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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생 Jan 15. 2022

그림책이라는 산(고정순 산문집)

일주일에 책 한 권

책을 고를 때 '희망찬 내일을 위해' 파이팅을 외치는 내용만 있는 것도 지양하는 편이지만, '희망이 없는 내일'만을 서늘하게 기록한 책도 좋아하진 않는다. 그리고 사람을 만날 때도 겉으로라도 밝은 척을 해주는 사람이 좋지, 본인의 어둠을 어떻게든 상대방에게 전달해줘야지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꺼려하며 배척한다.


이 책 전반적인 내용에서 내가 느낀 분위기는 후자였다. 그럼에도 중간에 책을 덮지 않고 끝까지 읽은 책이다. 그 이유가 무얼까 다 읽은 후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먼 미래가 아닌 당장 내일 벌어질 일에 대해서 조차 희망과 낙관을 보여주는 책은 아니다. 그렇다고 읽는 내내 비관적인 생각이 들거나, 저자가 불쌍해 보인다거나, 우울해지는 건 아닌 아이러니가 있어서 인 것 같다. 요약하면 '대체 무슨 내용을 적어놓은 거지?'라는 궁금증 때문에 끝까지 읽게 되었다.


저자의 책 소개글에 적시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부합하게 이 책은 내일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책을 모두 읽고나니 오늘만 어떻게든 살아가면 다가오는 또 다른 오늘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 졌다. 그렇게 어제의 오늘, 오늘의 오늘, 내일의 오늘을 살아가는 또는 살아가야만 하는 나와 어느 면에서는 비슷한 성향의 사람으로 보이는 지점들도 꽤나 많이 있었다.


이 책은 확실히 '재미'있는 책은 아니다. '재미'로 읽을 책도 아니다. 그림책 작가로 성공하기까지의 내용을 알려주는 성공 실화 같기도 하고, 그림책 작가는 어렵고 험난한 길이니 그 길을 걷지 말라며 어두운 면을 강하게 부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개인의 성공 비법쯤처럼 생각해서 가볍게 스쳐 읽기엔 너무 진지한 내용이 많고, 그렇다고 감성적으로 다가갈 때에는 읽는 사람이 괜스레 불안해지고, 표현하는 글들은 냉소적으로 느껴져서 무겁고 무서웠다. 


이 책은 제목처럼 그림책 작가인 저자 본인이 지금까지 어떤 상황을 넘고 거치며 그림책 작가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들이다. 많은 그림책들이 언급되고 그 그림책들이 어떠한 과정에서 탄생했는지 알 수 있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그 그림책들을 보지 않았기에 텍스트만 이해할 뿐 그 내면의 것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읽기만 했다. 그림책들을 한 번씩 보고 다시 이 책을 읽으며 저자에게 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 말은 즉슨 저자에게 제대로 공감하진 못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스스로를 '나는 행복에 가까운 불행, 불행에 가까운 행복을 경험한, 적당히 참혹했고 기대보다 운이 좋은 그런 사람이다'라며 평한다. 수많은 그림책을 세상에 내보낸 저작권자로서 누군가에겐 한 없이 부러움의 대상일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 그 모든 빛들을 운으로 치부하며 어둠만이 본인의 정당성 인양 스스로를 바닥에 한없이 가깝게 보는 듯한 태도가 조금은 거슬리면서 슬펐다. 


그럼에도 인사말에는 '독자들이 내 책 사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책 뒤표지에는 '이 시대의 작가가 되고 싶다. 저 시대도 아니고 딴 세상도 아니고 내 발이 붙어 있는 이곳을 그리고 싶다'라는 야망과 갈망을 드러내며 또 오늘을 어떻게든 살아가며 위로 오르려고 애쓰는 보통의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단편을 묶어놓은 산문집이다 보니 페이지마다 감정이 널을 뛴다. 감정 변화가 크지 않는 내가 따라가기엔 조금 벅찬 느낌이 있었다. 


산문집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지만 이 책에 투자한 나의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나와는 다르기에 한없이 낯설지만 그렇기에 호기심 어리게 한 사람의 삶의 단편을 들여다볼 수 있는 내 나름대로의 '재미'를 즐길 수 있는 시간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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