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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생 Feb 18. 2022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정세랑)

일주일에 책 한 권

제목만 보고 이상기온, 기후변화, 후진국에 쌓이는 선진국의 쓰레기들을 다루는 고발 형식의 책일 거라 짐작했다. 빌릴 땐 제목 빼고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었다. 서점에서 책을 살 때는 작가명, 목차, 작가의 말을 조금이라도 읽어 보고 사게 되는데, 도서관에서 빌려 볼 때는 제목과 신간인지 여부로 많은 책을 빌리는 편이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이 책을 읽어야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책을 폈을 때, 많이 놀랐다. 환경에 대한 책이 아니었다. 굳이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이 책에서 환경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찾아보자면 372페이지 작가로서 에너지와 쓰레기가 생성되지 않는 책을 만드는 고민을 적어 놓은 부분이 있긴 하다.


정확히 말하면 이 책은 여행 에세이이다. 그것도 장르 소설가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작가의 2021년 기준 9년 전인 2012년에 다녀온 여행에 대한 푸욱 묵어버린 여행에 대한 에세이이다. 


제목만 보고 고른 책이 여행 에세이였다는 점도 놀랐고, 보건교사 안은영으로 유명한 과학 장르 소설 작가인 정세랑 작가의 책이었다는 것도 놀랐지만 정작 놀란 건 여행 에세이인데 최근(코로나로 인해 최대 관용을 베풀어도 3년 이내) 여행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9년 전에 다녀온 여행지에 대한 에세이라는 점에 정말 놀랐다.


왜? 여행 에세이가 장편 소설도 아닐지언데 9년이나 썼으며, 본인도 기억이 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시기가 되어서야 출간을 하게 되었는지가 정말 의문이었다. 그러나 그 의문들은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자연스레 해소가 되어진다.


첫 페이지에 작가가 '이 지난 여행의 기록들은 사실 여행 그 자체보다는 여행을 하며 안쪽에 축적된 것들에 중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라고 표현한 그대로의 책이다. 여타 여행 책처럼 여행지에 가는 방법, 비용을 절감하는 방법, 가성비 좋은 숙소나 식당, 교통 편들을 전달해주는 책이 아니었다.


이 책은 2012년도에 다녀온 뉴욕, 아헨, 오사카 그리고 2014년도에 다녀온 타이베이와 런던을 여행지로 다룬다. 여행지에서 보고 듣고 느낀 소재를 활용하여 작가 본인이 스스로에게, 친구에게, 사회에서, 그리고 지구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옮긴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책에 적힌 글들은 가볍고 쉽게 읽히는 편이다. 다만, 중간중간 소수자에 대한 차별, 인종에 대한 차별, 여성에 대한 차별, 장르 소설 작가에 대한 차별, 동물권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낸 장에서는 차분하게 스스로를 돌아보며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기도 한다.


제목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내용은 전혀 달랐지만 다 읽고 난 후에 '재미있네. 읽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떠올랐던 걸 보면 나에게는 충분히 즐길 수 있었던 좋은 책이었다.


이 책에서 여행자에게 주는 팁도 분명히 들어 있긴 하다. 그것은 바로 '벨기에에선 플레인 와플'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가 이 책에서 이거 하나만 기억해줘도 섭섭하지 않다고 까지 표현한 걸 보면 정말 맛있나 보다. 그리고 난 그 내용을 기억했기에 작가분이 이 글을 읽진 않겠지만 읽더라도 이 부족한 글에 섭섭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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