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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Song Oct 16. 2024

수영장이 담긴 책

영혼과 돈을 갈아 넣은 패키지의 탄생

 스위머스북클럽의 제품을 담아낼 패키지는 두 가지 종류로 기획되었다. 하나는 파자마를 담을 상자, 다른 하나는 문구 세트를 담을 상자였다. 수영과 책이라는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하기 위해 디자이너분과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리고 디자이너분이 천재적으로 만들어주신 패키지가 일렁이고 있는 수영장이 담긴 책을 연상케 하는 박스였다. 박스는 정적이며 움직이지 않는 물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물성을 벗어나 일렁이고 있는 수영장 바닥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감탄을 자아냈다. 패키지 제작은 최소 수량이 꽤 크기 때문에 시작하는 스몰브랜드가 제작하기는 비용과 재고부담이 크다. 나 또한 예상되는 견적서를 받아 들고 정말 진행하는 맞는 것일까?라는 고민을 했지만 스위머스 북클럽의 메시지를 진심으로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과감하게 패키지에 투자하기로 했다. 파자마 박스는 사이즈가 크기 때문에 박스의 모양이 무너지지 않게 많은 신경을 썼다. 겉면의 박스 하나와 안쪽에 접어서 들어가는 무광의 하얀 박스가 하나 더 있다. 겉면 패키지의 시안은 수채화 버전이 하나 더 있었지만 깔끔한 현재의 시안으로 가기로 했고, 박스의 등에는 책처럼 스위머스 북클럽의 로고를 새겨 넣었다. 고급스러운 느낌을 일관되게 가지고 가고 싶었기 때문에 글자는 금박으로 인쇄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은’ ‘금’이 들어가는 공정은 다 비용이 비쌌다. 하지만 가능한 한 가장 아름다운 패키지를 제작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 부분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렇게 내 영혼과 돈을 다 갈아 넣었다는(?) 패키지가 탄생되었다.

  다마스로 엄청난 양의 패키지가 우리 집(집의 작은 다락에 사무실이 있다)으로 배달되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패키지가 충무로에서 출발했다는 디자이너분의 문자를 받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던 일, 생각보다 많은 양의 박스에 도대체 어디에 재고를 놓아야 하나 난감했던 일. 결국 수많은 박스의 재고는 여전히 우리 집 여기저기에 지분을 차지하며 쌓여있다. 그리고 패키지 제작에 무지했던 나는 패키지를 받으며 내가 일일이 접어서 박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큰 박스는 접기 어렵지 않았지만, 작은 문구박스가 문제였다. 너무 작아서 접어서 속박스를 만들기가 어려웠다. 내가 접어보니 한 박스를 만드는데 최소 20분은 걸렸다. 정말 난감했다. 어떻게 접는데 하나당 20분이 걸리는 박스를 만들 수 있을까. 디자이너분의 작은 박스는 생각보다 접기가 힘들다며 초대해 주신다면 같이 박스를 접자고 친절하게 말씀하셨던 이유를 알았다. 고민에 빠져있던 나는 친구들에게 이 박스의 문제를 얘기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그동안 몰랐지만 종이 접기에 조예를 가진 친구들이 많았던 것이었다. 친구들은 꼭 어렵다는 이 박스를 접어보고 싶다며 꼭 기회(?)를 달라고 했다. 이렇게 종이 접기의 달인인 친구들을 초대하자, 친구들은 ‘오호’를 외치며 즐겁게 ‘이거는 피아노 접기로 접어야겠다’ ‘이 부분은 쇠자를 이용하면 된다’며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박스를 접어주었다. 유튜브로 일본 종이접기 채널을 열심히 구독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기도 했다. 패키지 제작이 최대난관인 줄 알았던 부분이 종이 접기의 달인 친구들 덕분에 아주 가볍고 즐겁게 넘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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