자그마한 일들이라는 이 문장을 가장 좋아한다.자그마한 일들을 기록하는 행복노트를 만들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