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여자의 목욕

by 름 Lm

내가 다섯 살, 그러니까 언니가 아홉 살, 엄마가 서른세 살이 될 때까지 매일 밤 두 평 남짓한 화장실에 엄마, 언니, 나, 이렇게 세 여자가 함께 들어가 씻었다. 다 같이 홀딱 벗고 화장실에 들어가면 안은 한기가 돌고 바닥 타일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서 언니와 나는 몸을 베베 꼬며 엉거주춤 서 있었다. 차가운 바닥에 발을 최대한 덜 닿게 하려고 까치발로 서 있으면 균형을 잡기 어려워 비틀거리는 게 골치였다. 하지만 우리는 양 팔로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었기 때문에 한 발로만 서 있어도 절대 넘어지지 않았다. 언니와 내가 서로에게 지지하는 동안 엄마는 샤워기를 틀고 물 온도를 세밀하게 조절했다. 김이 펄펄 날 만큼 뜨거운 물이 뿜어져 나오면 우리의 목욕이 시작되었다.


"둘 다 일로 와."


우리가 뭉그적 다가가면 엄마는 고무대야에 뜨거운 물을 받아 언니 머리 위에 한 번 '촥', 내 머리 위에 '촥' 부었다. 눈, 코, 입으로 뜨거운 물이 들이쳤다. 눈을 질끈 감고 콧물을 들이키며 말했다.


"아뜨뜨, 아따가."


눈을 뜨면 엄마는 한 손에는 초록색, 다른 손에는 핑크색 때수건을 끼운 채 바닥에 양반다리로 앉아 물었다.


"누구 먼저 할래?"

"언니 먼저."

"쟤 먼저 하라 해."


언니와 내가 동시에 대답하면 엄마는 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언니는 나보다 4년이나 먼저 엄마 아빠 사랑받기 시작했으면서, 적어도 4년 치는 더 많은 사랑을 받을 거면서, 나쁜 건 꼭 나부터 하라고 했다. 형제간의 우애란 그리도 얕은 것이었다. 엄마는 우리를 번갈아 보더니 늘 언니 팔을 먼저 잡아끌었다. 언니가 소리쳤다. "아니, 쟤 먼저라고!"


힘찬 절규가 무색하게도 엄마는 언니 몸을 벅벅 문지르기 시작했다. 손이 지나간 자리마다 빨간 길이 생겼다. 몸에 빨간 줄이 한 줄, 두 줄 늘어갈수록 언니의 표정은 점점 구겨졌다. 언니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밖에 있는 아빠를 애처롭게 불렀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엄마는 언니가 울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분주하게 움직였다. 언니가 도망치려 하면 한 손으로 팔을 붙잡고 다른 손으로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언니는 잠시 체념한 듯 가만히 서 있다가도, 엄마가 때수건에 비누를 묻히는 찰나를 노려 도망치려 들며 좀처럼 얌전히 있지를 않았다. 그러는 동안 엄마는 양반다리로 앉아 결연한 표정으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언니 몸을 무자비하게 문질렀다.


나는 양 팔로 몸을 감싸안은 채 그 모든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먼저 하겠다고 할걸. 모든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동안, 마치 언니의 감각을 공유하는 것처럼 내 몸도 따끔따끔하는 것 같았다. 나에게도 이미 예견된 상황을, 그것도 실시간으로 미리 겪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나는 두 배로 고통받는 게 아닌가. 불공평했다. 역시 언니는 항상 현명한 선택을 한다. 교활한 우리 언니.


살구색이었던 언니 피부는 금세 붉어졌고, 지우개 가루 같은 까만 때가 온몸을 뒤덮었다. 화가 잔뜩 난 언니는 거친 숨을 쉭쉭 내쉬었다. 엄마는 대야에 받아둔 물을 다시 언니 몸에 끼얹었다. 그러자 왜인지 언니의 화가 조금 누그러든 듯 보였다. 샤워볼에 비누 거품을 묻혀 언니 몸을 천천히, 구석구석 살필 때는 졸기까지 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으로 고무대야에 물을 받아 다시 언니 몸에 몇 번 끼얹으면 끝이었다. 엄마는 언니 볼을 감싸 쥐고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끝. 아빠한테 나가서 수건으로 몸 닦아달라고 해."


목욕을 시작할 때와 달리 언니는 히죽히죽 웃으며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이제 내 차례였다.


