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털거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알람처럼 정확한 시간에 들려오는 낡은 세탁기가 내는 소리는 시어머니의 혼잣말과 엉켜서 휴일의 나른한 아침을 사정없이 흔들어 깨운다. 그 소리에도 계속 누워 밍기적거리기는 여간 힘들지 않다. 남편은 한밤중인데, 나는 그 소리가 자꾸 여기저기 쿡쿡 찌르는 듯 불편하다. 이 방 저 방 방문이 차례로 덜컹 열리고 방바닥에 흩어진 옷가지나 젖은 수건은 여지없이 다용도실로 직행이다.
삐그덕 거리고 털털거리는 오래 된 세탁기를 바꾸려 시도했지만, 어떤 물건이든 움직이기만 하면 아직 새 거라 우기는 어머님의 고집에 쉽게 바꿀수 없었다.
가족 간의 오해나 갈등은 큰일이나 먼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작고 사소한 일들이 쌓여서 그 덩어리가 커지면서부터 시작된다. 특히, 고부간의 갈등이 그렇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30여년을 함께 살았다. 시아버님의 오랜 병수발도, 시누이 시동생과의 복닥거리는 생활도 그리 힘들게 여기지는 않았다. 아이들을 키워놓고 다시 직장을 나가게 되었고, 내가 해왔던 집안일을 어머님이 맡게 되면서부터 갈등이 시작됬다.
시장에서 장사를 오래 하셨던 어머님은 집안일이 서툴렀다. 결혼을 하고 시댁에 오니 몸이 불편한 아버님이 집안일을 하고 어머님이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하셨다. 시장을 보고 저녁메뉴를 정하는 것도, 아버님께 물어보고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아버님과 의논해야했다. 좀 번거롭기는 했지만 별 갈등 없이 잘 지내왔었다.
다들 출가를 하고 아버님은 돌아가셨다. 힘에 부쳐 장사를 접은 어머님이 그간 해보지 못했던 살림에 재미를 들이기 시작했다. 천성이 부지런하고 재바른 성격이라 일을 놔두고 보지 못해서 하루 종일 뭔가를 하고 계셨다. 쓸고 닦고 하는 건 그렇다 치고 음식도 이것저것 자꾸 하기는 하시는데 도무지 늘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할머니가 만든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으니 어머님은 그게 또 서운하고 그렇게 서로 조금씩 불만과 서운함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 갈등의 시발점은 빨래였다. 아이가 셋이라 옷을 사도 튼튼하고 질이 좋은걸 사서 물려 입히다 보니 비싼 브랜드의 옷을 주로 입혔다. 나는 아이들의 옷이나 남편의 셔츠, 니트, 속옷 등은 손빨래를 했다. 양말이나 청바지, 오래 입어 낡은 옷들은 세탁기에 넣지만 대부분의 옷들은 취급 방법대로 손세탁을 해야 오래 잘 입을 수 있다. 얼룩이나 오염이 심한 옷은 부분세탁을 하고 조물조물 주무르고 여러 번 휑구고 물기를 어느 정도 빼고 탁탁 털어 널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어머님이 집안일을 맡아 하고부터 옷들은 여지없이 세탁기에 들어갔다. 니트가디건은 늘어나고 속옷의 와이어는 틀어지고 아이의 레이스 원피스는 너덜너덜 해져 있었다.
망가진 옷을 들고 속상해 할 때마다 남편은, 당신이 어머님이 세탁기에 넣기 전에 먼저 재빠르게 하면 될 일을 왜 여러 사람 마음 상하게 하느냐고 역정을 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아이들 챙기느라 주중에는 늘 바빴다. 그리고 부지런한 어머님이 빨래거리를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었다. 사냥감 낚아채듯 빨래를 수집하러 온 집을 뒤집고 다니는데 감춰 놓기도 하고, 이건 세탁기에 절대 넣으시면 안돼요, 하고 부탁도 해봤지만 그때뿐이었다. 심지어는 실크스카프도 쭈글이가 돼서 나왔고, 밍크털 장식이 붙은 모자는 머리가 두 개 들어가고도 남게 되었다.
속상함을 어머님께는 대놓고 말도 못하고 애먼 세탁기에 트집을 잡았다. 드럼세탁기로 바꾸면 소음도 적고, 옷도 안 상하고, 세탁도 깨끗하게 된다고 남편을 설득했다. 남편이 반 이상 넘어 오는가 했는데, 어머님이 한마디 하신다.
“ 멀쩡하게 잘 돌아가는 새 기계를 뭐할라고 바꿔가 돈을 쓰노. 아직 잘만 돌아가는구마. 세탁기가 어디데한 두 푼이가.”
그 길로 세탁기 교체설은 힘을 잃고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빨래로부터 시작된 고부간의 감정의 골이 점점 깊어졌다. 어머님이 하시는 일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프라이팬을 쓰고 기름을 닦아내지 않는 것도, 쓴 컵을 물로만 쓰윽 헹궈내는 것도, 오래된 낡은 행주를 계속 쓰는 것도. 나는 안보이게 치우고 버리고, 어머님은 다시 주워오면서 살림 헤프게 한다고 나무랐다. 집안일을 하시는 게 나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힘들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속으로만 쌓으니 집이 편하게 쉬는 공간이 아니라 예민해지고 모든 게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모임이며 운동이며 핑계를 대고 늦게 들어가는 구실을 찾았다. 안보고 덜 부딪히는 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며칠 전 어머님께 다급하게 전화가 왔다.
“ 야야, 우야노. 세탁기가 서삤다. 안돌아간다.” 나는 전화를 끊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당분간 세탁기를 안사야지. 몸은 힘들겠지만 빨래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퇴근을 하고 세탁기를 들여다보니 타는 냄새가 났다 모터가 나가버린 모양이다. 오래되어서 A/S를 받을 수도 없으니 새로 사든지 해야겠다고 말하고는 한동안 세탁기를 사지 않았다.
빨래를 널고 개고 정리하는 일이 소일거리였던 어머님은 손빨래는 엄두를 못 내고 할 일이 없어지자 풀이 죽어계셨다. 그 모습을 보자니 또 짠하고 안스러웠다. 휴일에 남편과 마트에 가서 세탁기를 살폈다. 신형 드럼세탁기는 기능도 많고 엉킴이 없어 옷의 손상도 적다는 판매원의 설명에 혹하기는 했지만 새로운 기계를 어려워 할 어머님 생각이 들었다. 결국 어머님이 쓰기에 어렵지 않은 제품으로 결정을 하고 집에 돌아와 어머님과 마주 앉았다.
“어머니, 제가 빨래 바구니에 담아두는 것만 세탁기에 넣고 다른 건 마음대로 빨래하시면 안돼요. 그리고 주말에는 일찍 세탁기 돌리지 마시구요.”
몇 번을 다짐을 하고 그러마 하는 약속을 받아냈다.
모처럼 휴일 아침에 조용한 아침잠을 즐긴다. 설핏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나긴 하는데, 그전보다 부드럽다. 어머님의 발소리도 목소리도 부드럽다.
그런데 이 평화가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