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보 크로스피터가 글쓰기와 크로스핏에 임하는 자세.
For time ; 최대한 빨리 끝내기
AMRAP(As Mant Rounds As Possible) ; 주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라운드 하기. 크로스핏을 지탱하는 두 가지 큰 규칙이다. For time 운동을 성공적으로 끝내기 위해서는 주어진 모든 운동 동작(WOD ; Workout Of the Day, 오늘의 운동)을 노력 그 이상의 슈퍼파워 노력을 끌어와 임해야 한다. 그러니까 For Time WOD가 끝나면 머릿속이 하얘지고 목에서는 피 맛이 나야 하는 상태여야 한다는 것이다. AMRAP WOD를 성공적으로 끝내기 위한 방법은 For Time 운동과는 약간 다르다. 주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라운드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하며 그 전략을 한 단어로 설명하자면 '균형'이라 할 수 있다. 체력이 많은 초반 자신을 과 평가해 Over pace로 운동을 이끌어서도 안되고, 자신 수준과 눈높이에 맞지 않은 주변 크로스피터들 Pace에 휩쓸려서도 안되며, 매-순간 매-동작마다 나약한 자신과 타협하는 Pace로 진행해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AMRAP 운동도 WOD가 끝나면 머리가 하얘지고 목에서는 피 맛이 나야 하는 상태라는 것이다.
나는 크게 두 가지 규칙을 가지고 있는 크로스핏을 2년간 꾸준히 혹은 매일 즐기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나약한-쫄보 크로스피터이기에 For Time WOD와 AMRAP WOD를 끝낸 모든 순간에 머리가 하얘지고 목에서 피 맛이 나는 경험을 하지 않는다. 어느 날에는 내가 짊어져야 할 무게와 타협하고 - 어느 날에는 숨이 차 헐떡일 나와 타협하고 - 어느 날에는 다칠 것 같다는 공포심에 타협을 하고 - 또 어느 날에는 작은 상처와 작은 통증에 타협하며 WOD을 진행한다. 그 결과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다치지 않고 성장 없이(?) 크로스핏을 즐길 수 있었다. 더불어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꾸준히 크로스핏을 즐길 수 있었던 이유는 크로스핏 규칙과 내가 살아가야 할 인생 규칙이 닮았으며, 크로스핏 규칙을 임하는 내 방식이 내 인생을 살아가는 내 방식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For Time WOD를 임할 때와 같이 슈퍼파워 노력을 해야 했던 어느 순간에 나는 간사한 나와 타협해 일을 망치기도 했고, 꾸준히 균형을 가지고 임해야 하는 순간에도 나를 과대평가한 나머지 Over pace로 일을 수행해 일을 그르치기도 했고,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다른 길로 빠져 내 길을 잃기도 했으며, 나약한 나와 타협해 지레 겁먹고 일을 중도에 포기하기도 해왔다. 갑자기 운동을 하다 말고 인생 성찰이냐 할 수 있다.
맞다. 오늘도 어김없이 나약한 나와 타협하며 WOD를 진행하고 끝내서 머리에 딴생각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나와 다르게 타협하지 않은 저 크로스피터들 그리고 수많은 크로스피터들은 지금 이 순간 바닥과 하나 돼서 거친 숨을 고르고 있다. 바닥과 하나 된 저들을 보고 있잖니 너무 태평한 내 모습이 부끄럽다. 그러니 다시 시선을 나로 돌려 내 얘기로 돌아와야겠다.
나는 작가가 꿈인 사람이다. 근데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글쓰기 근육'을 키우는 운동을 수행한 시간이 없다. (독서와 마무리 없이 끝낸 수많은 텍스트 파일과 자소서를 글쓰기 운동이라 하기 부끄럽다.) 있는 시간 없는 시간 쪼개가며 진짜 생존 근육을 키우는 운동만 해온 것이다.(운동선수가 꿈이냐?) 그럼 여기서 내 꿈을 정말 작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무언가가 꿈인 사람은 정말 간절하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주어진 시간을 쪼개고 만들어서 어떠한 노오오력을 한다. 하지만 나는 아니 그래 왔다. 그러니 내 꿈에 대해, 내 간절함에 대해 이제는 의심할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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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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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을 가져봤다. 그리고 이제 그 의심 덕분에 이성적인 대답을 내놓을 수 있다. 작가라는 꿈은 나를 포장하기 위한 허울 좋은 꿈이었던 것 같다.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보이고자- 남들보다 내가 조금 더 이상적인 사람으로 보이고자 감투로 뒤집어쓰고 있던 꿈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이성적인 판단을 했음에도 그리고 작가라는 꿈을 내려놨음에도 여전히 나와 '글쓰기'라는 분리되지 않는다. 과거부터 운동을 끝낸 지금 이 순간까지 수많은 가능성(?)을 지닌 문장과 딴생각들이 씨처럼 뭉쳐 머릿속에서 두둥실 떠돌고 있고, 나는 그 문장과 딴생각들을 그냥 흘려보내거나 썩히고 싶었던 적이 없다. 그 모든 씨 같은 것들을 글로 써 발아시키고 싶다. 지금 이렇게 써지고 있는 이 글처럼 말이다.
오호라- 이렇게 쓰고 보니 '글쓰기'라는 행위는 포장이나 감투가 아닌 진정으로 내가 품은, 나와 분리되지 않는 간절한 행위인 것이다. 그럼 이제 그 간절함이 지닌 진정성을 시험해볼 차례라 할 수 있다. 허울이었으며 감투였던 작가라는 꿈은 그동안 내 글에 무게와 힘을 담당해왔다. 하지만 이제 허울과 감투를 내려놓은 글 쓰는 어린이 글린이기에 더 이상 무게와 힘이 필요 없다. 오직 글 쓰는 행위에 대한 진정성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서는 꾸준히가 답일 것이다. 글쓰기를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역시- 크로스핏에 임하는 내 자세가 안성맞춤인 것 같다. 주어진 시간 내에 끝을 내지만 적당히 힘 빼고 타협해가며 즐기는 자세 말이다. 자 이제 삶을 살아가며 나노 단위로는 크로스핏을 하며 나와 타협하며 멈춰진 그 시간에 떠도는 모든 씨들을 모아 모아 글로 써 꾸준히 발아시켜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