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우리 사회의 큰 어른 이어령 선생님이 영면하셨다. 오래전부터 선생님의 책과 강연을 좋아해서 선생님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죽음을 앞두고 진행한 마지막 인터뷰를 책으로 엮은 것인데 어떻게 죽음 앞에서 이토록 태연하고 관대할 수 있을지 놀라울 뿐이다.
"인생도 다르지 않아. 어느 순간부터는 인생을 풀 full로 보는 게 아니라 불현듯 뛰어들어가 후반부 영화만 보는 것 같지. 영화가 끝나고 'the end' 마크가 찍힐 때마다 나는 생각했네. 나라면 저기에 꽃봉오리를 놓을 텐데. 그러면 끝이 난 줄 알았던 그 자리에 누군가 와서 언제든 다시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을 텐데. 그때의 라스트 인터뷰가 끝이 아니고, 다시 지금의 라스트 레슨으로 이어지듯이. 인생이 그래."
"자네는 나에게 '진리' 를 원하고 '정수'를 원하지. 그러나 역사는 많이 알려진 것만 기억한다네. 진실보다 거짓이 생존할 때가 많아. 진실은 묻히고 덮이기 쉬워. 하이데거가 그랬지. 일상적 존재는 묻혀 있는 존재라고. 내가 여러 번 얘기하지 않았나. 덮어놓고 살지 말라고. 왜냐면 우리 모두 덮어놓고 살거든. 덮어놓은 것을 들추는 게 철학이고 진리고 예술이야. 그런데 지금 우리 시대가 가장 감쪽같이 덮어놓고 있는 게 무엇일 것 같나?" "눈물은 아닐 테고요." "우리가 감쪽같이 덮어둔 것. 그건 죽음이라네. 모두가 죽네. 나도 자네도." "진실의 반대말이 뭔 줄 아나?" "진실의 반대말은 망각이라고 그러셨지요. 잊지 않고 있습니다." "맞아. 우리가 잊고 있던 것 속에 진실이 있어. 경계할 것은 거짓이 아니라 망각이라네. 덮어버리고 잊어버리는 것.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어. 은폐가 곧 거짓이야. 그러니 자네는 내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고 떠오르는 것, 들춰지는 것들을 그때그때 잘 스냅하게나."
"고분고분살면 평생 진실을 모르게 된다." "고백건데 생각하며 산다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야. '좋은 게 좋은 거' 라며 사는 사회에서 얼마나 불편한지 모르네." "둥글둥글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의 세계에선 관습에 의한 움직임은 있지만,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자기 발전의 동력은 얻을 수 없어. 타성에 의한 움직임은 언젠가는 멈출 수밖에 없다고. 작더라도 바람개비처럼 자기가 움직일 수 있는 자기만의 동력을 가지도록 하게." "자기만의 동력이요?" " 백번을 말해도 부족하지 않아. 생각이 곧 동력이라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중력 속의 세상이야. 바깥으로부터 무지막지한 중력을 받고 살아. 억압과 관습의 압력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생각하는 자는 지속적으로 중력을 거슬러야 해. 가벼워지면서 떠올라야 하지. 떠오르면 시야가 넓어져."
"우리가 이 문명 사회에서 그냥 떠밀려갈 것인지, 아니면 힘들어도 역류하면서 가고자 하는 물줄기를 찾을 것인지...고민해야 한다데."
"한국 유학생들이 유학 가서 지적받는 게 뭔 줄 아나? 문제를 구체화하지 않고 일반화 한다는 거야. 한국인들은 공통적으로 거대담론을 좋아해. 나도 그런 특성이 있다는 걸 부정하지 않아. 하지만 나는 아주 작고 사소하고 구체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해. 추상적인 이야기는 질색이거든."
"생각을 다루는 인지론, 실천을 다루는 행위론, 표현을 다루는 판단론. 인간으로 풍부하게 누리고 살아가려면 이 세 가지 영역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하네."
"그런 사람이 바로 21세기의 리더고 인재라네. 어느 조직이든 이쪽과 저쪽의 사이를 좋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조직은 망하지 않아. 개발부와 영업부, 두 부서를 오가며 요구와 불만을 살살 풀어주며 다리 놓는 사람. 그 사람이 인재고 리더야. 리더라면 그런 '사잇꾼' 이 되어야 하네. 큰 소리 치고 이간질하는 '사기꾼' 이 아니라 여기저기 오가며 함께 뛰는 '사잇꾼' 이 돼야 해.
"너 존재했어?" "너 답게 세상에 존재했어?" "너만의 이야기로 존재했어?" " 최근에는 가족들과 서로 오해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어. 딸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나니 가장 아쉬운 게 뭔 줄 아나? '살아 있을 때 그 말을 해줄 걸' 이야. 그때 미안하다고 할걸, 그때 고마받고 할걸....지금도 보면 눈물이 핑 도는 것은 죽음이나 슬픔이 아니라네. 그때 그 말을 못 한 거야. 그 생각을 하면 눈물이 흘러. 그래서 너희들도 아버지한테 ' 이 말은 꼭 해야지' 싶은 게 있다면 빨리 해라. 지금 해야지 죽고 나서 그 말이 생각나면, 니들 자꾸 울어. "
이 대목에서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선생님,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당신의 삶과 죽음을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면 좋겠습니까?"
"바다에 일어나는 파도를 보게. 파도는 아무리 높게 일어나도 항상 수평으로 돌아가지. 아무리 거세도 바다에는 수평이라는 게 있어. 항상 움직이기에 바다는 한 번도 그 수평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다네. 하지만 파도는 돌아가야 할 수면이 분명 존재해. 나의 죽음도 같은 거야. 끝없이 움직이는 파도였으나, 모두가 평등한 수평으로 돌아간다네. 본 적은 없으나 내 안에 분명히 있어. 내가 돌아갈 곳이니까.
촛불도 마찬가지야. 촛불이 수직으로 타는 걸 본 적이 있나? 없어. 항상 좌우로 흔들려. 파도도 늘 움직이듯 촛불도 흔들린다네. 왜 흔들리겠나? 중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야. 나무들이 흔들리는 것도 원래의 자세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네. 바람이 없는 날에도 수직의 중심으로 가기 위해 파동을 만들지. 그게 살아 있는 것들의 힘이야." "당신의 인생은 촛불과 파도 사이에 있었군요. 정오의 분수가 왜 슬픈지 알겠습니다. " "촛불은 끝없이 위로 불타오르고, 파도는 솟았다가도 끝없이 하락하지. 하나는 올라가려고 하고 하나는 침잠하려고 한다네. 인간은 우주선을 만들어서 높이 오르려고도 하고,심해의 바닥으로 내려가려고도 하지. 그러나 살아서는 그곳에 닿을 수 없네. 촛불과 파도 앞에서 항상 삶과 죽음을 기억하게나. 수직의 중심점이 생이고 수평의 중심점이 죽음이라는 것을." 나도 죽음을 이렇게 담담하게 받아들 수 있을지... 선생님의 지혜를 이렇게 책을 통해서 들을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마음에 울림을 주는 책이고 오래 오래 기억할 책이다. 인터뷰를 글로 옮긴 김지수 작가의 필력도 좋아한다. 소크라테스를 기록하려던 플라톤이 되겠다는 야심 대신 그저 겸허하게 스승의 마지막 시간을 다음으로 노력했다는 작가의 겸손함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