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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생 Mar 01. 2022

휴직 끝 방학 끝. 이제 다시 시작

휴직 중 아빠와 방학 중 딸 - 53,54일째

- 53일째 - < 오늘은 뭐할까? >


"아빠, 우리 오늘 뭐해?"

"응. 오전엔 조금 바쁠 것 같네. 겨울옷들 세탁소에 맡기고, 운동하고, 셀프세차장도 가야 되고"


휴직이 끝나간다고 생각하니 가장 먼저 청소를 해야 될 것 만 같았다.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마당정리를 며칠 전부터 해왔었는데 오늘은 현관 신발장안에 있는 각종 공구들과 신발을 정리해야만 할 것 같았다.


아침을 차려 먹은 후 방은 로봇청소기를 돌려 청소를 시켜 놓은 후 현관 신발장을 정리했다. 정리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버려도 되는 물건들을 왜 이리 많이 쌓아놓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신발장 정리하며 버려도 되는 물건만 큰 봉지로 하나 가득 나왔다. 이것만 버려도 왠지 집이 가벼워지는 것처럼 후련해진다.


신발장 정리 후에 아이들과 옷을 입고 클라이밍을 하러 갔다. 클라이밍도 평일날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다. 이젠 휴일에 일일체험 형식으로만 다니게 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열심히 하게 된다. 그래서 팔꿈치가 까졌다. 아프다.


"오늘 점심 뭐 먹을래? 이젠 대부분 점심은 학교 급식 먹을 테니 먹고 싶은 것들 먹자?"

"음. 떡볶이도 좋고, 라면도 좋고, 볶음밥도 좋고"

"그럼 중국집 갈래"

"너무 좋아"


메뉴를 결정 한 나와 딸, 아들은 클라이밍 학원 근처의 중국집으로 갔고, 짜장, 짬뽕, 볶음밥 하나씩을 시켜 먹었다. 여전히 우리 아이들은 잘 먹는다. 이쁜 것들.


밥을 먹고 아이들 인생엔 처음으로 셀프세차장에 갔다. 원래 셀프세차장은 혼자 다녔다. 비용을 내면 시간제한이 있기에 아이들을 챙겨주며 하기에는 시간 경과로 비용이 추가될 것 같기에 그랬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이들 경험시켜주기 위해 함께 갔다.


돈을 넣고 고압의 물줄기를 뿌리고, 거품 세척을 하고, 마른걸레로 깨끗하게 닦고, 매트를 청소하고, 실내를 청소기로 돌리고 이 모든 걸 아이들과 함께 했다. 막상 해보니 나 혼자 했을 때보다 더 빨리 끝났고, 훨씬 더 깨끗해졌다. 진작 데리고 올걸, 나 혼자만의 지레짐작으로 함께 다니지 못했던 것 같다.


아이들이 마른걸레로 차를 닦는 모습을 한참 쳐다보았다. 너무 빨리 자라 버린 것 만 같았다. 이젠 조금만 천천히 컸으면 좋겠다.

모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책을 읽고, 막내랑 게임도 하고, 저녁을 차리던 중 직장 인사팀과 통화를 했다.


"저 수요일 어디로 출근해요?"

"방금 인사발령 났어요. 수요일부터 입학 과로 출근하시면 됩니다"

"입학과 요? 음. 알겠습니다"

몇 분후 입학과 팀장님이 반갑다며 잘해보자고 전화가 오고, 인계인수하게 될 직원도 전화가 왔다.


이제 다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 54일째 - < 마지막 날이네 >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막내를 재우기 위해 전날 9시에 누웠는데 2시간이 지난밤 11시에 잠에서 깼다. 한참을 뒤적거리다 그냥 이불 밖으로 나와 작은방으로 갔다.

'그래도 내일이 3월 1일 쉬는 날이라 늦게 자도 괜찮겠다'


지난 1년간은 밤에 잠이 오지 않아도 걱정이 없었다. '뭐 졸리면 내일 자면 되지' 그렇게 생각했기에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함이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잠이 오지 않는 것도 걱정이 될 것 같다.


그렇게 뜬 눈으로 휴직의 마지막 날인 3월 1일 0시를 맞이했다. 진짜 오늘이 마지막 휴직 날이다.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또 어제 발령받은 부서가 직장 내에서는 꽤나 어렵고 바쁜 부서 중 하나이기에 걱정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1년 쉬었으니 열심히 해서 다시 내 자리를 찾아야지라는 생각도 들고, 휴직을 연장할 걸 그랬나 싶었다가도, 오래 쉬었는데도 다시 불러주는 회사가 있다는 게 요즘 같은 세상에 얼마나 큰 복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많은 생각 끝에 우선은 이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요즘 같이 취업이 힘들 때 1년이나 쉬었는데도 다시 돌아갈 데가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한 일이다. 앞으로도 수년간 일을 해야 할 텐데 힘든 부서지만 잘 적응해서 쉬었더니 감 떨어졌네라는 소리 듣지 않도록 열심히 해야겠다'라고.

그렇게 많은 생각과 고민과 긴장감에 늦게 까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 겨우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 막내를 껴안고 잠에 들었다.

아침이 되자 나의 휴직 생활 최우선 조건이었던 삼시 세 끼를 차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데 우리 딸이 "아빠, 내가 밥하고 유부초밥 만들어서 아침으로 먹어도 돼""응, 당연히 되지" 그렇게 아침은 딸과 아들이 만들어준 유부초밥을 먹었다.


점심은 친구 부부가 밥을 사준다며 우리 집 근처까지 왔다. 친구가 사준 닭볶음탕으로 점심을 먹고 근처 카페에서 맛있는 차까지 대접받았다.


저녁은 다음 달 결혼인 또 다른 친구가 청첩장이 나왔다면서 밥을 사준다고 했다. 휴직의 마지막 날은 단 한 끼도 직접 차리지 않고 편하게 그러면서도 맛있게 끼니를 챙겨 먹을 수 있었다. 앞으로 좋은 일들만 가득하라는 친구들의 응원이라 생각한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집안 정리를 하고 내일 출근할 준비를 했다.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긴 하다. 사무실 책상에 올려놓을 직원용 명패와 사원증, 그리고 치약과 칫솔이 짐의 전부이다. 

큰딸도 열심히 가방을 챙긴다. 새로 산 필통에 연필, 샤프, 지우개, 색연필을 넣고, 노트도 챙기고, 내일 입을 옷들도 방 한편에 잘 챙겨 놓았다.

"아빠, 빨리 학교 가고 싶다"

"아빤 가기 싫은데"


나의 1년간의 길고도 짧은 휴직은 끝이 났다. 그리고 아이들의 방학도 끝이 났다. 아이들과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함께 24시간 부대끼며 보낸 시간들도 이젠 새롭게 정리해야 한다.


2022년 3월 2일 나의 직장 생활이 다시 시작된다. 아이들의 학교 생활도 다시 시작된다. 그렇게 또 다른 모습과 방법으로 잘 살아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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