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을 결정하기

by 름 Lm

언젠가부터 남들과 대화할 때 대부분 ‘돈 없음’에 대한 하소연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회사 근처에 맛있는 파스타집이 생겼어요.” “그래요? 한 번 가보아야겠어요. 어떤 메뉴가 으뜸인가요?” “부챗살 크림파스타가 왕 최고입니다. 하지만… 만 팔천구백 원이나 해요. 회사원에게는 사치이지요…” “죄책감 느껴지는 가격이군요.”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어요. 마당에 상추를 심고, 가지도 심고, 블루베리도 심고, 무화과도 심으면 참 좋겠지요? “평화로운 삶이군요. 하지만 서울에서 마당 있는 집을 매매하려면 아주 많은 자금을 모아야 할 거예요. 우리 월급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서울을 벗어나면 괜찮지 않을까요? 남양주나 용인도 집값이 만만치 않다고 하니, 파주는 어떨까요?” “파주 전원주택 매매할 돈으로 서울 구축 소형 아파트를 사는 편이 낫지 않겠어요? 미래를 생각해서…”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결국 다 돈이 문제다. 돈이 아주 많았으면 좋겠어, 아주 많은 건 바라지도 않아, 괴롭지 않을 만큼 일 하고도 적당히 먹고살 수 있을 만큼 돈이 있으면 좋겠어, 카페 메뉴판 앞에서 칠천 원짜리 드립커피 원두 리스트를 보다가 결국 사천오백 원짜리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삶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내가 이렇게 살 줄 몰랐어, 나의 서른이 이렇게 초라할 줄 몰랐어, 라며 하소연하는 내게 엄마 미연은 말했다.


"돈은 있다가도 없어지는 거고, 없다가도 생기는 거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에 얽매여 살면 삶이 고단해져. 지금 가지고 있는 것 안에서 행복을 찾아야 해. 인생에서 무엇을 고민하며 살아야 할지 잘 결정해야 해."


인생의 고민이라. 나는 어떤 고민을 하며 살아가야 할까. 회사 동료는 작년, 서울에 4억 대 구축 아파트를 매매했다. 그는 적금과 예금을 전부 해지하고, 가지고 있던 주식을 전부 매도하고, 은행 대출을 최대한으로 받았음에도 자금이 부족해 부모님에게 지원받았다. 이제 죽어도 회사에서 죽어야 한다고, 매달 청구되는 대출금을 갚으려면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을 포기할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부모님에게 지원받은 것도 전부 갚아야 할 돈이라고 말했다. 그가 매매한 아파트는 얼마 전 실거래가 6억을 넘겼다. 1년 만의 일이다.


회사에서 온종일 주식 종목, 부동산 이야기만 하니 유튜브 알고리즘도 온갖 투자 콘텐츠를 추천해 준다. 이놈들, 역시 내 말을 다 듣고 있는 게 틀림없다. 개인 사찰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찝찝하지만 한 편으로는 돈 버는 방법을 떠먹여 주니 기특하기도 하다.


‘러·우 전쟁 길어지나? 지금 주목해야 할 방산·석유주’ 섬네일을 클릭한다. 비슷한 영상을 몇 개 보고 인스타그램으로 넘어가니 모아보기 탭에 전쟁 관련 콘텐츠가 가득하다. 수많은 콘텐츠 중 군복 입은 남자가 모랫바닥에 누워 있는 섬네일을 클릭한다. 화면은 웅크린 그를 위에서 비추고 있다. 영상 속 남자가 팔을 휘적거리는 걸 보니 그를 찍고 있는 물체가 그와 가까이 있는 것 같다. 마치 전쟁 게임 티저 영상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 장면은 드론에 공격당하기 직전, 군인의 모습이라고 한다. 곧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할,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작고 차가운 물체를 가만히 지켜만 봐야 하는 그의 눈빛에서는 어째서 원망도, 분노도,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는 걸까.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비슷한 영상을 몇 개 더 보다 잠에 들었다. 그 무렵 또래 직원은 팔란티어 주식을 샀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백만 원이 넘는 돈을 벌었다. 부러워서 눈물이 났다.


퇴근길 지하철 안, 창밖 한강을 바라보며 속으로 되뇌었다. 전쟁이 날 것 같거나, 전쟁이 났거나, 전쟁이 길어질 것 같거나, 누가 미사일을 쐈거나, 트럼프가 무시무시한 발언을 했을 땐 방산주와 석유주와 금값을 예의주시하자. 방산주, 석유주, 금값…


집에 도착하니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가 나를 반겼다. 구수한 향이 코끝으로 들어와 목구멍까지 타고 흘렀다. 된장찌개다! 나는 잽싸게 신발을 벗고 들어가 주방으로 향했다. 밥솥은 밥이 다 됐다는 친절한 음성과 함께 뜨거운 수증기를 뿜어댔다. 법은 싱크대에서 봄동을 무치고 있었다. SNS에서 봄동 비빔밥이 유행이더니, 유행은 절대 따르지 않는 법이 웬일로 봄동 비빔밥에 마음이 동했을까 생각하는데 법이 먼저 입을 뗐다.


“오는 길 내내 오늘 저녁 메뉴 고민하는데, 인스타그램에 봄동 비빔밥이 딱 뜨더라고. 너 이런 거 좋아하잖아. 온통 풀떼기에 싱겁고, 건강하고, 아삭하고, 초록색인 거. 그리고 유행하는 거.”


나는 옆에서 아기 새처럼 아-하고 입을 벌렸다. 법은 가장 작은 봄동 이파리를 집어 내 입에 넣어주었다. 싱겁고, 아삭하고, 건강한 맛이 났다. 소금을 더 넣어야겠어, 내가 말했다. 법은 봄동에 소금을 조금 뿌려 조물조물했다. 나는 입을 오물거렸다. 거실 티브이에서 이란 전쟁에 대한 뉴스 보도 소리가 들렸다. 민간인도 많이 죽었대, 법이 말했다. 전쟁이 길어질까? 내가 말했다. 법은 글쎄, 하고 대답했다. 나는 가지고 있는 금 다섯 돈을 지금 팔아야 할지, 전쟁이 길어져서 금값이 더 오르지 않을지, 아니면 갑자기 전쟁이 끝나서 금값이 폭락하면 어쩌지 고민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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