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정여울 작가님 추천 책- 안녕 주정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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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 는 오래 전에 읽었는데 정여울 작가님의 추천으로 다시 읽게 되었다. 요즘엔 북 리뷰를 쓰지 않는 책은 다시 읽어보려고 노력한다. 권여선의 소설은 고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의 표정을 짓고 있다고 평론가는 설명한다. 7개의 작품 중에서는 '이모' 라는 작품이 가장 마음이 아프다.

이모 윤경호씨는 대학 1학년때 부친을 잃은 이후 가장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직장을 구해 생활비를 벌면서 어머니와 남동생을 돌보았다. 이십대 중반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남동생이 도박빚을 져서 모은 돈과 퇴직금을 거기에 쏟아붓는다. 이후 결혼도 못 하고 십수년 동안 직상생활을 하며 가장의 역할을 지속해나가던 중 또 한 번 남동생의 빛 때문에 39세에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이후 10년 동안 빚을 다 갚고 나이가 50이 되었을 때 그녀는 결심한다. 돈이 모이는 대로 집을 나가겠다고. 5년 동안 1억 5천을 모은 그녀는 가족이 또 한 번 그를 희생시키려는 조짐이 보이자 마침내 집을 떠난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녀는 췌장암에 걸렸다. 그녀는 죽기 전에 2년 동안 자유로운 삶을 누렸다고 할 수 있지만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한 달 35만원으로 생활하며 매일 도서관에서 책 읽기. 하루 네 대의 담배, 일주일에 한 번의 음주. 사실 이 소설의 핵심은 그렇게 잠적을 결심하게 된 어느 겨울날 하루에 있을 것이다. 그가 살아갈 힘을 얻게 된 ‘그 겨울날의 이야기” 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것이 이 소설의 관건인데 그 부분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내가 처음부터 이렇게 철도 침목처럼 규칙적으로 살았던 건 아니다. 그렇다고 자유롭게 살았냐 하면 그것도 아니지. 희망이 없으면 자유도 없어. (중략) 그러다 조금씩 변해서 지금처럼 살게 됐는데, 그게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 밤 이후부터인 것 같구나." (89~90쪽)

이모는 검소하게 쓰고 남은 유산을 화자인 '나'와 나의 남편 태우에게 1/3을 물려주셨다.조카며느리 ‘나’는 그녀의 유산으로 입금된 통장의 숫자를 오래 들여다본 뒤 이렇게 말한다. “그 숫자들은 그녀와 세상 사이를, 세상과 나 사이를, 마침내는 이 모든 슬픔과 그리움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나 사이를 가르고 있는, 아득하고 불가촉한 거리처럼도 여겨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타인의 고통에 민감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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