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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MTD Apr 24. 2022

길랑바레 증후군 진단을 받다

   다음날 일어났을 때 왼팔이 어제보다 더 악화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손으로 그나마 할 수 있었던 것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 친구의 도움으로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먼저 가까운 동네 정형외과로 갔다. 당시 생각으로는 일시적인 마비 정도로 생각했기에, 디스크가 원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께서는 팔을 들어 올려보기도 하고 목을 눌러보기도 했지만, 고개를 갸웃거리시며 '큰 병원에 가셔서 검사해 보셔야 할 것 같다'라고 했다. 디스크라면 통증이 있어야 할 텐데 그게 아니니 잘 모르겠다고 하였다. 결국 다시 택시를 타고 추천받은 병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만난 의사 선생님은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한 가지는 뇌의 문제일 수 있고, 그게 아니라면 디스크 문제라고 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이때가 가장 두려웠던 순간이었던 거 같다.  제발 디스크이길 바랐다. 먼저는 젊기 때문에 가능성이 높은 디스크를 확인해 보려고 경추 mri를 찍어보자고 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거대한 기계에 들어가서 시끄러운 소리를 견디며 촬영을 마치고 결과를 기다렸다. 경추 mri 사진을 보며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깨끗하네요" 경추 디스크는 신경을 전혀 건드리고 있지 않았다. 남은 한 가지 가능성, 뇌의 문제라는 생각에 두려움은 더 커져만 갔다. 

   

   나는 척추관절과 에서 뇌신경과로 인계되어서 뇌 mri를 한 번 더 찍어야 했다. '내 머리에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뇌에 무슨 문제가 있지?' 등 많은 걱정과 두려움에 압도당했다. 뇌신경과 의사 선생님은 mri 결과를 보고 갸우뚱해하며 말했다. "깨끗하네요" 혼란스러움과 안도감이 동시에 들었다. 뇌에 염증이나 문제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럼 뭐가 문제길래 내 팔이 이러지? 일단 확실히 뇌 문제는 아니란 거지?' 하며 그다음 말을 기다렸다.  갑자기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손가락 끝을 쳐다보라 하며 좌우로 움직였다. 또 '오늘 날씨가 좋습니다'를 똑같이 따라 말해 보라고 했다. 내 인지능력에 문제가 생긴 건지 확인해 보는 것 같아 황당했지만 여전히 두려웠다. 'mri로 잡히지 않는 뇌의 문제를 알아보는 중인 건가?' 생각했다. 그 외에도 한 발로 서서 버티는 것, 점프하는 것 등 을 시켜보았다. 그때 처음 나의 다리 근력도 정상이 아니란 것을 느꼈다. 그러고는 '길랑 바레 증후군'일 수도 있고 말했다.


   기차에서 오가며 검색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팔 마비', '팔이 들어 올려지지 않음' 등 검색했을 때 지나가면서 봤던 단어였다. 이 길랑바레 증후군으로 인해 본격적인 마비가 시작되기 이전에 선행하는 증상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소화기관의 증상이다. 토를 하거나 장염, 배탈, 설사를 하는 등 1-2주에 앞서 이러한 증상들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머릿속으로 지지난 주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나는 4~5일간 계속 설사를 했었다. 장이 예민한 편이고 화장실을 자주 가는 편이라 '이번엔 좀 오래 가네'라고만 생각했다. 당시에 배탈이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어서 약국에 들렀을 때 약사님도 그 정도로 오래가면 병원을 가보라고 했지만, 그 얘기를 듣지 않았었다. 약과 죽을 먹으며 증상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인터넷 백과사전이나, 의사들이 전형적으로 말하는 증상 외에 나만 겪은 특이한 증상도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설사가 멈춘 이후, 마비 증상이 생기기 이전 그 중간에 있었던 증상이다. 손을 씻으려고 찬물에 손을 갖다 댔을 때, 손바닥과 손등 전체가 쫘악 쥐가 퍼지는 느낌이 났다. 살면서 손바닥에 쥐가 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생소한 느낌이었다. 마치 그 느낌은 어릴 때 '손에 전기 통하게 하는 놀이'와 비슷했다. 그 놀이는 피가 돌아오면서 1-2초 정도 살짝 저릿한 느낌이 나지만 내가 그때 느낀 것은 최소한 3분 이상 지속되었었다. 이와 비슷한 것이 배추김치를 썰기 위해 차가운 김치를 손으로 잡은 순간 손바닥에 쥐가 쫘악 퍼졌다. 또 다른 날은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입안과 혀 전체가 쥐가 나고 저릿한 느낌이 퍼졌다. 그리고 첫 마비가 시작되기 전날 밤에는 11월 말 쌀쌀한 바람을 맞았는데 귀와 코끝과 입술도 저리는 느낌이 있었다. 공통적인 것은 신체의 끝부분이 차가운 감각을 느꼈을 때 저리는 반응이 꽤 오래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몸에서는 어떤 작용들이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것 같다.

