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박사에게 부탁드립니다.

by 름 Lm

기부를 시작했다. 결정하기까지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지만, 결론은 세상에 뭐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금액은 월 5만 원. 성대한 결심에 비해 조촐한 금액이다. 원래는 월 2만 원만 하려고 했는데, 월 2만 원도 기부가 되는지 물어보기가 민망해서 그냥 5만 원으로 결정했다.


주민센터에 가서 “기부를 좀 하고 싶은데요.” 말했다. 직원은 민원 접수대 위에 놓인 사랑의 열매 모금함을 가리켰다. “아, 이런 거 말고요. 다달이 하는 거요.” 대답했다. 나와 상담 중인 직원 뒤편에 앉아 있던 복지팀 직원이 내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기부하고 싶으시다고요? 정말 대단한 결심 하셨습니다. 어떤 가정에 후원하고 싶으신지 생각해 보시고 오신 건가요?” 나는 빈곤 아동 청소년에게 후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후원 과정은 간단했다. 결연 가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 듣고 관련 서류를 작성하면 된다. 나는 10대, 20대 두 자녀를 둔 한부모 가정에 후원하기로 했다. 20대 자식은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고 어머니만 일을 하고 있는데 그마저도 소득이 여의치 않아서 아주 힘들게 사는 가정이라고 했다. 설명할 때 직원은 내게 무언가 증명해야 한다는 듯 강조해서 말했다. “정말… 진짜 정말 어렵게 사는 가정이거든요… 저희가 자주 들여다보는 가정이에요… 정말 어렵게 사는 가정입니다.”


후원 서류를 다 작성하고 나니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도 이제 누굴 도울 처지가 되었다니. 나로 인해 조금이나마 세상이 더 밝아지겠지. 기부 홍보 영상 속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픈 노인과 함께 사는 어린아이가 우는 얼굴, 어린 나이에 아르바이트하면서 아픈 어머니를 홀로 돌보는 학생, 매일 라면 한 봉지로 끼니를 때우는 어린 자매. 복지팀 직원의 말이 귀에 맴돌았다. ‘정말 대단한 결심 하셨습니다. 정말 대단한 결심 하셨습니다. 정말 대단한 결심…’


주변인들에게 기부를 시작했다고 자랑했다. 사람들은 내게 연말정산 세액공제 때문에 기부하는 거냐고 물어봤다. 나는 그런 게 되는지는 몰랐다고, 그냥 좋은 일 하고 싶어서 하는 거라고 말했다. “대단하네. 마음먹기 쉽지 않았을 텐데.”라는 말을 들었다. 겨우 오만 원으로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면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월 5만 원? 생각보다 많이 하네.”라는 말을 들었다. 사실 2만 원만 할 걸 하고 후회 중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웃고 말았다. “그거 중간에 단체가 떼먹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들었다. “가정이랑 직접 결연 맺는 방식이라 기부금은 온전히 가정에 전달되는 거래요.”라고 대답했다. “진짜 어려운 사람들 맞아? 나 아는 사람 중에는 진짜 어렵지도 않으면서 재산 여기저기 분산시켜서 복지 지원금 다 타 먹는 사람도 있더라.”라는 말을 들었다. “복지사가 직접 방문해서 확인하는 가정이라고 했어. 의심하면 끝도 없지. 그걸 내가 알 방법도 없는데.”라고 대답했다. “월 5만 원이면 적은 돈도 아닌데, 그 돈을 생활비로만 쓰겠어? 허투루 써도 넌 모르는 거 아니야?”라는 말에는 “그렇지.”라고 대답했다.


