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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생 Mar 01. 2022

이렇게만 살면 부러울 게 없겠다

휴직 중 아빠와 방학 중 딸 - 51일째, 52일째

- 51일째 - < 홍게 무한리필 >


나의 복직 전 그리고 아이들의 개학 전 마지막 주말이다. 그래서 원래는 친가, 외가를 모두 방문하고자 계획했었는데 엄마가 감기 기운이 아직도 심해 어쩔 수 없이 친가는 다음에 가기로 하고 외가만 방문하기로 했다.


대부분의 집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우리 집도 모이기 전에 가장 먼저 정하는 건 식사 메뉴이다. 저녁에 만나기로 했기에 저녁 식사는 아내와 장모님이 상의해서 홍게 무한리필 집으로 가기로 정했다.


저녁 6시 홍게를 그것도 무한정으로 먹기 위해 점심은 가볍게 국수로 배고픔만 달래 놓았기에 식당에 도착하기 전부터 우리의 배는 홍게를 받아들일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었다.


드디어 식당에 들어섰다. 입구에서부터 수백 마리의 홍게가 수족관에 가득가득 차있었다. 

"아빠, 홍게 너무 맛있겠다"

"그러게 아빠도 기대된다"

"진짜 많이 먹어야지"

"무한리필은 배가 아플 때까지 먹어야 되는 거야"


그렇게 우리 부녀는 홍게와의 전투에서 승리하고자 전의를 불태우고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고 몇 분후 쯤부터 종업원이 홍게를 가져다 주기 시작했다.

이 식당의 좋은 점은 부르지 않아도 계속 홍게를 가져다준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무한리필이라고 해도 몇 번 부르면 좀 민망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데 이곳은 알아서 가져다 주니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되니 먹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2시간여 동안 우리 가족은 홍게 수십 마리를 게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딸과 아들 모두 

"아빠, 여기 진짜 맛있다"를 몇 번이나 말했으며, 다음에 또 오자라는 말로 식사를 마쳤다.


금액이 저렴한 식사는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 크게 만족했기에 불만은 없다. 오랜만에 먹은 게 맛을 당분간 잊지 못할 것 같다.


- 52일째 - < 소고기 마음껏 >


처가댁에서 잠을 자고 오전에는 30분 정도 떨어진 군산 옥산저수지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아침은 장모님이 차려주신 아귀탕으로 해장을 하고, 군산으로 출발했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저수지에는 주차할 곳을 찾는 데에만 한참이 걸렸다. 그렇게 주차를 하고 가족끼리 많은 대화를 나누며 저수지 둘레길을 1시간이 넘게 걸었다. 


날씨도 좋고, 저수지에 부서지는 햇살도 좋고, 바람도 좋고, 그리고 옆에 가족들이 있어서 더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수백 마리가 넘는 오리 떼가 날아가는 모습도 보고, 저수지 한쪽에 그 수백 마리가 내려앉는 장관을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빠, 오리가 저렇게 높이 잘 나르는지 몰랐어. 너무 멋있다"

"아빠도 몇 백 마리가 한 번에 날아가는 거 처음 본다. 오늘 여기 오길 잘했다. 진짜 멋있다"

"아빠, 근데 우리 점심은 뭐 먹어?"

"오리"

"안 먹어"

"할머니가 소고기 사주 신대"

"진짜~ 할머니 최고. 할머니~~ 같이 가요"


그렇게 딸은 내 손을 팽개 치고 소고기를 사주신다는 할머니 옆으로 달려갔다. 우린 저수지를 걷고 점심을 먹기 위해 다시 처가댁 근처로 돌아갔다.

'다른 메뉴도 아니고 소고기인데 어디든 가야지'라고 생각했기에 30분 넘게 돌아가는 길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소고기 집에 도착해서 입에서 살살 녹는 소고기를 또 원 없이 먹었다. 그렇게 한 참을 소고기를 먹던 중 

"아빠, 어제는 홍게 오늘은 소고기 이렇게만 먹고살면 좋겠다"라고 하니 장인어른께서도

"그러게. 이렇게만 살면 부러운 게 없겠다. 우리 잘 사는 것 같다"라며 흐뭇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도 대답했다. "그러게요. 이렇게 좋은 것만 먹고사는 날이 있네요"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긴 했다. 내 위가 좋은 음식을 매일 받아들일 준비가 좀 안되어 있었나 보다 소고기를 잘 먹고 차가운 냉면을 먹은 후 배탈이 났다. 좋은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입뿐만 아니라 내장들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어쨌든 우리는 최상의 음식과 함께 한 최고의 주말을 보냈다. 이 음식들이 복직하는 나와 개학하는 아이들에게 좋은 기운을 북돋아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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