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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MTD Apr 21. 2022

팔이 들어 올려지지 않는다

   증상이 처음 나타난 때는 평범한 아침이었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평소처럼 팔을 짚고 상체를 일으키려 할 때 이상함을 느꼈다. 오른팔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통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그냥 힘이 안 들어갔다. 왼팔을 이용해서 상체를 일으킬 때 복근으로만 상체를 세우는 것이 안된다는 것도 느껴졌다. 일어선채로 팔을 굽혔다 폈다 해보니 왼팔은 가능했지만 오른팔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이때는 크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잠을 자다가 눌려서 쥐가 났다든가, 어쨌든 일시적인 현상일 거라 생각했다.


   팔이야 어떻든 그날의 일정들을 위해 씻어야 했다. 덤덤하게 왼팔을 이용해서 머리도 감고 양치도 했다. 나는 오른손잡이지만 이때까지는 괜찮았다. 조금 어렵긴 했지만 옷도 잘 입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차를 운전해서 카페로 가야 했는데, 머릿속으로 시동 거는 것부터 주차하는 것까지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다. 왼팔만 가지고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위험한 짓이었다. 왼팔로 기어를 D로 바꾸고, 운전하여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카페에서의 일정들은 다행히 무리 없이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중간중간 극심하게 피로감을 느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쉬는 시간마다 차에 가서 잠깐씩이라도 누워서 쉬었다. 아직까지도 '오늘따라 몸이 이상하네' 정도로만 생각했다. 카페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한 시간 정도 거리를 운전하여 다음 일정을 소화하고 다시 운전하여 집으로 무사히 도착했다. 그날 스케줄을 다 마치고도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병원에 가볼 생각을 안 했다는 게  놀랍다. 그날이 토요일이기도 했고 일시적인 증상으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기대와 달리 다음날 상태는 더 안 좋아졌다. 그날 보니 '어제는 그나마 움직이는 거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른팔은 완전히 축 처져있었다. 마치 개그 프로그램에서 팔 빠진 사람이 연기하듯이, 그냥 몸통에 매달려있었다. 어깨 밑으로 이두, 삼두, 전완근, 다섯 손가락 전부 마비가 된 것이다. 지금 기억으로는 집게손가락은 미세하게 움직이긴 했었다. 멀쩡했던 왼팔도 오른팔만큼은 아니지만 1/10 정도 이상함이 느껴졌다. 비로소 상황의 심각성이 느껴졌다. 뭔가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참 바보 같게도 그날 나는 그날의 일정을 선택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냥 병원에 가는 것보다 몇 주 전부터 정해진 약속에 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또 일요일이기도 했기에 '응급실 갈 정도로 심한 건 아니잖아, 내일도 그러면 동네병원 가보자'라고 또 한 번 몸의 신호를 무시했다.


   약속 장소가 서울이었기에 기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기차역으로 가기 위해 버스는 무리일 것 같다고 판단하여 택시를 불렀다. 문제는 내 팔 힘이 얼마나 약해졌는지 인식이 안되었다는 것이다. 손 악력도 약해져서 택시 문 여는 것도 힘겹게 열었다. 문을 닫는 것은 여는 것보다 더 오래 걸렸다. 아직까지 다리는 괜찮았기 때문에 택시에서 내려서부터 기차 타는 것까지는 큰 어려움은 없었다. 어찌어찌하여 서울 약속 장소까지 도착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른팔이 하룻밤에 안 좋아진 것과 달리 이날 왼팔은 실시간으로 악화되는 중이었던 것 같다. 음식과 음료를 마시는 중에 내 모습은 누가 봐도 불편해 보였다. 팔을 뻗을 수 없기에 앞접시에 덜어준 음식만 먹을 수 있었고, 다 같이 잔을 부딪칠 때도 컵을 들어 올릴 수 없었다. 포크도 제대로 집을 수 없었는데, 손으로 먹을 수 있는 피자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근데 그마저도 손목이 계속 꺾여서 거의 접시에 입을 갖다 대고 먹는 꼴이 되었다. 나만 그 모습을 애써 부정하며 괜찮다고 내일 병원에 가볼 것이라며 나와 동료 선생님들을 안심시키려 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순간은 금방 찾아왔다. 화장실에서 바지 버클을 풀으려는 순간 느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바지 버클을 풀 수 있는 힘이 없었다. 힘을 아무리 주려고 해도 바지를 벗을 수 없었다. 양손 집게손가락을 이용해서 바짓단 양쪽을 잡고 안으로 밀어야 하는데 바짓단은 손에서 계속 미끄러지기만 했다. 땀이 나기 시작했고 용변을 참아야 했다. 화장실까지 들어갔다가 용변을 다시 참는 것은 다행히도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대참사는 막아야 했기에 기적적으로 참을 수 있었다. 동료 선생님들께는 아무래도 들어가 봐야겠다고 잘 이야기를 하고 걱정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서둘러 자리를 나왔다. 집까지는 한 시간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정신을 잘 차려야 했다. 그런데 집 가는 길에는 다행히도 팔에 대한 심각성이 비로소 인지되어서인지 용변을 참는 것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친구에게 연락해 도움을 청했다. 지금 상태로는 다음날 병원에 가는 것도 혼자서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친구는 금방 와주었고, 처음 내 느낌에 대해 터놓고 말할 수 있었다.  우리는 '내일 병원에 가보면 다 해결될 것'이란 희망을 갖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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