정말 대단한 결심 했다고 한마디만 해 주면 될 것을, 초 치는 인간들이 가득했다. 내가 가난한 가정에 숨 쉴 구멍을 만들어줬다는 기분을 만끽하는 중이었는데. 마음속에서 의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진짜로 허투루 쓰면 어떡하지. 사지 멀쩡한 20대 자식은 왜 직장 생활을 할 수 없는 걸까. 무슨 일이 있는 건지, 혹시 어디가 아픈 건지, 왜 일할 수 없는 건지 정도는 내게 말해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후원받아야 할 정도로 어렵다면서 10대 아들은 왜 운동선수가 되려고 하는 걸까. 어머니는 직업이 뭐길래 소득이 여의치 않은 걸까. 잠깐, 여의치 않은 소득은 얼마지? 내 소득도 여의치 않기는 마찬가지인데. 중소기업 월급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20대 여성인 나조차도 매일 괴로워하며 회사에 꼬박꼬박 출근하면서 기부까지 하려고 하는데. 그 집 아들들은 지금쯤 집에서 편하게 쉬고 있겠지. 정말 어려운 가정이 맞는 건가?


기부를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엄마는 화를 냈다. “우리보다 더 힘든 사람들 맞아? 어떻게 다른 사람한테 다달이 돈을 갖다 바칠 수가 있니.” 불안했다. 나보다 더 잘 사는 집이면 어떡하지. 샷시 깔끔하게 시공된 집에서 살고 있으면? 이제 와서 기부 철회한다고 해도 되나. 내가 기부한 돈으로 드립커피나 말차라떼 사 마시면 어떡해. 두쫀쿠 사 먹으면 어떡해. 내 피 같은 돈으로 그런 호사를 누리면 나는 어떡해, 정말 어떡해. 그즈음 틈만 나면 구글에 ‘기부금 사용 제한’, ‘기초생활 수급자 기준’ 같은 것들을 검색했다. 그러다가 동아일보에 실린 한 칼럼을 읽게 됐다.


최성락 박사의 ‘프리미엄 돈가스를 사 먹는 기초생활 수급 아동을 보는 두 가지 시선’은, 2018년 온라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던 게시물을 언급하며 시작한다. 어떤 사람이 돈가스집에 갔는데, 아동복지 카드로 돈가스 사 먹는 남매를 보고 기분이 잡쳐 복지센터의 항의 전화를 걸었다는 내용이었다. 아이들이 바우처 카드를 받는 건 이해할 수 있으나 굳이 그렇게 좋은 집에서 먹어야 하느냐는 거다. 당시 커뮤니티 댓글 창은 글쓴이를 비판하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최 박사는 인터넷 서핑을 하다 당시 사건이 눈에 띄었다며, 비판 댓글 내용에 동의는 하나 “그 사람 마음이 이해가 되기는 한다”라고 말한다.


대학생 시절,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며 열심히 돈을 모으는 학생이었던 최 박사는 어느 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게 된다. 그러다가 그 친구와 분식집에 갈 일이 생겼는데, 친구가 평소에 최 박사가 먹던 라면보다 두 배가량 비싼 비빔밥을 주문했다. 당시를 회상하며 그는 말한다. “이때 내 마음이 어땠을까.”


이어서 한 예시가 등장한다. 비싼 음식을 먹지 않으며 성실하게 세금을 내며 돈을 모으는 A 씨와, 항상 비싼 음식, 스테이크를 먹으며 살아온 B 씨. 그런데 B 씨가 일이 안 풀려 망하게 돼서 결국 돈이 있는 A 씨가 B 씨를 도와준다. 도움을 준 A 씨는 계속 싼 음식만 먹고 도움받은 B 씨는 여전히 소갈비와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산다. 최 박사는 이러한 상황이 “뭔가 찝찝하고 이건 아닌 느낌이 든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커뮤니티에 글 쓴 어른이 프리미엄 돈가스를 사 먹기에는 어려운 형편이고 평소 열심히 일한 돈으로 세금도 잘 내면서 돈을 모으다가, 어느 날 어렵게 결심하고 프리미엄급 돈가스를 사 먹으려 돈가스집에 갔는데 옆자리에 정부 지원을 받아 그 돈가스를 공짜로 먹는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거다.


