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정치성향이 다른 이를 위해 밥을 지어줄 수 있나

by 시몬 베유

최근 조금씩 나가기 시작한 봉사단체가 있다. 독거노인의 식사 문제를 해결하자는 모임으로, 15명정도가 매주 모여 밥을 짓고 배달해주는 단체다. 아침의 피로를 밀어내고 8시 도착. 졸린 눈을 비비며 고기를 자르고, 설거지를 하고, 도시락을 옮기는데 보이는 어떤 심볼. 그건 나와 정치성향이 다름을 노출하는 문양이였다.


그 문양은 봉사단체 자체에 있지는 않았고 봉사단체에서 도시락을 옮겨주는 차에 있었는데, 그 때부터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통계적으로 노인들은 나와 정치성향이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남은 봉사시간 동안 내내 머릿 속을 채웠다. 내 마음의 복잡함. 내 마음의 얄팍함. 물론 그 자리에서 바로 박차고 나올 마음은 없었지만 내 소중한 체력과 주말을 들여, 나와 정치성향이 다른 사람에게 밥을 먹여준다는 어떤 이상한 편협함이 내 마음 속에 자리했다. 그리고 그 마음은 분노와 혐오로 다가왔다.


“한국이 바뀌려면 그들은 설득할 수 없어”라는 냉소 그리고 광화문 광장에서 직간접적으로 먹었던 욕설과 눈빛이 생각났다. 생각 속에 이어진 결론은 이랬다.


“아니 최소한 그들에게 도움되는 일은 해주지 않아야 하는거 아냐?”


하지만 분노의 방향이 바뀐건 1시간 뒤 였다.


주변 노인에게 도시락을 가져다주는 사람을 구한다는 말에 그럼에도 나는 자발적으로 손을 들었다. 한남동 근처 개발되지 않은 주택 단지 37도 뙤양볕에, 언덕을 10분이상 올라가서 겨우 닿은 볕이 닿지 않은 반지하. 어르신분에게 전화를 하니 얄팍한 내 마음과 상반되게 따뜻한 말투로 이렇게 전달해주신다.


“고마워. 복지관에 나와있어서 도시락은 냉장고에 넣어주세요. 또 봉사자분들 위해서 내가 비타 500 사왔어. 가면서 꼭 두개 가져가요. 꼭.”


비타오백을 챙겨 그렇게 어르신의 집을 나오니 바깥 현관 같은 곳엔 삐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져 있다.


‘복지관에 갑니다.

도시락은 여기 놓아주세요.

정말 미안합니다.’


마음의 비좁음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다르다. 틀렸다-고 말하는 건 쉽다. 내 마음의 물꼬를 좁혀놓는 건 쉽다. 그들을 ‘나에게 이득되지 않는 사람들’ 이나 ‘세상이 나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 이라고 낙인 찍는건 더욱 쉽다. 그렇지만 쉬운 만큼 편협해진다. 만약 내가 직접 도시락을 배달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면 난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알량한 혐오’에 휩싸여 집으로 돌아갔을 지도 모른다. 돌아가서, ‘내가 최소한 도움을 줄 순 없다’라고 나 스스로 사랑할 수 없는 자유를 박탈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박탈당했다고 인지조차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최근 친구와 ‘자유’에 대해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고민을 나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건 무엇일까. 우리를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이득만을 생각하고 ‘봉사는 하고싶지만 이념이 다르니 그만해야지.’ 라는 건 그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이념이 아닌 생명으로’ 볼 자유를 박탈하는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한가지 확실한 건 혐오와 선입견은 사람으로 볼 힘을, 더 나아가 그 사람에게 말 걸 자유를 박탈한 점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과연 그들은 내가 생각하고 판단한대로 도움이 되지 않을 사람일까. 또 정치성향이 다를까 생각해본다.그리고 이 긴 고민 아래 결론 나는건 단 하나다.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계속 도시락을 만들고 싶다는 것. 그들이 생명이라는 것만으로도 살아 있는 사람들끼리 사랑해야함으로도 충분히 의미는 있고, 나는 자유롭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틈새를 여는 것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