방금까지 목격한 것과 거의 같은 상황이 이어졌다. 때수건이 장착된 엄마 손이 내 피부를 벅벅 지나갈 때는 온몸이 쓰라렸다. 고무대야에 물을 받아 한 번, 두 번, 세 번 몸에 끼얹을수록 피부가 따끔거렸고, 이내 몸에 열기가 돌아 땀이 났다. 폭신폭신하게 거품을 낸 샤워볼이 몸을 쓱쓱 훑고 지나갈 때는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노곤해졌다. 나는 다리에 힘을 풀고 앉아 엄마에게 기대어 안겼다. 말캉한 가슴이 볼에 닿으면 감세 잠들 것 같았다. 그러면 엄마는 나를 안은 채 내 등에 물을 부었고, 거품이 다 사라질 때까지 물을 대야에 받아 다시 몸에 끼얹는 일을 반복했다. 잠들기 직전, 엄마는 내 어깨를 잡아 나를 바로 세우고 말했다.


"고생했다! 이제 나가서 아빠한테 몸 닦아달라고 해."


뜨거운 수증기로 가득 찬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면 거실의 찬 바람이 몸을 감싸, 오줌 쌀 때처럼 몸이 부르르 떨렸다. 베란다 문은 활짝 열러 있어 밖에서 겨울바람 부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실 한가운데에는 덮는 이불 하나만 바닥에 깔려 있었다. 그 이불 아래 언니와 아빠가 나란히 옆으로 누워 같은 자세로 티비를 보고 있었다. 나는 누워 있는 아빠와 언니의 정수리를 보며 말했다.


"아빠, 나 추워. 몸이 따꼼따꼼해. 수건으로 물기 닦아 줘."

"빨리 일로 와. 아빠가 이불 싹 빨고 바닥 뜨끈하게 보일러도 이빠이 올려놨어."


그러면 나는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언니와 아빠 사이로 쏙 들어가 머리만 이불 밖으로 내놓고 누웠다. 아빠는 그제야 몸을 반쯤 일으켜 앉아 마른 수건으로 언니 머리카락과 나 머리카락을 번갈아 비볐다. 옆에 누운 언니 살결이 스쳐 간질거렸다. 언니가 색색 소리를 내며 잠에 들기 시작하면 나도 졸음이 쏟아졌다. 아빠의 담배 냄새, 아홉 시 뉴스 앵커의 목소리, 언니와 내 몸에서 나는 오이 비누 냄새, 이불에서 나는 섬유유연제 냄새, 화장실에서 여전히 들려오던 물소리. 나의 겨울 감각은 이렇게 채워졌다.


언니와 내 가슴이 봉긋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여자 셋이 사우나에 가는 일조차도 없어졌다. 언니와 나는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가슴이 우리가 보고 자라왔던 큰 가슴과는 달리, 더 자라야 할 것 같은 시점에서 성장을 멈추어 버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충분히 다 자라고도 남을 나이가 되었는데도 이상하게 엄마의 가슴처럼 물컹할 만큼 커지지는 않았다. 우리는 종종 그 무엇보다도 엄마를 닮아야 할 것이 아빠를 닮아버린 데에 대해 억울함을 토로한다.


엄마를 닮지 못한 것은 가슴 크기뿐만이 아니다. 나는 더 이상 '목욕'이라는 것을 하지 않게 되었다. 뜨거운 물로 피부를 충분히 불리고, 때수건으로 구석구석을 밀고, 비누 거품을 듬뿍 묻힌 샤워볼로 다시 살살 훑는 일은 꽤 번거롭기 때문이다. 단 오 분이라도 빨리 씻고 빨리 잠에 드는 것이 더 중요해진 지금, 피부가 다 벗겨지는 듯한 고통의 감각도 거의 잊어버렸지만 가끔은 내가 나를 어찌하지 못하는 동안 누군가가 아무 말 없이 내게 고통을 가해 때를 모두 벗겨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시 포근한 거품과 따뜻한 물로 나를 감싸고 아늑한 이불 안으로 불러들이기를 바란다.


내가 서른 살이 되고 언니가 서른네 살이 되었지만 우리는 아직도 엄마의 손놀림을 닮지 못했다. 다른 누군가는커녕 나 하나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우리는, 우리를 고통과 노곤함과 포근함 속에 놓아두었던 엄마가 마지막에 스스로에게는 어떤 목욕을 주었는지 아직 알지 못한다.

일요일 연재
이전 01화행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