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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tainer 도은 Apr 29. 2024

시어머님과 함께일본온천여행 후 얻은 가족 간의 화합

사람의 마음도 열어주는 가족여행

오빠를 교제를 시작한 후 어머님께 처음 인사드리러 간 날, 

어쩌다보니 오빠의 어머님께서 최근에 친구분들과 얘기 나눈 내용을 들었다. 


"여권만들어 놓고 8년이 다 지나가는데 아직 한번도 해외여행을 못가봤어"


집으로 와서 오빠를 따라다니며 계속 졸랐다.

어머님 모시고 해외여행 다녀오자고.

그래서 오빠와의 첫 해외여행은 어머님 모시고 간 5박 6일 다낭 여행이었다. 


마흔을 훌쩍 넘어 연애를 시작하니 주위 많은 분들로부터 축하와 기대를 받고 있었는데, 

시어머님 되실 분 모시고 여행을 간다는 얘기를 했더니 친구들이 하나같이 말렸다.


"넌 지금 니가 니 무덤을 스스로 파고 있는거야"

"한번 따라 가고 나면 앞으로 계속 따라 다니려고 할건데, 이제 어떻게 할거니?"

"두 사람이서 좋은 기분 느끼는거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인데, 왜 굳이 같이 가려고 해?"

.....


친구들 마음을 이해 못하는건 아니지만, 짧은 시간 서로를 알게 되는 좋은 기회이기에 강행했다.

그리고 친구들 생각과 달리 우리는 아주 즐겁게 잘 다녀왔다. 

나의 가장 큰 소득은 시머님을 이해하게 된 것이었고,

시어머님의 큰 소득은 나는 안심해도 되는 사람이며, 오빠와 사이가 좋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었다.

오빠의 큰 소득은 상반된 성격을 가진 어머님 밑에서 자라난 환경을 나로부터 크게 공감을 받은 것이었다. 

나로부터 공감을 받은 오빠는 크게 나에게 고마워했고, 우리는 더 큰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오빠와의 교제가 더 깊어지면서 우리는 자연스레 다음여행으로 신혼여행을 계획했다. 

크루즈로 서지중해를 한바퀴 돌고, 바르셀로나, 로마, 이스탄불, 일본에서 몇일씩 보내는 일정이었다. 

난 이번에는 양가부모님을 모시고 가자고 했다.

양가부모님께서도 벌써 칠순이 다 되시니 우리가 언제 부모님 모시고 지중해 크루즈를 타게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정아버지께서 하던 일을 두고 갈 수 없다고 완강히 반대하셨다. 

그래서 나는 시어머니만 모셔도 좋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빠가 반대했다. 평생후회할 여행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래서 우리는 유럽은 우리끼리 다녀오고, 일본으로 갈때 모시고 가기로 약속했다.


일본여행은 매일 새로운 좋은 온천을 찾아가는 코스로 짰다. 

내가 온천을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어머님과 같이 목욕하다보면 더 친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아들의 엄마로서 딸이 없으셨으니 이런 시간을 그리워하셨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얼굴은 시원하고 몸음 따뜻한 노천온천탕 속에서 

하루는 오다이바에서 도쿄타워를 보며, 하루는 후지산을 바라보며, 

이제까시 살아오신 삶에 대해, 사람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후지산(3,776m)이라는, 대략 한라산(1,947m) 2배 높이의 산 속 곳곳에는 료칸이 많았는데,

대자연 속에서 편안하게 휴식하며 맛있는 식사과 온천, 트렉킹을 즐기다보니 기분이 퍽 상쾌했다. 

서로의 마음이 저절로 열리는 것 같았다.

어머님께서도 전체 여정중에 후지산을 보며 온천욕을 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좋았다고 하셨다.

그렇게 더 친해지니 시어머님의 말하기 습관이 나에게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 "오빠, 나 아이스크림 사줘!"

시어머님: "추운데 얼어죽을 일 있어? 뭔놈의 아이스크림은 아이스크림이여!"


