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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당신은 차별이 보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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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휠체어를 탄 60대 장애인 A씨가 식당에서 입장을 거부당한 사례가 언론 보도를 통해 공개됐다. 당시 식당 종업원은 "점심시간이라 곧 손님이 밀려올 텐데 왜 들어오냐"며 입장을 막은 뒤 A씨가 항의하자 마지못해 입구 주변의 자리를 내어주었다. 지난해 한 대형마트에서 장애인 안내견과 봉사자의 입장을 저지해 논란이 불거진 지 불과 5개월 만이다. 비장애인과 같은 삶을 누려야 마땅한 장애인들은 여전히 일상 속 깊숙이 자리잡은 차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책을 통해 '차별' 이라는 어려운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는 작년에 회사 북클럽 동료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는데, '그냥, 안녕' 책을 읽고 나서 다시 읽고 싶어졌다. 이 책은 평소에 우리가 무심코 하는 말들을 한 번 더 생각해보게 한다.


'결정장애'

이주민을 향한 '한국인 다 되었네요'

장애인을 향한 '희망을 가지세요'


이 표현들이 차별의 의미를 담고 있고 당사자에게 모욕스러울 수 있다니 나 또한 당혹스러웠다.


'결정장애' 표현에서는 우리는 '장애' 라는 표현을 어떻게 쓰고 있는 지 의식하지 못한다. 무언가에 '장애' 를 붙이는 건 '부족함', '열등함' 을 의미하고, 그런 관념 속에서 '장애인' 은 늘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로 여겨진다. 이는 장애인을 차별하는 표현이다.


'한국인 다 되었네요', '희망을 가지세요' 표현은 어떠한가?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칭찬과 격려가 있었을 것이다.이주민들은 한국인이 '다 되었다' 는 말에 자신이 아무리 한국에서 오래 살아도 우리는 당신을 온전히 한국인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에 모욕적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이유도 있는데, 굳이 한국인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닌데 왜 한국인이 된다는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제기였다. 장애인에게 '희망을 가지라는' 말 역시 전제 때문에 모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희망을 가지라는 건 현재의 삶에 희망이 없음을 전제로 한다. 장애인의 삶에는 당연히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더 근본적으로는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의 삶에 가치를 매기는 것이 모욕적이라고 했다. 설령 장애인이 사회적 조건으로 인해 생활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장애인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말하는 건 이상하다. 장애인이 희망을 가져야 할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변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과 생각들을 훑는 작업은 마치 세상을 다시 배우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별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다만 차별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을 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선량한 시민일 뿐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 '선량한 차별주의자' 들을 곳곳에서 만난다.


"우리의 생각이 시야에 갇힌다. 억압받는 사람은 체계적으로 작동하는 사회구조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불행이 일시적이거나 우연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차별과 싸우기보다 '어쩔 수 없다' 며 감수한다. 유리한 지위에 있다면 억압을 느낄 기회가 더 적고 시야는 더 제한된다. 차별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민하다' '불평이 많다', '특권을 누리려고 한다' 며 상대에게 그 비난을 돌리곤 한다.


그래서 의심이 필요하다. 세상은 정말 평등한가? 내 삶은 정말 차별과 상관 없는가? 시야를 확장하기 위한 성찰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내가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지적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내 시야가 미치지 못한 사각지대를 발견할 기회이다. 그 성찰의 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자연스러워 보이는 사회질서를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며 차별에 가담하게 될 것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평등도 저절로 오지 않는다."


"모두가 평등을 바라지만, 선량한 마음만으로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평등한 세상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 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익숙한 질서 너머의 세상을 상항해야 한다.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에 관한 상징이며 선언이다. 단지 법의 제정이라는 결과로서가 아니라, 지난 10여년 동안, 아니 그 전부터 차별과 평등에 대해 논쟁하며 고민한 결실로서 내리는 결단일 것이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인지 여부에 대한 싸움을 끝내고, 이제 어떻게 이 땅에 평등을 실현할 것인지 이야기 하자.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우리가 함께 모여 결의할 때 평등은 지그 바로 여기에서 이루어진다.


"평등은 그냥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평등은 인간 조직이 정의의 원칙에 의해 지배를 받는 한,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상호 간에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우리의 결정에 따라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평등하게 되는 것이다."


차별의 이야기는 단지 '사회적 약자' 혹은 '소수자' 로 표상되는 특정 집단에 한정되지 않는, 우리 모두의 삶을 구성하는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여러가지 이유로 차별을 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무수한 관계 속에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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