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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몬 베유 Sep 21. 2020

일상을 지탱하는 가격, 한 건당 500원.

 택배 기사님들은 그 집의 취향을 확실히 안다. 매 번 똑같은 것이 반복적으로 배달된다. 밀집도시의 특성상 택배는 활성화 될 수 밖에 없다. 특히 노동율이 높다면 더 그렇다. 집에 가면 택배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익숙한 대한민국 사회다. 내가 노동을 할 때 누군가는 이미 노동해서 물건을 가져다 놓는다. 퇴근길, 택배가 나를 부른다. 퇴근길이 즐거워진다. 때론 택배기사와 친해져서 웃음이 나오는 짤방들이 돌아다니곤 한다. 


 일상에 스며들었다기보다도, 택배는 이제 일상 그 자체다. 뭔가 이상하다. 남의 노동이 기쁨이 되는 세상, 남의 노동이 일상이 되는 세상이라는 정의가 어딘가 이상해보인다. 물론 전기, 수도, 통신등등의 일도 우리의 일상 자체다. 통신비, 수도세, 전기비는 일상 필수 목록에 꼭 포함된다. 사실 택배비는 물건 값에 포함돼서 그런지 명목상 따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파업을 선언했다.


 이들의 파업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2018년에도 한 번 있었다. 일상이 되버린 택배인지라 한번 중재시도가 있었긴 했다. 몇몇 사람들은 택배없는 날을 지정하여 택배를 시키지 않기도 했다. 택배 기사님들을 위한 간식이나 물등을 놓기도 한다. 나도 일상의 차원에서 인식이 바뀌면 바뀌리라 생각했다. 그러리라 생각했다.


 택배 파업의 주된 목적은 ‘과로사로 인한 사망 염려’다. 그리고 국민께 죄송하다는 말이 붙었다. 죽음이란 주제는 쉽게 다뤄지지 않는다. 가벼운 일상에서 조차 죽음이란 말을 꺼내면 좌중의 표정은 굳는다. 지금까지 택배 기사님들은 일상에서조차 무겁게 다뤄지는 죽음의 무게를 견뎌왔다. 간식이나 물등으로 덜 수 없을정도의 무게감을.


 국민께 죄송하다는 말은 아마 ‘일상’과 맞물려있지 않을까. 그 집의 취향을 알 정도로 맞물려 있는 택배는 사실 집뿐만 아니라 수많은 기업들과도 연결된다. 무거운 일상의 무게, 그러나 부여되지 않는 명예, 그러면서도 낮은 임금. 그리고 그들은 선처와 용서를 구한다. 사람이 만만하진 않아도 사과하는 노동자가 만만한 이들은 댓글창에 욕설을 단다.


 그래도 다른 파업보다 험한 댓글이 많이 달리지 않는 것은 그들도 최소한의 감수성이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편리함이나 목숨을 가지고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대부분은 인지한다. 물건을 옮기는 일의 하중을 지지하는 책임감이 과로사와 맞먹는다는 점을 누구라도 안다. 덮어놨던 사실이 펼쳐졌다. 


 돈이 터무니 없이 적다. 너무 힘들다. 인원을 충원해달라. 시간을 달라. 개인의 부담을 줄여달라. 이렇게 말해도 할 말이 없다. 택배를 잃어버려도 기사님들이 물어주시고, 간간한 부탁도 들어주시는걸 보면 한건당 약 500원의 택배는 선행과도 같다. 일상을 지탱하는 가격, 한 건 당 500원. 그들이 원하는 것은 건 당 돈도, 고객들의 태도의 변화도 아니다. 그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 줄어달라는 이야기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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