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재와 사랑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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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은 문학 수업을 통해서 알게 됐는데 좋아하는 시와 시구 몇 가지 공유하고 싶다.


사랑의 미래


빛보다 느린 물

스위치 뒷면에

한 박자 먼저 흐르는 전기


둔한 사물은 모두 시간 차를 두고 데워지네


이 침묵보다 조금 시끄러운 침묵이 켜지는 사이 그릇 위 얼음산이 녹는다.

그릇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과 무관한

비가 내리고


불안하게 아늑한 실내는 때로는 내 얼굴만큼 낯설다.



-> 시각적인 시라서 좋다. 그릇 위 얼음산이 녹는 장면과 비가 내리는 장면이 겹친다. 이 침묵보다 조금 시끄러운 침묵은 어떤 침묵을 두고 이야기하는지 궁금해진다.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언 바다가 보인다

잘게 나뉘어 떠다니는 얼음 조각이 보인다

나는 지금 홀 중앙에 앉아 있는데

어떻게 이런 걸 다 볼 수 있는 것일까

온풍기가 돌아간다

어디선가 들어 본 음악이 흐르고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종업원이 돈가스를 가져다 준다

낮이면 더 어두워 보이는 가계의 식물

깨끗하게 접힌 냅킨이 허물어질 때

얼음은 바다 깊이 가라앉는다

혹시 필요하신 것 있습니까


부드럽게 이는 먼지

소용돌이치는 파도

언젠가 너를 위해 뛰어든 적 있다

이유 같은 것 없이

오래 된 가게에 들어간 적 있다

얼음이 서서히 녹는 동안

눈이 점점 나빠지는 동안

나는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들키고


산산조각 난 사랑에 더 이상 몰입되지 않는다.


-> 홀 중앙에 앉아 있는데 보이는 풍경이 언 바다라니 어디일까 궁금해진다. 이국적인 장소일까 생각이 들다가도 돈가스를 가져다주는 종업원이 있다는 말에 동네 풍경처럼 느껴진다. 언젠가 너를 위해 뛰어든 바다라는 대목에서는 모든 것을 던진 사랑을 한 것처럼 보이는데 결국 마지막엔 산산조각 난 사랑에 더 이상 몰입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보면 아픈 이별을 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파진다.




소외보다 나은


너에게는 엽서를 고르는 친구와 엽서를 쓰는 친구 그것을 받아 보관하는 친구와 파쇄기에 갈아 없애 버리는 친구가 있다 그들은 모두 손바닥만 한 산 풍경과 사랑에 빠진 자들 침엽수를 바위를 반짝이는 골짜기의 얼음을


->인간의 유형을 나누는 점이 엽서를 고르는 일이라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손바닥만 한 엽서 속 그림과 사랑에 빠진 자들이며, 결국 엽서를 어떻게 대하든 그건 엽서를 사랑하는 방식으로 치환된다고 해석된다는 점도.




웅크리기

껴안기


강을 끼고 산책하는 사람들의 주머니


나는 방에 누워 그것을 보고 있다


동전이 초콜릿이

음악이 흔들리고

새벽은 딱 그만큼 움직이기 좋은 시간


시트에 이는 먼지가

시트와 빛으로 나뉘는 시간


블라인드를 내린다


베개를 움켜쥔다


내 것이 아닌 건 이토록 부드러워

다른 꿈 다른 느낌으로 갈 수 있다고 믿은 적 있다


->새벽의 시간을 감각적으로 그려냈다는 생각과 함께, 거기에서 파생되는 나의 감정이 부드럽고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고독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유리함


무언가 넣을수록 가벼워지고 아무것도 안 넣을 때 제일 무거운 이상하고 아름다운 상자가 있다. 나는 길에서 이것을 보거나 주운 적 없고 집에 들여놓은 적도 없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심장을 뚫고 들어온 이것이 밤이면 현란한 불빛을 찾아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것을 느낀다. 심장에서 방에서 멀어지려는 것을 느낀다, 속도를 참으며 눈을 감으며, 다시 눈을 뜨면 어딘가로 진입하는 모서리가 보이고 투명한 얼굴 내가 잘 아는 얼굴이 보인다.


-> 결국 아름다움에 대해 논하는 것인데, 유리함 역시 내가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 그러나 내 근처를 맴돌면서 아름다운 채로 있는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은 문장들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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