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자

by 한유당

새 아파트에 입주 하는 날, 못과 망치를 손에 든 남편과 실랑이를 벌였다. 방과 거실을 분주히 오가며 못 칠 자리를 가늠하는 남편을 막아섰다.


“거실하고 안방에는 아무것도 걸면 안돼요!”


한 치의 물러섬 없는 나의 기세에 남편은 아쉬운 대로 어머님 방의 한쪽 벽에다 가족사진이 담긴 액자와 달력을 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남편은 무엇이든 벽에다 거는 것을 좋아한다. 촌스럽다고 면박을 줘도 그때뿐이고 오래된 결혼사진이며 아이들 돌 사진을 줄줄이 걸어두려고 한다. 가족의 역사가 한 눈에 보인다며 얼마나 보기 좋으냐며 노인네 같은 소리만 한다.


나는 집안의 벽에다 그림이나 사진이 담긴 액자를 걸지 않는다. 깨끗한 벽에 못을 박는 것도 마뜩찮고 무엇보다 어린 시절에 겪은 액자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다. 나는 기억 속의 액자 안에 갇혀서 오랫동안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 특별한 손님이 방문하게 되면 온 학교가 들썩였다. 특히 장학사나 교육청 관계자의 방문이 있는 날에는 학교 안팎의 정리는 물론이고, 학생들의 복장이나 학업 태도까지도 점검하고 연습해서 잘 보여주어야 했다.

창틀마다 매미처럼 다닥다닥 매달려 말갛게 유리창을 닦고 한 줄로 엎드려 초칠을 해 가며 마루로 된 교실 바닥을 윤이 나도록 닦아야했다. 교실 뒤편의 환경 정리도 새로 하고, 학교 뒤편 교재원의 잡초도 뽑았다.

청소를 하고 있는 나를 선생님께서 부르셨다. 복도에 걸어둘 시화 액자를 만들려고 하니 시를 한 편 써오라고 하셨다. 집으로 가는 길 내내 시상을 떠올리며 시인이라도 된 것처럼 끙끙대며 밤늦도록 시를 썼다 지웠다 했다. 다음 날 선생님께 보여드렸더니 아주 잘 썼다는 칭찬을 들었다. 반 아이들 앞에서 낭송을 하고 박수까지 받았다.


거기까지였다. 다음날까지 오천 원을 가지고 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기 전 까지는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오천 원, 시화 액자를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이었다. 선생님 앞에서 나는 선뜻 대답을 못 하고 우물쭈물 거렸다. 조금 전까지 시를 낭송하던 낭랑한 목소리는 목구멍 속으로 기어 들어가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머니가 하루 종일 남의 밭에서 일을 하고 받는 품삯이 삼천 원이었다. 학교에서 필요한 거라면 기꺼이 주실 어머니였지만 저녁 내내 말은 꺼내지도 못했다. 들일에 지쳐 곤히 잠들어 있는 어머니를 보니 도저히 입이 떨어 지지 않았다.


아침에 말하려고 일찍 일어났지만 어머니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밥상을 차려두고 도시락을 싸놓고는 새벽부터 들에 나가셨다. 밭으로 찾아갈까 이웃에 가서 빌릴까 망설이다가 그냥 나섰다. 결석을 한 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학교 가기가 싫었다. 선생님은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훑어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에 다른 아이를 불러 무언가 이야기를 했다.


며칠 후, 등교하는 나를 친구 잡아끌었다. 복도 앞에다 나를 세우더니 높게 걸려 있는 액자를 가리켰다. 반듯한 액자 안에는 은은한 꽃 그림이 바탕에 그려져 있고 내가 쓴 시가 예쁜 글씨체로 써져 있었다. 하지만 액자 속 어디에도 내 이름이 없었다. 몇 번을 다시 봐도 내 이름이 아니었다. 그 날 선생님 앞에 불려갔던 그 아이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액자에 담긴 순간, 시는 내 것이 아니었다. 아무런 고민도 죄책감도 없이 액자 값을 지불한 그 아이의 것이 돼버렸다. 선생님과 그 아이는 내게 단 한 마디의 양해도 사과도 없었다. 내가 교실에 들어서자 선생님은 고개를 돌려 내 눈을 피했고 아이들은 웅성거리며 나와 그 아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가방에서 책을 꺼내서 읽었다. 글씨가 자꾸 겹쳐져 보였다.


액자는 그날부터 복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오가는 나를 비웃었다. 복도를 지날 때마다 바닥만 내려다보며 재빨리 그곳을 벗어났다. 일 년 내내 액자는 나를 고개 숙여 지내게 했다. 겨울 방학식날, 그 아이는 액자를 떼서 집으로 가져갔다. 한 학년 내내 나를 무겁게 짓누르고 비웃던 액자를 들고 당당하게 교문을 나서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선생님과 그 아이인데도 여전히 부끄러움은 나의 것이었다.


액자는 가난한 내 유년의 비애를 담고, 사는 동안 내내 내 마음 안에 걸려 있었다. 빼내지 못하는 부끄러움이 표구가 되어 있는 액자는 가끔씩 덜컥거리며 나를 흔들어댔다. 그때마다 아팠다. 날카로운 못에 찔린 것 같기도 하고, 목에 뭔가가 걸린 것 같기도 하고, 액자의 각진 모서리에 받혀 멍이 드는 것 같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 어른이 되어서도 액자는 빼 낼 수도, 떼 낼 수도 없이 걸고 다녀야 하는 무겁고 아픈 짐이었다.


삼 십 년도 더 지나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그 친구를 다시 만났다. 신춘문예에 당선 된 내 기사를 신문에서 봤다며 환하게 웃으며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글을 잘 쓰고 책을 또박또박 잘 읽어서 선생님께 칭찬을 받던 내가 늘 부러웠었다고 한다. 그 친구는 액자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이 없는 것 같았다. 마음 한편에서는 그 친구의 사과를 받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그 친구가 기억을 못하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루쉰의 수필 ‘연’을 떠올렸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어린 시절 동생이 좋아하던 연을 망가뜨린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던 작가는 동생을 만나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려 했다. 하지만 동생은 그 일을 기억도 못했다. 루쉰은 ‘ 깡그리 잊어버려 티끌만한 원한도 없는 일을 용서하고 말고가 어디 있겠는가.’ 라고 했다.

가해를 한 쪽이 평생 죄책감을 갖고 살수도 있고, 반대로 피해자가 평생 고통스런 기억 속에서 살 수도 있다. 같은 사건을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하기도 하고 잊고 살기도 한다. 내 잘못이 아닌 일을 나는 오래도록 액자에 끼워 걸고 살았다.


내 마음에서 오랫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부끄럽고 무거운 액자를 떼 내기로 했다. 루쉰의 말처럼 상대는 기억도 못하는 일을 용서하고 말고가 어디 있겠나. 다만 남의 것인 줄 분명히 알면서도 자기 이름을 슬쩍 끼워 넣은 그 친구의 비겁함도. 어린 제자들에게 부끄러움과 비겁함을 가르친 선생님의 행동은 진정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액자를 걷어낸 자리만큼 비워진 마음의 자리가 가볍다. 액자가 걸렸던 깊은 못자국은 아직 남았지만 그것도 곧 메꿔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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