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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생 Dec 13. 2021

아이의 방학이 다가온다

-너와 나의 뻔한 방학 이야기 -

 < 너와 나의 뻔한 방학 이야기 >


                                   장수생


너는 배가 고프다며 밥을 달라고 한다.

나는 기계처럼 밥을 짓는다.


너는 반찬 투정하며 밥을 먹는다.

나는 한숨을 지으며 밥상을 치운다.


너는 잠시 후 또 배가 고프다고 한다.

나는 이제 배가 아프려고 한다.


너는 책을 읽어달라며 나를 보챈다.

나는 혼자 읽으면 안 되냐며 너를 밀친다.


너는 같이 놀자며 나를 붙잡는다.

나는 잠깐만 혼자 놀고 있으라며 너를 밀어낸다.


너는 재미없이 혼자 놀다 잠이 든다.

나는 잠든 너를 보며 '내일은 잘해줘야지'라고 다짐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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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저녁을 차려주고 이를 먹는 딸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내가 말했다.


"갑자기 시가 한 편 떠올랐어!"

"뭔데? 해봐?"라고 딸이 말하자마자 내가 읆었던 시(시라고 불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이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아빠, 아침 뭐 먹어?"부터 물어보는 딸

아침 먹자마자 "아빠, 점심 뭐 먹어?"를 묻는 딸

점심 먹고 얼마 후 "아빠, 뭐 먹을 거 없어?"를 말하는 딸

간식 먹고 난 후 "아빠, 저녁은 라면 먹으면 안 돼?"라며 메뉴를 주문하는 딸


내 딸은 한 명이다. 그 딸이 나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뭐 먹어?"이다.

13살. 아무리 지금이 식욕이 왕성할 때라고 해도 내 얼굴만 보면 다른 말은 한마디도 없이 무조건 먹는 것만 찾는 우리 딸이다.


잘 먹으니깐 당연히 이쁘다. 솔직히 먹고 싶은 걸 다해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도 있다. 비싼 걸 원해서 못 해주는 건 아니고, 너무 자주 원하니깐 내 몸이 귀찮아서 안 해주는 것들이 좀 있어서 지나고 나면 그 부분이 미안해진다.


이제 곧 겨울방학이 된다. 여름방학 때 정말 많이 다투었었다. 공부도 봐줘야지, 본인이 계획한 시간표를 잘 지키고 있는지 감시해야 되지, 그리고 하루 5끼 이상 챙겨줘야 했다. 그 방학이 곧 또 시작된다.


걱정이 된다. 나의 복직 전 아이들과의 마지막 방학이다. 언제 아이들과 이만큼의 시간 동안 붙어있을지 앞으로는 기약이 없다. 그렇기에 아이들과 이번 겨울 방학을 정말 정말 잘 보내고 싶다. 


그래서 방학 동안 아이들과 꼭 해야 할 일 세 가지를 정했다. 

첫 번째는 간식 10가지 이상을 해주는 것이다. 휴직 후 첫 몇 달 동안은 이것저것 많이 만들어 줬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힘들다는 핑계로 잘해주지 않고 있다. 방학 전까지 유튜브를 통해서 이론으로라도 열심히 배워두고, 방학을 하면 하루에 한 가지씩이라도 잘 만들어서 먹여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두 번째는 날씨에 상관없이 자주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코로나를 당연히 신경은 쓰고 다니겠지만 사람은 없지만 아이들과 나는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곳을 찾아 나가려고 한다. 아이들이 가장 원하는 썰매장, 온수 수영장 그리고 겨울의 놀이공원. 꼭 가서 즐거운 추억 하나를 더 만들어야겠다. 그리고 조카들까지 함께 데리고 다니면서 아이들이 더욱 즐겁게 놀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많은 시간을 아이들 옆에 있으려고 한다. 귀찮다거나 힘들다거나 피곤하다는 핑계로 그냥 "혼자 놀면 안 돼?"라고 말하며 내 할 일만 하는 시간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 2개월간은 나 혼자 지내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자 한다. 책도 많이 읽어주고, 영화도 같이 보고, 장난감 놀이도 같이하고,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면서 아이들이 질릴 때까지 붙어 있으려고 생각하고 있다.


남은 휴직기간 동안 위 세 가지를 모두 만족스러울 만큼 지킬 수 있다면 휴직 기간 동안 쌓인 기쁨과 행복으로 복직 후의 힘든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아이들 학교에 있는 오전 시간에 편하게 글을 쓰고 있는데, 이 글을 쓰다 보니 아이들이 빨리 학교에서 돌아오길 기다려진다. 보고 싶다.


"얼른 와~ 맛있는 거 해놓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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