최 박사가 말한 경험과 예시들 모두 찝찝한 상황이 맞다. 만약 내가 친구에게 돈을 빌려줬는데 그 친구가 내 돈을 갚기도 전에 인스타그램에 호캉스 간 사진을 올렸다면? 당장 친구에게 전화해서 내 돈부터 갚으라고 말할 거다. 매일 오마카세를 먹던 친구가 갑자기 집안이 망해서 내게 돈을 빌린 이후에도 매일 오마카세를 먹는 일상을 영위한다면? 솔직히 너무 얄미울 것 같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지? 아이들이 사용한 건 복지 카드다(*실제로 아이들이 먹은 돈가스는 돈가스집 주인이 무상으로 제공한 것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복지 카드를 사용하지 않았다). 구글에 ‘복지 뜻’이라고 검색하면 ‘복지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행복한 삶을 위해 국가나 사회가 제도적, 정치적으로 개입하여 보장하는 사회적 노력을 통칭한다.’라고 나온다. 나는 최 박사처럼 서울대를 졸업하지도 않았고, 박사도 아니라서 복지에 대한 무슨 무슨 논문이나 무슨 무슨 통계는 잘 모르지만, 아무튼 복지라는 개념이 누구한테 빌린 돈이나 갚아야 할 돈과 같은 게 아니라는 건 정확히 안다.


칼럼에서 뒤이어 나오는 내용은 더 이상했다. “사람들은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걸 싫어한다고 생각한다. (중략) 그런데 아니다. 부자가 싫어하는 건 너무 많은 돈을 걷어가는 것이다. 그 돈을 어떻게 쓰느냐는 별 관심이 없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 나눠 주는 걸 가장 반대하는 사람은 부자가 아닌 빈곤층 바로 위 차상위계층이다.”


진짜로?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한테 돈을 어떤 식으로 나눠주든 전혀 관심이 없다고? 복지 카드로 돈가스를 먹는 일조차 해명하며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보다, 공짜로 돈가스 먹는 아이를 보고 기분이 잡친 어른의 마음에 더 공감한 사람이, 그래서 빈곤층을 지원할 때는 차상위계층이 비관론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만 지원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그러면서 이러한 상황에 부자들은 사실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최 박사가 50억 자산가 파이어족이라는 사실은 그저 유머로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이 글을 열 번 넘게 정독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무슨 말을 하는 글인지 전혀 이해가 안 갔다. 두 번, 세 번쯤 읽었을 때는 ‘으이그…애들 먹는 거 가지고… 항의까지 하고… 이미 욕 많이 먹고 끝난 일을 굳이 들춰내서 빈곤층 어쩌고… 차상위계층 어쩌고… 부자들은 관심 없고 어쩌고… 글까지 쓰고… 으이그…’ 생각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글은 읽을수록 어쩐지 섬뜩하고 위태롭게 느껴졌다.


최 박사는 어떤 세상을 바라고 그런 글을 쓴 걸까. 글에서 묘하게 풍기는, 기득권은 뒤로 쏙 빠져있고 가난한 사람과 더 가난한 사람이 서로 싸워야 한다고 말하는 듯한 위험한 글을 통해 그는 자신이 바라던 세상과 한층 더 가까워졌으려나. 최 박사의 말처럼 빈곤층은 돈을 펑펑 쓰다가 망하게 되어서도 일을 제대로 하지도 않고, 돈을 모으지도 않고, 세금도 잘 내지 않는 게으르기만 한 사람들일까. 차상위계층은 그런 빈곤층을 보면서 불안에 떨어야 하는 걸까. 열을 다해 빈곤층과 차상위계층에 대해 말하고 있는 그 글에서 정작 그들의 진짜 삶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나는 세상 사람들이 서로에게 너무 무관심한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진짜 일상은 어떤지,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제는 어떤 생각을 했고, 오늘은 또 어떤 다른 생각을 하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고, 상상으로 만들어낸 단편적인 이미지로만 생각하고 마는 게 아쉽다. 그래서 최 박사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알고 있는 만큼의 지식 가지고 상상으로 만들어낸 이미지 말고, 정말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려 노력한 적이 있냐”라고.


