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심폐와 뛰어난 운동신경
'수양대군' 세조는 조선 임금 중 이방원 다음으로 매력적인 임금이다. 수양대군이 세조가 되기까지 과정과 그 과정에서 얽혀있는 정치-권력싸움이 너무 흥미롭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 시기에 인물들이라 할 수 있는 수양대군-사육신-생육신-단종-김종서-한명회 등등을 정말 많은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책에서 매력적으로 다루며 그들의 이야기를 생산 재생산하고 있다. 그 생산물 중 '관상'이라는 영화는 '수양대군'의 첫 등장 장면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내가 지켜보는 스크린 앞으로 그 누구보다 자신감 가득 담긴 늠름한 모습으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오는 모습, 그리고 귀를 사로잡는 특유의 그 갈갈한 목소리.
"어찌 내가 왕이 될 상인가?"
그렇게 관상에서 수양대군을 연기한 이정재는 자신의 인생 캐릭터를 만나게 됐다. 시작부터 '갑'자기 '분'위기 '관'상 이 된 이유는 오늘 얘기할 이야기가 바로 관상과 관련된 이야기기 때문이다. (아! 한 가지만 더 영화 '관상'은 조선시대에서 가장 흥미로운 시대를 우리에게 익숙하기도 하며 낯선 관상이라는 소재를 더한 영화로 한 번쯤 보기를 추천한다. :))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관상은 과학'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는 한다. 특히-범죄자의 얼굴과 신상이 공개됐을 때 그 기사에 대한 댓글이나 사람들의 평을 보면 그렇다
"관상은 과학이다. 내가 제 저럴 줄 알았다.", "딱, 저렇게 할 것처럼 생겨먹었다니까" 등등등...
*(최근 버닝 썬 사건 혹은 게이트로 큰 이슈를 몰고 있는 [승리]라는 품명을 가진 쓰레기는 과거부터 '관상'에 대한 얘기가 많았고, 현재 사건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관상은 과학이다'라는 논리로 접근하는 글들이 정말 많다.+이 글을 처음 쓰던 시점은 회사 점심시간이었는데, 퇴근을 하고 운동을 끝내고, 식사를 마친 후 글을 이어 쓰고 있는 시점에서 정준영이라는 품명을 가진 쓰레기가 세상에 등장했음을 알게 됐다. 그리고 역시나 품명 [정준영] 쓰레기에 대한 글에도 '관상은 과학이다'라는 글이 많다. 혐오 PR이 아닌 자기 PR 시대니 혐오 발언은 여기까지. 사실 아는 것도 없다. 더 궁금한 건 각자 다음카카오를 이용합시다!)
'관상' 혹은 '생김새'는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는데 막대한 영향을 끼치나,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판단 기준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지양하고 배척해야 한다 생각한다. 그러나 나부터도 이러한 판단 기준을 지양하고 배척해야 함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상 과학론'을 맹신할 때가 있다.
그 맹신은 주로 내가 크로스핏 운동을 하는 크로스핏 박스 Guts에서 이뤄진다. 박스에서 운동을 하다 보면 익숙한 얼굴만 있는 게 아니라 처음 운동을 등록하러 오시는 분들, 박스에 오신지 얼마 안 되신 분들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런 그들을 마주할 때면 나는 속으로 판단을 시작한다. '저분은 운동을 잘할 것 같다', '저분은 운동을 처음 하시는 것 같다'등 과 같은 기분으로 말이다. 이 관상 과학론 맹신은 실패 8, 성공 2 정도로 논리도 객관성도 부족한 결과를 도출했다.
허나 이 논리도 객관성도 부족한 '관상 과학론'이 너무 통쾌하게 맞아떨어진 순간이 있었다. 바로 자칭-타칭 '타고난 심폐와 뛰어난 운동신경'을 보유한 원소 기호 fe와 동일한 이름을 가진 친구 '유철'을 처음 마주했을 때다. 나는 원소 기호 fe(친구 철이를 앞으로 일간 크로스핏에서 '원소 기호 fe'라 부르겠음)의 관상을 처음 본 순간 그가 가진 타고난 심폐와 뛰어난 운동신경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으며 내가 받은 그 느낌은 사연과 근거가 있었다.
군 장교 임관 후 내 첫 보직은 특수부대 팀장이었다. 특수부대 특성상 부대 내에는 운동신경이 뛰어난 병력들이 많았다. 그중 가장 눈에 띄던 친구 H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관상은 원소기호 fe와 꼭 닮았다. 땀 흘리며 운동을 하는 H를 처음 본 어느 날 나는 H가 가진 운동능력에 심장이 뛰었고 H를 내 마음속 라이벌로 삼았다. 마음속 라이벌 H를 이기기 위해 매일 고군분투하며 체력단련을 했지만 뛰어난 심폐를 요구하는 모든 운동 종목에서는 늘 H에게 패하고 말았다. 결국 H가 제대할 때까지 H보다 앞서 나간 종목은 철봉운동과 팔 굽혀 펴기뿐이었다.
완전한 패배였다. 때문에 Guts에서 H와 꼭 닮은 '원소 기호 fe'를 처음 만난 날 그의 관상만 보고 그가 가진 타고난 심폐와 뛰어난 운동신경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느낌과 동시에 원소기호 fe는 실제로 모두를 압도하는 운동능력을 내 앞에서 보여주었고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러니까 그 충격의 정도는 3Km 뜀걸음 측정에서 내 최고 기록보다 30초 앞선 기록을 보여준(내 3Km 최고 기록은 10분 34초이다.) H에게서 받은 충격 이상이었다. 그리고 첫날부터 '원소 기호 fe'에게 받은 충격 덕분에 과거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었다. 바로 가질 수 없는? 아니,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마음속 라이벌로 삼는 실수 말이다.
충격 이후 원소 기호 fe와 함께 운동을 하고 - 국밥도 먹고 - 축구도 하고 - 여행도 다녀오며 원소기호 fe와 H가 가진 놀라운 공통점을 한 가지가 더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둘 다 축구를 '잘'하고(여기서 중요한 건 '잘'하는 것이다.) 좋아하며 선호하는 포지션과 플레이 스타일도 똑같다는 것이다. 원소기호 fe가 내게 보여준 모습과 같이, H 역시 병사임에도 불구하고 늘 중대장-지역대장-대대장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과감한 태클을 펼치며 경기를 지배했었다.
가히 실눈 캐릭터는 겁나 쌔다는 것을 알려준 애니메이션 슬레이어즈 혹은 마법 소녀 리나의 제로스처럼, 군대에서 만난 H와 크로스핏 박스 Guts에서 만난 '원소기호 fe' 덕분에 '타고난 심폐와 뛰어난 운동신경;상(相)'은 내 머릿속에 주입되고 각인됐다. 아 - 그렇다 오늘은 19.3 오픈 WOD 재측정을 앞두고 '타고난 심폐와 뛰어난 운동신경'이 가지고 싶어 이런 긴 넋두리를 한 것이다.
아--부질없다.
다른 크로스피터들에게 나는 운동 족밥으로 느껴지는 관상이었으면 좋겠다. 실망하지 않게. 데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