나: "어머님, 이 근처에 유명한 회전스시집이 있다고 하는데 한번 경험해보시겠어요?"

시어머님: "또 먹을려고 그래? 좀전에 저녁 먹었쟎아? 스시는 또 뭔놈의 스시야?"


나는 일정을 짜고 통역을 하다보면 시어머님의 의향을 종종 물어보게 되는데,

시어머님은 습관처럼 묻는 말에 대답 대신 야단치는 말투를 들려주셨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그 강도가 세어지니 자연스럽게 나도 말수가 줄었다.


귀국을 하루 앞둔 날부터는 하루종일 가이드로서 꼭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았다.

내 기분이 안좋았는데 시어머님께서는 알아차리지 못하셨다.

이런 기분으로 내일 귀국한다면 앞으로 시어머님과 교류를 하지 않게 될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은 시어머님도 나도 원하는 결과가 아닐 것이었다.


오빠도 아들로서 불편한게 있었는데, 시어머님께서 당신은 챙기지 않고 늘 아들을 지극히 챙기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시어머님께서 고등어정식을 주문하면 응당 메인요리인 고등어는 시어머님께서 드셔야 하는데,

어머님께서는 고등어는 아들 앞에 놓아 주고, 짱아찌, 미소된장국과 밥을 드시는 것이다.

아들로서는 어디에서나 이런 모습을 보이시는 어머님이 늘 불편했다. 


나의 말수가 줄어든 그 날 저녁은 회전스시집에서 먹었다.

2시간의 웨이팅 끝에 식사시간을 넘겨 자리를 잡으니 어머님께서 적극적으로 레일위에 놓여있는 스시 그릇을 아들 앞으로 옮겨두셨다. 아들앞에 접시가 쌓여갔다. 그리고 내 앞은 비교적 썰렁했다. 

오빠로서는 하루종일 말이 없는 나를 위로해주려고 회전스시집에 왔는데, 여기서도 이런 광경이 펼쳐지니 어머님께 한마디 안할수가 없었다.


오빠: "엄마, 은주 좀 챙겨줘! 우리 은주 없었으면 여기 못왔어!"

시어머님: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 장가못가서 속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정적 간다니까 해도 이렇게 속상한 마음이 드는데, 너까지 그런말을 하면 어떻게 해..."

나: "아, 어머님, 많이 속상하셨겠어요. 괜찮아, 오빠. 나도 귀한 딸이고, 나도 나를 사랑해주는 부모있어"

시어머님: "너는 아빠엄마한테 사랑받지만, 얘는 아빠가 없어. 얼마나 불쌍하니"

나: "어머님, 저 되게 눈 높아요. 오빠 정말 훌륭한 사람이에요. 제 이상형이에요. 오빠 하나도 안불쌍해요. 오빠는 진짜 멋지도 마음도 따뜻한 사람이에요"


오빠가 내일 모레 50을 앞두고 있고, 사고로 아버지를 여읜것이 10년전인데, 시어머님께서 오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알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시어머님께서는 외국어 4개를 구사하는 교수가 며느리로 들어왔다고 주위에 자랑하곤 하셨는데, 그런 내가 그렇게 오빠를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에 안심하시는 거 같았다. 


나: "어머님, 근데 이제 우리가 못먹고 사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우리가 필요한건 잘먹는게 아니고 영혼에 힘이 되어주는 말이더라구요. 몸에 좋은 거 먹어도 야단맞으면 기운이 빠져요. 칭찬하고 격려해주시면 힘이 생기고요."


그러면서 내가 왜 속상했는지를 얘기했다. 

