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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령 Nov 07. 2021

10. 금문은 솥 안에 보이지도 않게

- 여전한 그들만의 언어

1. 글자는 세상 밖으로


 금문은 종, 솥, 제기, 그릇, 악기 등 청동에 새겨져 있다. 종정문, 명문이라고도 한다.

은나라 뒤를 이은 주나라는 왕과 신이 독점했던 글자를 인간 세상에 내놓았다. 정치적 소통이 필요해서였다. 이제 좁은 물에서 넓은 세상으로 방생된 글자는 인간의 손에 의해 거듭될 무수한 변화를 앞에 두고 있다.

글자는 춘추전국시대라는 급류를 만날 운명이다.

     

2. 왜 솥 안에다 글을 써 놓았을까? 보이지도 않게.


 비록 글자가 세상 밖으로 나왔더라도 왕과 제후들 전용으로 여전히 대중과는 거리가 있었다. 중요 행사에 사용하는 의례용 물건에 글자를 새겼다.

그들만의 소통용이라 굳이 남들에게 보일 필요가 없으니 안에다가 새겨놓은 것이다.

 날카로운 갑골문과 달리 금문은 굵고 둥글며 글자 크기가 균일하다. 청동에 직접 새긴 것이 아니고 진흙에 조각한 뒤 이것을 주조하여 만들었다.

금문은 결합 원리에서는 갑골문자와 같이 상형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3. 주나라의 운명과 함께 한 금문의 시대


 주나라(서주)는 이민족의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여 동쪽으로 나라를 옮겨 동주의 시대를 열었으나 국운은 이미 기울어져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주나라의 책으로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유교 경전인 “주역”은 역서(易書)로 점을 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점복의 그늘을 벗어나지 않았던 주나라의 운명도 점쳐졌을까?

시간의 흐름을 따라 금문도 형태의 변화를 겪는데 조충문, 과두문, 석고문 등 전서(대전)의 형님들 또는 사돈의 팔촌쯤 되는 글들이 독창미를 내세우며 명멸했다. 진시황 등장 전까지.              

특히 멋짐이 폭발하는 왕자 오의 무덤에서 출토된 솥(왕자오정)에는 독특한 조충문이 새겨져 있다. 글씨의 독창성은 해석의 난해함과 일맥상통하다.

웬만하면 자료용 그림을 그릴 용기를 내어 보는데 조충문이나 과두문은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만큼 특이한 형태의 글자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그림을 본 눈은 버리고 참고만 가져가시길.         

 이 시점에 소개할 우리나라 유물이 있다. 먼저 통일신라 최치원의 국보 제47호 진감선사대공탑비다. 비석 이수에 새긴 “전액”이 특이한데(대체로 전액은 전서로 새김) 새겨진 글자의 해석이 분분하다. 문외한의 눈에도 전서(대전 또는 소전)로 보이기보다 조충문과 과두문의 어디쯤으로 보인다. 그리고 조선의 별전 중에서 과두문이 새겨진 것도 있다.                                        

고대의 과두문자나 조충문은 전승되지 못했지만,
지금 캘리그라프 독창적인 글자를 보면
현대로 부활한 과두문자나 조충문을 만나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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