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선생님은 오래 전에 Grand Master Class 에서 강연을 듣고 존경하게 된 어른이다. '이어령, 80년 생각' 이라는 책에서도 선생님의 생각하는 방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이 책은 선생님에 의해 다시 깨어난 조선일보에도 연재한 한국 시 32 편을 소개하고 있다. 선생님은 시는 말로 지은 집이라고 한다. 벽돌로 집을 짓듯이 말 하나하나를 쌓아 완성한 건축물이라고 한다. 생각이 남다른 사람들은 항상 자신만의 정의를 만든다는 것을 발견한다.
우선 쉬운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하지만 해석을 들으면 결코 쉽지만은 않은 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1. 엄마야 누나야 - 김소월
엄마야 누아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
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
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라는 시구의 뜻과 소리는 텍스트에 직접 쓰여 있지 않은 "아빠와 형" 의 남성 공간, 그리고 도시 문명공간과의 차이화에 의해서 비로소 전경화한다. 엄마는 아빠를, 누나는 형을, 그리고 강변은 도시를 대립항으로 하여 의미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종국에는 화자인 '아이' 마저도 '어른' 과의 대립소에 의해서 구조화한다.
욕망은 결핍과 부재에서 나온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라는 말은 곧 화자가 현재 강변에 살고 있지 않을수록 더욱 강렬한 의미를 생성할 것이다. 말하자면 현재 살고 있는 공간은 '강변' 의 자연 공간과는 정반대인 문명 공간일 것이며, 동시에 그것은 '엄마, 누나' 의 '여성 공간' 과 대립되는 '아빠, 형님' 의 세계, 나를 감싸주는 부드러운 세계가 아니라 끝없이 경쟁하고 도전하고 싸워가는 근육질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그 '남성 공간' 일 것이다. 그리고 시적 공간 속에서 강변에 살자로 외치는 주체 역시 현실 공간에서도 그러한 외침 마저도 상실한 어른들로 바뀌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남성의 공간을 끝없이 경쟁하고 싸워가는 공간이라고 표현한 것에는 사실 100% 동의하지는 않는다. 모든 남성들이 다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같은 시를 읽고 이런 생각을 유추했다는 것은 배울만하다. 숨겨진 텍스트를 발견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강변에 살자"고 호소하면 호소할수록 강변에 살 수 없는 반대의 현실 고백을 듣는 것 같다. 그리고 강변의 아름다움 묘사가 짙을수록 우리의 마음속에 떠오르고 있는 것은 우리가 상실한 산수화이며 공해에 찌든 살벌한 도시의 풍경이다. 그래서 시 "엄마야 누나야" 는 티 없이 맑고 순수한 노래처럼 들리면서도 다른 목가와는 달리 슬픔을 지는 여윤으로 울려온다.
누구나 쉽게 읽어온 시지만 막상 따져보면 이 시를 알고 있지 않았다. 그냥 해독하는 데도 결코 쉬운 시가 아니다.
2. 서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고등학교때부터 좋아하던 시다. 땅의 잎새와 하늘의 별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서로 접촉할 수가 없지만, 그 단절을 메워주는 것이 바로 그 바람이다. 풀잎에 이는 바람은 저 무한한 높이의 별들을 스치는 바람이기도 한 것이다. "일다" 와 "스치다" 라는 한국말이 이렇게도 절묘하게 어울린 예를 우리는 일찍이 보지 못했다. 밤을 통해서 별을 만나듯 바람을 통해서 풀잎은 별과 만난다. 하늘과 땅 사이를 매개하고 있는 바람은 '길' 과도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그것은 소멸의 잎새와 불멸의 별 사이의 바람 부는 공간 그리고 끝없이 되풀이되는 '오늘' 이라는 그 도상성이다. 하지만 '괴로워하다' 가 '노래하다' 로, '노래하다' 가 '사랑하다' 로 그리고 '사랑하다' 가 '걷다' 로 바뀌어가는 행동은 별과의 스침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별은 바람과 밤의 부정적 상황을 긍정적으로 들려주는 낮은 음자리표이며 지상적인 언어의 네가 필름을 반전시키는 감도 높은 인화이진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쉬운 책은 아니다. 문학전공자도 아닌데 시 해석까지 읽어야 하나 생각하는 분도 계실 수 있다. 하지만 이어령 선생님의 시 해석을 읽다 보면 차마 생각하지 못한 숨겨진 텍스트를 발견해서 시를 훨씬 더 잘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오스카 와일드는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시인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오식이 시인을 죽인다." 오식을 오독이라고 고쳐도 좋다. 시를 몇 가지 틀과 목적론에 의해서 자의로 해석하려는 순간, 비평이라는 그 납덩이의 언어들은 살아 있는 새의 날개를 찢고 심장을 꿰뚫는다. 사실 시에 정독이 있다는 개념 자체가 오독을 낳는 요인이기도 한다고 선생님은 말한다. 시는 끝없이 의미를 생성하고 있는 텍스트로, 그 의미는 복합적이며 그 구조는 변형적인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해석도 읽어보고 각자가 읽으면서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음 책은 언어와 교육 그리고 미디어와 민주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촘스키, 사상의 향연" 으로 선정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