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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구 May 06. 2019

눈치 게임

배려에 관해서.



운동이 끝나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을 감고 아무 생각 없이 천장을 바라본다. 그렇게 10초 - 20초 - 30초 눈을 뜨고 주변을 돌아본다. 나보다 먼저 컨디션을 회복했거나 - 나보다 먼저 운동을 끝냈거나 - 아직 운동을 시작하지 않은 사람들이 내 운동 장비를 치워주고 있다. 그 이타심 넘치는 광경을 보고서는 속으로 '잠시만 더'라는 스스로의 합의점을 찾고 다시 눈을 감고 잔여 거친 숨을 몰아쉰다. 1초 - 2초 - 3초 - 4... 눈을 뜨고 일어나며 그들을 향해 얘기한다.


"고맙습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이따금 그 반대의 상황에 놓일 때가 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닥과 물아일체가 되신 분을 보며 -


"와 대단하다"


내가 슈퍼파워 최선을 다하지 못한 운동에 슈퍼파워 최선을 다한 그들을 향해 진심이 담긴 감탄사를 뱉어내며 그들의 무거운 흔적을 한 줌 한 줌 줍는다. '아이고 허리야.'를 속으로 조심스럽게 뱉어내며.




지금은 이러한 상황들을 글로 태연하게 쓸 만큼 너무 익숙하고 당연하다. 하지만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때 이 상황은 참 낯설었다. 내가 지쳐 쓰러졌는데 - 처음 본 사람들이 내가 사용한 고철들을 치워주고 있다니. 그 순간 나는 그들의 배려심을 GUTS(내가 다니는 크로스핏 박스 이름임)의 규칙이라 판단해버렸고  그 때문에 뇌피셜 규칙을 굉장히 잘 이행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시작했다. 거친 숨을 참아가며 다른 크로스피터들의 운동기구를 함께 치워주기까지 하며 말이다.


심장이 시키는 일이 아닌 뇌가 시키는 일을 기계적으로 하다 보니 뇌피셜 규칙을 이행하지 않는 이들을 향한 미움이 싹트기 시작했다. '아니, 다 같이 운동하고 즐기는 박스인데 이런 규칙을 좀 지켜주지'라는 바보 같은 생각이 내포된 미움이었다. 바보 같은 미움과 동시에 뇌피셜 규칙을 지키지 않는 이들을 향한 혼자 만의 눈치 게임을 시작했다.  근데 혼자 하는 눈치게임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눈치게임 일! 눈치게임  일! 눈치게임  일! 혼자 왔습니다 혼자 왔습니다. 혼자 왔습니다. 더 게임 오브 데스 일! 일! 일! 일! 아이고 의미 없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정말  의미 없고 부질없는 행동이었다. 그렇게  'Cigarettes after sex'가 부르는 노래 같은 기분으로 그 시간을 보내다 문뜩 깨달았다.


"아-나도 참 그렇구나"



현타를 맞이하고 - 순간순간의 나를 뒤돌아보면 - 약간의 힘이 남았음에도 정신 차리고 일어나 내 장비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이 사용한 장비를 함께 도와 정리하지 않았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렇다 본디 그러한 행동들은 그리고 그 시간은 삭막하고 딱딱한 기계적인 규칙이 아니었다. 정말 따뜻하고 고마운 배려였던 것이다.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였으면 내게 최초로 베풀어진 배려를 그런 식으로 해석하다니. 부끄럽고 더없이 부끄러웠다.



부끄러움을 교훈 삼아 이제는 그 배려의 시간을 양껏(?) 즐기고 있다. 때로는 웃으며 - 때로는 감탄하며 - 때로는 헥헥 되며 말이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너무나 따뜻하고 큰 배려를 받았다. 하나- 오늘은 웬일인지 슈퍼파워 최선을 다했고 운동이 끝남과 동시에 오랜 시간 바닥과 하나가 돼 있었다. 고마움도 표현할 힘도 겨를도 없이.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을 표현하려 한다.



"정말 고맙습니다"




정말 특별하고 타고난 사람들이(대표적으로 故 이태석 신부님이 떠올랐다. 이태석 신부님을 잘 모르신다면 초록상에서 '울지 마 톤즈'를 검색해보세요! 크로스피터들은 교양인들이라 다 아실 테지만.) 아니라면 사람은 본디 이기적인 동물이다. 때문에 매 순간 타인을 위해 배려할 수 없으며, 그렇기에 매 순간 타인에게 배려를 받을 수도 없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이 사람은 본디 이기적인 동물이라 자신이 배려받지 못한 순간을 더 또렷이 기억하고 미워하고 비난하는 버릇이 있다. 나 역시 그랬고, 그러하며, 그럴 것이다. 이제는 배려받지 못한 순간을 기억하며 배려해주지 않은 이들을 비난을 하거나 그런 비슷한 감정을 가지는 시간을 비우려 한다. 비워진 비난의 시간과 부정적인 감정 대신 배려하지 못했던 순간의 나를 부끄러워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또 배려해주는 이들에게 더 큰 고마움을 표하는 시간을 채워 넣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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