눈을 감고 잠시 생각한다. 40년이 훌쩍 넘은 구옥 빌라 반지하에 살면서 장마철만 되면 집안에 물이 들이칠지 걱정하지만 늘 깨끗하고 단정한 옷을 입고 출근하는 아랫집 아저씨의 모습. 배달 일을 하며 근근이 살고 있다고 푸념하지만, 최근 멋진 오토바이 하나를 장만해 가끔 아이 같은 얼굴로 라이딩을 나가는 옆집 아저씨. 기부금을 받을 수혜자 가정의 일상을 상상해 본다. 하지만 잘 그려지지 않는다. 내가 모르는 삶이기 때문이다. 상상으로만 그려낸 이미지들이 자꾸 떠오른다. 그래서 그만두기로 한다. 그리고 나를 생각한다.


나는 세상을 치열하게 살고 싶지 않다. 왜 죽기 살기로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물 흐르듯, 힘 빼고 살고 싶다. 퇴근 후에는 좋아하는 작가의 산문집을 읽고, 주말에는 늦게까지 잠을 자고 싶다. 부스스한 몰골로 일어나 카페에 가서 평일에는 비싸서 못 마셨던 드립 커피 딱 한 잔을 마시는 일상을 영위하고 싶다. 그리고 이 정도는 최소한의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이조차 호사로 여기며 살아야 한다면, 정말 빌어먹을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국 죽기 살기로 살지 않아도 불행하지 않은 세상을 바란다. 빈곤해도 작가의 꿈을 꾸고, 음악가의 꿈을 꿔도 되는 세상. 가난해도 커피 취향 정도는 가질 수 있는 세상을 원한다.


최 박사에게 하려던 질문을 거두고 차라리 이렇게 조언하고 싶다. 누군가의 삶과 일상을 쉬이 상상하기 어렵다면, 차라리 무관심해도 좋을 것 같다고. 그리고 본인의 삶에 조금 집중해 봐도 좋을 것 같다고. 그냥 힘을 좀 빼고 살아보심이 어떻겠냐고 말해주고 싶다. 길을 걸으며 아스팔트를 비집고 나온 꽃도 구경하고, 산책 나온 강아지들 눈을 바라봐도 좋을 것 같다고. 당신이 무용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주의 깊게 바라보다가 어깨에 잔뜩 들어간 긴장이 조금 풀리고 나면 당신이 잘 몰랐던 삶에 다시 관심 가져봐도 좋을 것 같다고. 그리고 이건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나는 무관심부터 실천하기로 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의심을 거두기로 한다. 누군가의 진짜 삶을 상상하기 어려워서, 지금은 차라리 기부하면서 받을 세액공제만 생각하기로 한다.


아쉽지만 내 조언이 그에게 닿을 일은 없을 것 같다. 운 좋게 닿는다 해도 그가 살고 싶은 세상과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은 너무 달라서 그가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인정하긴 싫지만 돈 많고 학벌 좋은 남성으로 살아가는 최 박사는 나보다 세상에 더 선명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선명한 말이 어디까지 닿을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을 동하게 만들지 무섭다.


하지만 무섭다고 움츠리기에는 기분이 엿같아서 닿지 않을 청을 해 본다. 이성과 논리의 말은 선명하고 감성과 감정 섞인 말은 흐릿해지는 세상이지만, 나는 당신만큼 배운 사람은 못되므로 그저 감정에 기대어 부탁드린다고. 아이가 돈가스 먹는 걸 보고 어른이 기분이 잡쳤네 어쩌네 하는 모습을 보고 속이 상하지는 않으셨나요. 그 사건을 보고 차상위계층과 빈곤층 사이에서 일어나는 역차별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 손가락이 근질거렸나요. 다음번에는 글을 쓰기 전에 그들의 진짜 삶을 한 번 공부해 봐 주실 순 없나요. 그리고 제게도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당신만큼 똑똑한 사람이 그런 걸 알려주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럼에도 막 당장 글을 쓰고 싶어 미치겠다면, 그때는 손가락에 힘을 빡 주고 잠시 멈추어 주실 수는 없나요. 한 번만 입을 다물어 주실 수는 없나요. 당신은 50억 자산가잖아요.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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