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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령 Sep 26. 2020

7. 서예본색

한자서예

 서예는 영어로 캘리그래피(calligraphy)다. 캘리그래피가 발달한 지역은 동남아시아의 한자문화권과 예술적인 그림글자가 이국적인 이슬람권, 중세 깃털 펜과 필사본이 연상되는 유럽권이 있다. 서예와 캘리그래피의 공통점은 손으로 직접 글씨를 쓴다는 것이지만 서예는 한자를 근간으로 한다는 점이 다르다.  


 우리나라의 서예는 한자서예와 한글서예가 있다. 한자서예가 한글서예보다 훨씬 많은 서체와 넘치는 내용, 복잡한 기법이 있다. 그래서 어려운 한자서예를 먼저 배우고 나면 한글서예는 쉽다고 한다. 단, 조건이 있다. 한자서예를 중간에 포기하지 않을 경우에 그렇다. 힘든 조건이다. 초보자인 나도 500번쯤 그만둘까 고민했다. 글을 쓰는 시간보다 포기 문제를 고민한 시간이 훨씬 많은 것 같다. 이 느린 걸음의 취미는 언제나 권태기며 늘 슬럼프에 빠진 것 같다. 창고로 향했던 앞 선 많은 취미생활의 도구들과 함께 서예도구도 수장고에 들어가는 비운을 겪지 않게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즐기기 위해 쉬는 듯 보이지만 쓰고는 있다. 그래서 나의 초보자 딱지는 유난히 길다.      

  

 우리나라는 서예(書藝), 중국은 서법(書法), 일본은 서도(書道)라 한다. 우리나라에는 기원전 100년도 더 전에 한사군을 통해 본격적으로 전래되었다는데 지금의 “서예”라는 명칭을 갖게 된 기간은 의외로 짧다. 조선시대까지는 서(書), 일제강점기에 서도(書道)라 했다. 붓글씨는 해방 후 1949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개최 당시 미술부문과 함께 참여했다. 그 때 독립된 예술분야로서 자리매김의 차원에서 서예(書藝)로 명칭을 정했다. 당시 무수한 찬반여론의 논란 속 졸속처리라는 무리수를 두고 강행했다는 등 분분한 이야기가 있다. 서예진흥에 관한 법률 제 2조 제 1호에 서예란 문자를 중심으로 종이와 붓, 먹 등을 이용하여 미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시각예술을 말한다고 되어있다. 이런 법률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한자는 대략 BC 2000년경 만들어졌다고 한다. 고조선 건국과 비교해 보면 정말 오래된 문자다. 게다가 그 긴 세월동안 형태의 변화도 크게 없다고 한다. 중국의 유명한 작가 루쉰(魯迅)은 “한자가 없어지지 않으면 중국은 반드시 망하고야 말 것이다”라고 했다. 나만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1956년 중국은 80%나 되는 문맹률을 낮추기 위해 일부 한자를 간소화시켜 2,225자의 간체자(簡體字)를 정자로 정했다. 결과 문맹률이 10%이하가 되었다고 하며 또 중요한 문자의 발음을 알파벳으로 표기해 보급했다. 중국의 한어대자전(漢語大字典)에는 한자가 55,000자 정도가 수록되어 있다. 한자는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필수 상용한자는 1800자로 타이완과 홍콩 등에서 사용하는 번체자(繁體字)이다. 문제는 컴퓨터의 한자변환에 간체자가 나온다는 것이다. 상용자보다 글자 크기도 크고 색도 다르다. 눈에 확 띈다. 그러니 뜬금없이 우리가 두 개의 한자를 알아야한다는 거다. 오리무중 속 첩첩산중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後漢의 설문해자는 세계 최초 사전이다. 그 시대 한자 9,353자를 육서(六書-상형, 지사, 회의, 형성, 전주, 가차)로 분리해 글자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압권은 당시 부수(部首)만해도 540여개라는 사실이다. 현재는 부수를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214개로 대폭 줄였다한다. 그래도 많다. 대단히 많다. 문자가 달라 적절한 비교는 아니지만 한자의 부수가 한글의 자․모음이나 영어의 알파벳에 해당한다고 보면 엄청난 숫자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한글 창제 당시 스물여덟의 자음과 모음은 글자를 쉽게 만들기 위한 엄청난 노력의 결과물인지 감히 짐작해 본다. 우리나라가 한자의 영향권 안에 있었기 때문에 기존 관념을 파괴한 자음과 모음의 조합이라는 시스템은 대단히 창의적인 발상이다. 수 백 년 후 속도전을 펼치게 될 자손들을 예견했던 것일까? 컴퓨터 자판배치와 이동전화의 문자판을 생각해보면 소름이 돋는다. 참고로 같은 한자문화권인 일본은 오십음이다. 한글은 정말 멋지고 위대한 문자다. 그렇지만 초보 한자서예인은 우리 한글은 뒤에 두고 한자라는 산을 바라만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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