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마리를 심었다. 볕이 잘 드는 마당 한쪽에 페퍼민트와 메리골드도 나란히 심었다. 나는 향이 나는 식물들을 좋아한다. 또 향수나 향초를 좋아하고, 아로마나 선향을 피운 은은한 공간에서 책을읽고 글을 쓰는 것이 커다란 즐거움이다.
향(香)이라는 말은 좀 관념적이고 포괄적으로 들린다. 나는 향보다는 냄새가 개별적인 사물의 본질에 더 닿아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좋아하는 냄새가 나면 저절로 눈이 감기고 입 꼬리가 올라가면서 그 냄새의 진원지를 찾거나 섞인 냄새 속에서 각각의 개별적인 냄새를 분류하고 분석하느라 코를 벌름거린다.
얼마 전 인센스 스틱이라고 부르는 선향 한 묶음을 주문했다. 서재에 피워두고 책을 읽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차분해져 가끔 피우곤 한다. 주말에 시골집에 가지고 가려고 미리 현관 입구에 챙겨 뒀던 상자가 보이지 않았다. 온 집을 뒤져도 보이지 않던 상자는 혹시나 해서 열어본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들어있었다. 상자는 열려있고 선향은 쏟아져 먼지와 쓰레기를 뒤집어쓰고 우겨지고 부러져있었다. 겨우 쓸만한 걸 추려 건 졌다.
쓰레기 봉투에 버려져 동강 동강 부러진 건 향 뿐만이 아니었다. 내 마음도 그랬다. 종교적 신념이 삶의 모든 우선순위인 시어머니의 눈에 뜨인 며느리의 물건은, 불경스럽고 못마땅하고 쓰레기 같은 것이었다. 그것의 용도가 어디에 있든 간에 향이라는 물건은 시어머니에겐 우상을 섬기는 도구일 뿐이었다. 따지고 싸울 마음도 나지않았고 그래봤자 상처 받는건 나인걸 잘 알기에 입을 닫았다. 그리고 오래 마음을 닫았다.
혼자 시골집에서 와서 향을 피웠다. 보라색 스틱에선 라벤더 냄새가 나고 초록색에서는 숲속 젖은 나뭇잎 냄새가 났다. 가늘고 긴 연기가 가볍게 일렁이며 흩어진다. 냄새가 호흡을 따라 내 안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전과는 다른 냄새다. 뭔가 빠져있었다. 분명 그 냄새가 맞기는 하지만, 냄새의 행간에 묻어 있는 투명한 고요와 잔잔한 설렘이 사라졌다. 대신 쓰레기봉투에 들어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냄새, 내 취향이 무시된 속상함과 서운함이 뒤섞인 잡냄새들로 머리가 아파왔다. 결국 향을 다 태우지 못하고 꺼버렸다.
좋아하는 냄새의 밑바탕에는 언제나 내 마음이 깔려 있었다. 향수로 치자면 베이스노트(base note), 맨 아래에 묵직하게 깔려 오래 가는 냄새 말이다.
몇 년 전 , 모나코에서 프랑스 니스로 가는 길목에 있는 에즈라는 오래된 마을에 들른 적이 있다. 바다를 끼고 산비탈을 따라 골목이 나있고 저 건너 봉우리에는 오래된 성채가 내려다 보고 있는 곳에 그리 크지않은 향수공장이 있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의 배경지인 그라스에 한번 가고 싶었으나 일정이 맞지않아 대신 에즈의 향수공장을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향수의 주인공인 그루누이가 찾은 궁극의 냄새, 절정의 냄새는 바로 사람의 체취였다. 냄새를 갖지 못한 그가 냄새를 만들어 내는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한 사람이 가진 고유한 냄새, 그를 둘러싼 환경의 냄새, 그 냄새를 알면 상대에 대한 이해 또한조금은 수월해지고 너그러워 질 것이다. 마음에 깔린 베이스노트가 맑고 깊어야 좋은 냄새와 잘 섞이어 들것이다.
좋은 기억과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다시 향에 불을 붙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