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65. 삶의 의미를 건져 올리는 궁극의 질문

무엇.JPG


우리는 항상 질문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왔지만 좋은 질문을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질문보다는 답변을 하는 데 익숙하다. 기획을 할때 문제를 파악하는 좋은 질문을 하는 것이 중요하고,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할때도 질문이 중요하며, 상대방에게 내 글을 기억시킬 때, 인생의 목표를 정할 때, 커리어를 정할 때도 나에 대해서 최대한 많은 질문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질문이라는 이 어려운 것을 책 한 권에 걸쳐 하는 저자가 있다. '무엇' 이라는 책에서 마크 쿨란스키는 삶의 의미를 건져 올리는 궁극의 질문들로만 글을 쓴다.


우리는 왜 여기 있는가? 이 모든 것은 왜 여기 있는가? 우리는 왜 죽는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우주 공간이 무한하다는 것은 무슨 뜻이며, 무한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겨울과 봄의 의미는 무엇인가? 새의 비행에는 무슨 의미가 있으며, 부패가 왜 중요하며, 우리의 삶은 모기의 삶과 다른가? 이런 질문들에는 목적이 있는가, 아니면 질문하기 역시 우주만큼이나 무한한가? 우리의 질문 실력은 이 과제에 부응하는가, 아니면 우리보다 앞서 갔던 더 훌륭한 질문자들에게 의존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확실히 안다고 할 수 있는가?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우리의 질문에 전혀 답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자연을 어떻게 설명했는가? "자연이 답변에 실패하는 까닭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잘못된 질문을 던져서가 아닐까?" 어떤 질문은 답변되지 않은 채로 남는 이유도 과연 그래서일까?


어떤 질문이 맨 처음에 오는지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어떤 질문이 맨 나중에 오는지, 즉 궁극적인 질문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라는 말은 과연 맞는 말일까? 만일 '누구' 를 따지는 사람들이 험담하는 사람들이고, '언제' 를 따지는 사람들이 조급한 사람들이고, '왜' 를 따지는 사람들이 몽상가들이고, '어디' 를 따지는 사람들이 길을 잃은 사람들이, '어떻게' 를 따지는 사람들이 실용주의잘들이라면 '무엇' 을 따지는 사람들은 사물의 핵심을 뚫고 들어가는 사람들인 걸까?


지적 추구의 핵심에는 무엇이 놓여 있는가? 바로 '무엇'일까?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이 문단의 첫 번째 문장은 질문이 아닌 진술로 읽혀야 하지 않을까? 어떤 사람은 '왜' 가 과학의 근본 질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과학에서 '왜' 라는 것은 단지 과학의 진정한 목표인 '무엇' 에 대한 답변으로 나아가는 가설에 불과하지 않은가?

왜 탈무드는 답변을 굳이 질문의 형태로 하는가? 예를 들면 왜 '누가 현명한 사람인가" 모두에게서 배우는 사람이다' 라고 말하는가? 그보다는 차라리 '모두에게서 배우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다' 라고 말하는 편이 쉽지 않은가? "누가 부자인가? 자신의 몫을 기뻐하는 사람이다" 또는 "누가 영웅인가? 자신의 충동을 정복한 사람이다 같은 Q&A 식의 내용이 탈무드에는 도대체 몇 개나 들어 있는가?


나는 본받을만한 인간인가?


혹시 나는, 혹시 당신은 너무 조용했던 걸까?

침묵이라는 손쉬운 범죄가 있었던 걸까?


우리는 이름 없는 사람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가? 그 두려움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의 답변에 관한 두려움이 아닌가? 이는 우리가 완고한 태도를 지닌 누군가와 마주할 때면 흔히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되는 이유가 아닌가? "너는 도대체 네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과연 누가 이 질문에 속 시원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보다 더 나쁜 질문도 있지 않은가?


설령 자기가 이름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고 해도, 그게 그토록 끔찍한 일일까?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야 더 낫지 않을까?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또 한 명의 이름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그렇게 나쁜 일인가? 시인 에밀리 디킨슨이 '나는 이름없는 사람이에요! 당신은 누구십니까?' 라는 시를 썼을 때 그녀가 생각한 것도 바로 그것이엇을까?


당신도 이름 없는 사람인가요?

그럼 세상에 우리 한 쌍이 있는 건가요?


책의 마지막에 인용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의 일부가 인상적이다.


"당신은 매우 젊고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최대한 강하게 당신에게 간청하는 바입니다. 선생, 부디 당신의 마음에서 해결되지 않은 모든 것을 인내하시고 ' 질문을 그 자체' 를 마치 걸어 잠근 방들처럼, 마치 완전히 외국어로 저술된 책처럼 사랑하려고 노력하십시오. 지금 답변을 찾으려 들지는 마셔야 하는데, 당신이 답변을 얻지 못하는 까닭은 당신이 그 답변에 따라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의 핵심은 모든 것에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지금 질문에 따라 '살기' 바랍니다. 그러면 당신은 점차적으로, 미처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언젠가 먼 훗날에, 살아가다가 답변과 마주할 날이 올 것입니다."


나는 직업상 'how' 를 따지는 사람이다. what 을 기획하기도 하지만 결국엔 어떻게 이를 실행할지 고민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사물의 핵심을 뚫는 what 무엇을 고민하는 사람도 되고 싶어졌다. 질문하는 실력을 늘려야겠다.


질문의 중요성를 다루는 두 개의 기사를 공유하고 싶다.


Good Leadership Is About Asking Good Questions

https://hbr.org/2021/01/good-leadership-is-about-asking-good-questions


내 글 읽었다는 고객, 왜 내용은 기억 못할까 | 마케팅/세일즈 | DBR (donga.com)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64.당신의 그릿은 어느 정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