얘기하지 않고서는 시어머님은 내가 속상한지도 모르고, 왜 속상한지도 모르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시어머님께서도 습관적인 말투였을 뿐, 나를 속상하게 하려는 의도는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나: "어머님이 나쁘다는게 아니에요. 전 어머님을 정말 충분히 이해해요. 이제까지 그런 말을 들으며 살아오셔서 그렇잖아요. 그런데 저는 부모와 타지에서 살면서, 오랬만에 전화했는데 부모님께서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나열하면서 걱정하고, 하고 싶은거 하려고 하면 부정적인 결과를 얘기하면서 못하게 하고... 그러니까 부모님와 얘기하고 나면 힘이 빠지더라구요. 그러니까 저절로 얘기 안하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코로나때 처음으로 가족이 2주동안 같이 지내게 되면서 집을 고쳐야하는 일이 생겼는데, 제가 먼저 진심으로 배겨하는 말과 칭찬과 감탄, 감사를 쏟아붓기 시작했어요.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면서 일을하니까 안되던 일도 잘되기 시작하는거에요. 즐거운거예요. 그러니까 가족이 더 끈끈해지고 친해지는거에요."


시어머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 "여기 일본에서는 이런 말이 있어요. '말의 생명은 사랑에 있다'. 저는 '사랑'이 담긴 말은 상대를 기분 좋게 해주는 말, 상대에게 힘이 되어주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상대에 대한 사랑이 담긴 말이 아니면 꺼내지 않아요. 저도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연습하다보니 되더라구요."


말없이 고개를 진중히 끄덕이시던 시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시어머님: 나는 시어머니노릇 안하는 시어머니가 되려고 했었는데, 결국 소외감 주고 야단치고... 시어머니 노릇을 한게 되어버렸네. 그래. 내가 노력할께. 대신 한번에 바뀌길 바라지 마. 잘 안 될 수 있어.


시어머님은 훌륭하셨다. 

'어딜 가르치려 들어?'라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바로 나의 감정와 의견에 인정하고 노력하실것을 약속하셨다.  


나: 물론이죠 어머님. 그리고 하나 더 있어요. 식사하실때 맛있는 반찬 계속 아들 앞으로 이동하시지말고 어머님께서도 맛있는거 드셨으면 좋겠어요. 저희는 어머님도 같이 좋았으면 좋겠어요. 어머님께서 안드시면 우리는 마음이 너무너무 불편해요. 어머님께서 맛있는거 드시는거 보면 우리도 좋아요. 같이 좋았으면 좋겠어요."

시어머님: (오빠를 바라보며) 그러니?

오빠: 그렇죠.


오빠는 깜짝 놀랐다. 평생 그렇게 하고 싶었던 얘기를 여기서 하게 되고, 시어머님께서는 이렇게 흔쾌히 수용하실지 몰랐기 때문이다. 나도 어머님과도 오빠와도 마음이 통한거 같아 기분이 참 좋았다.


나: 어머님, 아들을 잃은게 아니라 딸 하나 더 생긴다고 생각해주세요. 목욕탕에 또 같이 가요!


여행은 이렇게 20-30년이 지나도 알 수 없는 것들을 알 수 있게 하고, 할 수 없던 말들을 할 수 있게 한다.

시어머님과 함께 온천여행오기 참 잘했다.

우리가 원하는 어머님의 모습을 진심으로 신나게 얘기하기 참 잘했다.

내 마음속에 속상한 얘기 툭 털어놓기 참 잘했다.


가끔씩 어머님 댁에 가면 쇼파 옆에 볼펜으로 써 둔 메모가 보인다.

"칭찬한다. 칭찬한다. 칭찬한다."

이미 세상의 모든 칭찬을 받은 것 만큼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나는 단 한순간도 시어머님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시어머님이 바뀌어야만 한다고 기대한 것도 아니다. 

다만 시어머님께서 바뀌시니 시어머님은 더 많이 웃는 사람이 되셨다.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한번도 안보내시던 분이 지금은 하트를 뿅뿅 아낌없이 날리는 분이 되셨다.


그러다보니 나도 자연스레 맛있는거 해먹을 때 마다 시어머님이 생각한다.

나: 오빠, 이거 맛있지? 우리 어머님 모시고 이 요리 해드릴까? 

오빠: 그래~


삶의 재미가 찰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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