   

   의사 선생님의 말과 내가 겪은 여러 가지 정황들을 따져봤을 때, 길랑-바레 증후군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의사 선생님은 몇 가지 이유로 확실한 진단은 아직 어렵다고 했다. '길랑 바레는 끝에서부터 마비가 온다, 좌우 대칭적으로 온다, 감각기능과 운동기능이 같이 떨어진다' 등의 이유가 내 증상과 딱 맞지는 않다는 거다. 나는 오른쪽 팔 마비가 강하게 오고, 왼팔은 서서히 오는 중이었다. 통각이나 차갑고 뜨거운 것을 느끼는 감각기능은 정상이었다. 확실히 하려면 결국 근전도 검사를 해봐야 하는 데, 그것엔 다음과 같은 순서 때문이다. 팔이 움직이기 위해서 먼저 뇌에서 신호를 보내고 그것이 중추신경을 타고 척추로 와서 팔근육에 붙어있는 말초신경계로 전달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뇌, 중추신경이 다 문제가 없다면 각 개별 근육으로 온몸에 퍼져있는 최종 전기 줄인 말초신경계에 연결이 끊어졌을 가능성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여기는 대학병원이 아니라 길랑 바레에 대한 치료제인 '면역글로불린'이 구비되어 있지도 않고, 근전도 검사는 예약자가 많아 당일에 진행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입원하기까지 정확히 어떤 사고들을 거쳐 일들이 진행됐는지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러 변수들이 있었다. 입원해서 여러 가지 검사들을 받아보는 게 좋지만 코로나로 인해 음성 판독을 받고 나서야 다음 날에 입원할 자격은 갖춰지지만, 코로나 환자로 모든 대학병원들은 병상이 모자랐다. 또한 입원한다 하더라도 내가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보니 24시간 상주하는 보호자가 필요했다. 더 이상 나 혼자서만 결정할 수는 없었기에,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고 '팔이 걱정스럽긴 해도 뇌 문제는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부모님을 기다렸다.


   어떤 사고나 사건을 당했을 때 왜?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특히 질병일 경우는 병의 원인이 궁금하다. 그런데 보통 증후군(신드롬)이라고 이름 붙은 것들은 정확한 원인이나 인과성이 불투명할 때 쓰이는 용어라고 한다. 길랑바레 증후군은 자가면역질환이다. 면역체계는 외부에서 들어온 바이러스를 찾아내고 사멸시켜 병으로부터 신체를 지켜준다. 그러나 면역계가 어떤 원인 모를 이유로 인해 자신의 신체 조직을 외부 세포로 인식하여 공격하는 것이 자가면역질환이다. 내 면역계가 왜 하필이면 팔의 신경세포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공격이 더 심해져서 팔, 다리를 넘어서 생명과 직결된 호흡근을 공격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코로나 백신의 부작용일 수도 있고, 음식을 통한 바이러스의 감염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당장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밥 먹는 것, 씻는 것, 화장실에 가는 것, 자려고 누우려는 것. 그리고 이것이 회복되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지 예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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