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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구 May 07. 2019

관;계 _ 館(집관)鷄(닭계)

운동 끝나고 치킨 먹으러 갈 사람?

홍경이는 이름도 홍경이다. 홍경이가 어떤 사람이길래 이름도 홍경이냐고? 그건 나도 모르겠지만, 홍경이는 그냥 이름까지 홍경이인 내 친구다. 그리고 이름까지 홍경이라서 내가 쓰는 일간 크로스핏에 실명으로 처음 등장하는 지인이다. 2년 전 봄- 엄청난 다짐과 함께 크로스핏 박스 Guts에 발을 내디뎠다. 그 엄청난 다짐은 운동만 보고 운동만 하자는 다짐이었다. 근데 그 다짐이랄 것이 내게 정말 가소로운 것이었다. 왜냐면 나는 태생이 아싸기 때문에 아무런 노력 없이 숨만 쉬어도 실천 가능한 다짐이었기 때문이다. (30년생 인생 어디서도 주목받지 못했고 - 주목받으려 노력하며 살아오지도 않았음. 아 29년임, 30살이 되고 난 요즘은 노력형 인싸가 됐기 때문임)  



어쨌든 나는 운동 첫날부터 나와의 다짐을 실천하고자 정말 운동만 했다. 내 옆에, 앞에, 뒤에 누가 있든 정말 운동에만 집중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혼자 WOD를 진행했기 때문이다.(아 오해는 하지 않기를 빈다. 운동만 하겠다는 거지 항상 슈퍼파워 최선을 다하겠 다는 다짐은 아닌 것이다.) 아무와도 - 아무 말도 없이 운동만 뽝뽞뽝! - 하지만 내 다짐은 며칠 못 가  깨지고 말았다. 늘 같았던 어느 날에 홍경이스러운 처음 본 홍경이와 함께 WOD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그날 WOD가 끝나고 홍경이는 혼자 운동만 하는 내게 다가와 먼저 인사를 해주었다. 아싸였던 내게 다소 신비로운 순간이었다. 아니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학교에 잘 나가는 엄친아가 쭈꾸리한테 먼저 다가가 인사하며 친구 하자고 제안하는 그런 순간) 어쨌든 홍경이가 먼저 건넨 인사에 어색한 인사로 답을 했다. 그 어색한 첫 번째 인사에는 '아 참 어색하고 새롭고 난감하고 고맙네'와 같은 속 깊은 생각이 숨겨져 있었다.



그때는 지금과 다르게 시간 선택이 자유로운 백수였기에 사람이 없는 오후 시간대 운동을 자주 했고 마침 홍경이 역시 그 시간대에 운동을 하는 친구였다. 때문에 그날의 어색한 인사를 시작으로 우리는 자주 운동을 함께 하게 됐다. 사람이 많지 않은 시간대에 함께 운동을 하고, 홍경이 특유의 인싸 기질 까지 더해지니 우리 둘의 관계는 빠르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흘러 그러니까 내가 여자 RX'D (RX'D는 코치들이 최대의 운동효과를 볼 수 있도록 처방한 운동량과 무게라 할 수 있음. 막 어원 있고 그런데 복잡하니까 생략)에 비빌 수 있는 수준이 됐을 무렵이었다. 홍경이 특유의 인싸 기질이 고마운 오지랖으로 번졌고, 그날 나를 다른 친구에게 소개해주었다. 그날을 시작으로 우리는 체육관에서 만나 치킨을 뜯어먹는 배부른 관계(館(집관)鷄(닭계))로 발전하게 됐다.



그렇다 - 홍경이 덕분에 애초 다짐과 다르게 운동 끝나면 혼자 닭가슴살 뜯는 운동에서, 운동 끝나면 다 같이 치킨 뜯어먹으러 가는 관계를 형성하는 운동을 하게 된 것이다. 때문에 홍경이가 보여준 그날의 고마운 오지랖이 정말 고맙고 또 고마웠다. 아, 운동 끝나고 치킨 먹는 것 때문에 고마운 것이 아니라 십 년 만에 함께하는 운동의 즐거움과 참맛을 다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 크로스핏을 한 지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내 Guts 인생에 큰 지주였던 두 사람(홍경이와 범호고 범호는 나중에 반듯이 등장할 등장인물임)이 Guts에 없다. 하지만 Guts에서 형성한 모든 관계가 종식되는 것은 아니다. 그 둘이 관계 맺어준 많은 이들이 여전히 Guts에서 나와 함께 운동하고 있으며, 함께 땀 흘리며 운동하는 즐거움을 아는 많은 나와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Guts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는 굳이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에게까지 회사 사람들에게 내비치는 까칠하고 두꺼운 벽을 보일 필요가 있나 싶다. 이제는 내 개인의 노력을 더해 아직은 관계 맺지 못한 그 사람들과 더 넓은 관계를 맺어보고 싶다. 그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우선 내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첫 번째로 선행될 노력은 군중 속에서 살아가는 내 삶의 자세와 태도의 변화이다. 30년 동안 내가 군중 속에서 살아온 삶의 자세는 '일단 친해져 보면 제 본모습을 볼 수 있을 거예요.' 하고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자세와 태도였다. 이제는 이럴 것이 아니라,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자 친해지고 싶죠? 그러니 이제 우리 친해져 봅시다.' 이렇게 능동적으로 변화된 자세와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30년이라는 시간 - 마냥 짧은 시간이라 할 수 없기에 그 삶의 자세와 태도가 EMOM (Each Minute on the Minute ; 매 1분마다 주어진 운동 동작을 반복해서 수행하는 크로스핏 운동 방법)에서 1분 운동 끝나서 쉬는 시간 끝나 듯 빠르게 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노력부터 차근차근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번 일간 크로스핏 '관계' 편이 이 노력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자자! 오픈 끝나고 치킨 먹을 사람 여기 여기 붙어라."   


ps. 그리고 이 글을 읽은 당신! "그래서 홍경이가 누구야!"라고 답답한 호기심과 의문이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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