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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생 Dec 07. 2021

나는 버스를 못 타는 사람이 되었다.

10년만에 시내 버스를 탔다

시골에서 태어나서 자랐기에 초중고등학교 때까지 수 없이 버스를 타고 읍내를 왔다 갔다 했었다. 내게는 버스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그건 대학교 때까지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차를 사게 된 건 결혼 후의 일이었다.


결혼 후 차를 산 이후에는 버스를 그것도 시내버스는 타본 적이 없다. 어제 저녁 약속이 있어서 그것도 술을 한잔 해야 하는 자리라서 버스를 타고 나가기로 했다. 올 때 택시를 타는 게 차를 가지고 나가서 대리기사님을 부르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았다.


이 동네에 이사온지 6년이 넘었는데 시골이다 보니 버스가 간간히 한 대씩 온다는 건 알고 있지만 타본 적이 없어서 버스 시간표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행히 내가 휴직으로 계속 집에 있는 올해만 제외하고는 와이프는 급한 일이 있을 때 버스를 몇 번 타보아서 인지 버스앱을 켜고 시간과 타는 장소를 알려주었다. 


난 내가 세상 살 만큼은 똑똑하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알려주지 않으면 버스 타는 시간, 방법, 장소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차비는 신용카드로 결제가 된다고 하기에 카드를 준비하고, 버스 시간이 돼서 나가려는데 딸이 불러 세웠다.

"아빠, 차비 있어?"

"응. 카드로 된다는데?

"혹시 그 카드 안될 수도 있으니깐 이거 가져가" 라면서 천 원짜리 두장과 백 원짜리 5개를 건네주었다.

초등학교 5학년 딸내미도 버스 타러 가는 내가 심히 걱정이 되나 보다.


이런 상황이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뭔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

그렇게 동네 입구 정류장에서 10분 여정도 기다려 버스를 탔다. 다행히 버스비는 카드로 잘 결재가 되었다. 그렇기에 딸이 준 동전 5개는 바지 주머니에서 밤새 잘 찰랑거리며 있게 되었다.


버스를 타니 가는 길이 내가 운전해서 갈 때와 많이 달랐다. 직접 운전을 해서 갈 때는 큰길로 가장 가깝게 시내로 나갔었는데, 버스는 이곳저곳을 들러야 하니 동네 골목으로만 달리는 거였다. 오랜 기간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동네의 뒷길도 처음 보았다. 운전을 하지 않으니 편하게 창밖을 계속 바라볼 수 있었다.

지나가는 차들, 기울어가는 해, 흔들리는 나무를 보는 기분이 나름 괜찮았다. 잠시 동안은.


오랜만에 버스를 타서 그런 건지 아니면 버스가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달려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10분 정도 지나니 멀미 기운이 슬며시 올라오는 것 같았다. 속도 불편하고 머리도 띵하고. 이 말을 다음날 아침 가족들한테 했더니 아내가 "정말 편하게 잘 살고 있고만? 그거 조금 탔다고 멀미나 하고?" 근데 정말 멀미 기운이 올라온걸 어찌하겠는가.


버스에서 내려 약속장소 까지 20여분간 아직은 춥지 않는 겨울 밤길을 걸었더니 멀미는 진정이 되었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버스를 못 타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걸'. 나이를 먹으면 하나씩 하나씩 할 줄 아는 게 늘어나기만 할 줄 알았는데 하게 되는 것만큼 못하게 되는 것도 많아지는 것 같다.


웃기면서도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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