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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최인아 북클럽 책- K- 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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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책은 훌륭한 질문에서 나온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세계를 조금이나 이해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생각해보는 일일 것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과연 무엇이 현재의 변화상들을 초래했으며, 한국 사회와 한국인은 대체 무엇이길래 이 변화 속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일까? 그리고 그런 변화들이 우리에게 끼친 영향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들에 대한 답으로 이 책을 썼다. 우리가 겪고 있는 시대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한국이 겪은 변화를 통해서 미루어 보고, 그를 통해 다시 한국이란 무엇인지를 돌아보고자 하는 책이다. 젊은 작가의 깊이 있는 생각이 담긴 책이다.


다섯개의 챕터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제3 장 '민족주의와 다문화에 관하여'라는 챕터이다. 비범한 사람들은 질문이 비범하다. 사실 이 책은 설명도 훌륭하지만 던지는 질문이 더 훌륭한 책이다. 한국에서 민족과 민족주의를 논하려면 짚고 넘어가야 할 쟁점들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한국 민족은 과연 무엇이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이루고 있는 독자적 민족은 존재하는가? 북한이 붕괴하여 남한에 대규모 북한인이 유입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세계화로 주권국가의 힘이 약해지고 그로 인해 민족주의 또한 약화된다면, 어떤 새로운 기제가 등장해 광범위한 사회적 협력을 창출해낼 수 있을까? 민족주의의 근본 심리인 인간의 부족적 본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는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부족적 본성을 반대한다고 하는 이들만의 또 다른 부족을 만들어낼 따름일까? 그리고 민족주의가 공적 기능과 협력 기제로서의 역할을 상실하고 그저 증오 표출과 대리만족을 위한 도구로만 남게 된다면, 우리가 전자를 회복하는 것은 가능할까? 회복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면 이제 시대적 소명을 다한 민족주의를 적극적으로 버려야 하는 것일까? 이런 질문들에 대답할 겨를도 없이 한국 사회는 민족에 관한 더욱 무겁고 심각한 질문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한국 경제의 번영에 따른 결과로 유입된, 거대한 이주민의 물결을 이루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다문화라는 현상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은 2018년 무렵에 한국 사회를 달군 제주도 옌민 난민 사태때부터였다. 관심사에 대해서 파고드는 성격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저자는이주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제조업에 종사하는 분들과 인터뷰까지 한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저자가 읽은 수많은 텍스트와 이런 인터뷰들이 놀랍다. 다문화 챕터는 저자가 경험한 에피소들을 소개하여 약간은 에세이처럼 쓰여 있다.


다문화 챕터에서 저자가 던지는 질문들도 범상치 않다.


그들과 그들이 관계를 맺은 외국인은 모두 영어에 유창했고, 세계화 시대의 필수적인 예법인 정치적 올바름에 익숙했으며, 세계화를 이끄는 영미권 문화를 유년 시절부터 내면화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세계화' 가 과연 내가 조치원이나 성환에서 목도했던 '세계화' 와 본질적으로 같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세계화를 수도의 중심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층의 세계화와 변두리에서 진행되고 있는 하층의 세계화라는 두 가지 형태를 동시에 겪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상층의 세계화만을 경험한 이들이 하층의 세계화를 경험한 이들을 두고 차별과 혐오를 논하는 것은 과연 올바른 일인 것일까?


“우리 사회의 상층의 세계화를 유일한 세계화라고 생각해서는 한국에서 진행되는 역동적인 민족들의 어울림과 부딪침, 그리고 다문화를 절대 이해할 수 없다”


는 이 문장이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다. 한국적 다문화가 장점을 키우고 단점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한국적 다문화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가감 없이 아래에서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산업재해율, 임금 체불, 2세대에 대한 차별과 따돌림이 여전히 현재진형 문제이지만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한국적 다문화에서 희망이 보였으면 한다.90년대생이 원하는 것은 결국 성취감, 노력하면 미래를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이라고 했는데 이 저자가 바로 대표자이다. 생각이 기대되는 젊은 친구여서 북토크에서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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