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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령 Sep 27. 2020

8. 서체는 패셔니스트(fashionist)

중국 역사 열람, 그 속에 숨은 서체 찾기

 서체는 글씨 쓰는 방식이다. 한자서예의 월드에는 서체도 많다. 서체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옷을 다르게 입고 있다. 대충 봐도 십 여 가지는 넘어 보인다. 그래서 서체는 패셔니스트(fashionist)다. 그중 서체를 5 체로 나눈 방식이 마음에 든다. 제일 적다. 5가지만 알아도 된다고 믿는 나는 초보다.  

    

 선(先) 중국 역사 후(後) 서체의 순서로 봐야 서체 변화를 이해하기 쉽다. 서체는 글자만 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시대별 서체가 입은 옷의 출처와 배경을 알면 유행의 흐름이 보인다. 마음은 중국 역사를 꼼꼼하게 살피고 싶었다. 주마간산(走馬看山)의 말 보다 중국 전통극 변검술이 얼굴을 바꾸는 순간에 가까울 정도로 빠르게 마음을 바꿨다. 아주 간단하게. 요약과 동시 해당 국가의 서체를 잠깐 보인다. 찾는 재미도 있다. 사설이 길다. 복잡한 중국 역사 속으로 들어가기가 막연해서 그렇다.

     

 중국은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한 곳이다. 눈이 많았던 창힐이 한자를 창제했다는 삼황오제의 시절이 지나고 하(夏) 나라까지 여전히 신화와 전설이 난무했다. 그러다 실존 증거를 가진 은(殷) 혹은 상(商) 나라가 갑골문자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앞으로 수많은 나라가 등장할 예정인데 나라 이름이 두 개씩 있으면 경고! 이어진 관중과 포숙의 우정이 빛났던 周(주)나라 문자는 대부분 솥 안에 있다. 잠시 쉬고 싶은데 그 새 난리가 났다.      

 약 500년 동안 춘추전국시대라는 양면을 가진 혼란기가 왔다. 무질서과 질서, 전쟁과 평화, 강자와 약자 등 모든 것이 세팅되었던 군웅할거(群雄割據) 시기였다. 약한 나라는 강한 나라를 꿈꾸며, 강한 나라는 더 큰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제자백가들을 찾았다. 권모술수로 짜 놓은 판을 갖은 사상으로 꾸몄다. 찾는 이가 없으면 수레를 타고 나라별 순례 팀을 꾸리기도 했다.    

  

 이 혼란을 수습한 이가 진시황이다. 전서(篆書)를 총정리했던 진(秦) 나라는 선 굵은 업적과 CHINA라는 이름을 남기고 단명하였다. 빈 터에서 초한지(楚漢志)의 주인공들이 싸우고 있다. 한(漢) 나라는 기원전후를 걸치며 약 400년 넘게 지속된 장수국가다. 중국의 문자가 한자(漢字)라 이름 붙은 것에 걸맞은 문체의 전성시대였다. 예서(隸書)를 공식문자로 사용했으며 해서(楷書), 행서(行書), 초서(草書)의 싹을 틔워놓고 삼국지의 무대 뒤로 사라진다. 위, 촉, 오의 각축장에서 수많은 영웅들이 명멸해갔다. 결국 잠시 승리에 취했던 위나라는 느닷없는 진(晉) 나라에 패권을 넘겨주었다. 시성(詩聖) 왕희지의 커다란 족적을 보면서 또다시 남북조의 치열한 각축전에 돌입했다.      


 고구려와 이기지도 못할 전쟁을 치렀던 수(隨) 나라는 당(唐) 나라에 과거제도를 넘기는 역할로 잠깐 특별 출현했다. 당시 송사 원곡(唐詩宋詞元曲)이라 당나라는 시, 송나라는 가사, 원나라는 희곡이라는 대표자만 말하고 단박에 넘어가려 했다. 그런데 양심상 간단해도 너무 간단하다. 당(唐) 나라는 필법(筆法)을 가장 많이 강조했고 그에 관한 저술도 활발했다. 알고 보니 수많은 저술 속 필법이 초보자의 뒷목을 잡게 한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된다는 엄격한 필법 숭상의 시대가 열렸다. 그래서 중국은 서예가 서법(書法)이다.   

  

 속보(速步)로 5대 10국을 지나 송(宋) 나라로 이동. 필법은 자유와 개성을 찾았다. 법(法)보다 의(意)가 대세인 시대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대의 자유는 후학들에게는 부담이 되었나 싶다. 송나라 해서의 임모는 권하지 않는다고 했던 글을 읽었던 것도 같다. 그 뒤를 이은 원(元) 나라는 왕희지의 복고 열풍이 불었으나 정통에서 포커스가 살짝 빗나간 것으로 평가된다. 완주하겠다. 점점 밝아진다.      


 밝다. 명(明) 나라다. 점점 책상과 의자가 높아져서 붓을 잡는 방식에도 변화 있었다. 그리고 전각이 예술의 한 부분으로 당당하게 자리 잡았다. 자신이 지은 시를 직접 쓰고 그림까지 척척 그리는 작가가 많아졌다. 시서화(詩書畵) 모두에 능한 대단한 능력자들이 참 많기도 하다. 그러니 점차 서법(書法)과 화법(畵法)의 영역이 서로 다르지 않게 되었다. 그동안 서법에서는 열외였으나 그림에서는 사용되었던 산봉(散鋒)과 파봉(破鋒)도 용필의 영역 속으로 들어오는 변화가 생겼다. 이제 드디어 결승점이다. 청(淸) 나라는 첩학(帖學)과 비학(碑學)의 연구가 활발했다. 추사 김정희를 통해 들어 본 옹방강, 완원 등 낯설지 않은 이름이 반갑다.      


 너무 길고 복잡한 내용을 아주 짧게 봤다. 빙산의 일각은 양반이다. 그래도 변명을 하자면 이렇게라도 흐름을 알아야 앞으로 진행될 미시적 내용의 주소가 어디쯤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초보자는 언제쯤 제대로 글을 쓰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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