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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리곰 Jul 19. 2022

첫 개발자가 나갔다.

회사 생활 

개발자가 나갔다.


 5개월 만에 어렵게 뽑은 첫 개발자가 입사 3주 만에 난데없이 카톡으로 퇴사를 선언했다.

요약하자면 주말에도 가족 병간호하며 일했는데 일 안 한 사람 취급해서 자존심 상해서 그만둔다는 것이다.

월요일 아침부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나? 이때부터 최근의 대화 내용을 곱씹으며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하지만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가족의 병환으로 근 이주 동안 매주 월, 화 4일을 출근할 수 없어서 인사담당자가 행정처리를 위해 병원 진단서를 요청한 것에 대해 상처를 받았다는 것이다. 전달하는 과정에서 기분 상할 만한 이야기를 한 걸까. 거짓말하고 출근 안 한다고 회사가 의심을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유야 어떻든 저렇게 카톡으로 성급하게 퇴사를 한다는 것에 회사 분위기는 다운되었다. 잠시 후 개발 책임자인 나에게 전화가 왔다. 어찌 되었든 얼굴 보고 오해를 푸는 게 회사나 당사자 서로에게 좋지 않겠냐고 설득했다. 다행히 저녁에 지방에서 올라온다며 내일 회사에 출근한다고 했다. 어떻게 이 상황을 풀어나가야 할까. 그는 퇴사 이유를 이야기할 거고 난 되도록 오해를 풀도록 노력할 거고 그러다 보면 단순한 오해로 무리 없이 잘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회사에서는 끝까지 규정상 결근에 대한 서류를 요구할 텐데 거부한다면... 하지만 기분은 좀 상하더라도 서로 오해가 풀린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거부할 이유는 없다.


 스타트업은 사람 뽑기가 정말 힘들다. 자금 문제로 일주일에 수백만원하는 구인 사이트에 메인으로 공고를 올릴 수도 없고 인재 검색과 개별 연락의 무한 반복을 거친다. 한 30번 인터뷰 요청을 보내도 한두 명 반응이 올까 말까다. 이 개발자는 처음으로 면접관 5명 전원이 합격점을 주었다. 관련 분야에 전문성이 느껴졌고 이야기하는 게 차분했으며 상대에 대한 배려심도 느껴졌다. 비록 과거에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있었지만 대표는 회사에 들어와 서로 잘 되었으면 좋겠다며 첫 번째 구직 성공에 기뻐했다.

 

 다음날 면담이 이루어졌다. 원래는 내가 먼저 자초지종을 들으려 했지만 차가 막혀 늦는 바람에 대표가 면담을 진행했다. 잠시 후 사무실로 들어온 개발자는 어두운 표정으로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담당자는 착잡한 듯 자리에 앉으며 계약을 해지하게 되었다고 알려주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사정을 듣고 싶어 개발자와 커피 한잔하자고 권했지만 그는 그럴 시간 없다며 돌아섰다. 아버님은 어떠시냐고 물어도 단호하게 이제 관여할 일이 아니라 했다. 그렇지. 내가 더 이상 관여할 일이 아니지... 그는 그렇게 회사를 떠났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회사는 서류를 제출하면 연차에서 제하지 않고 업무를 조율해 앞으로 병간호에 있을 결근을 최대한 배려해준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관련 서류는 절대로 못주며 으로 발생할 기존 월차에서 제하면 되지 왜 이걸 요구하는지 모르겠다고 언성을 높였다고 한다. 이건 어떤 경우지? 회사가 최대한 배려를 해준다는 데 왜 서류 한 장 못준다는 건지... 의심한다고 생각하고 마음이 많이 상해서 그런 건가. 정 섭섭해한다면 증빙서류를 내밀고 사람 함부로 의심하는 게 아니라며 나중이라도 서운한 마음을 이야기하고 풀면 될 것이다. 이렇게 내지르고 퇴사하는 게 맞는건가. 그렇게 쉽게 그런 결정을 한다는 자체가 너무 경솔한 태도로 보였다. 프리랜서를 오래 해서 다른 외주 일을 하느라 빠질 수가 없는 상황을 가족의 병환으로 핑계를 댄 걸까. 어찌 되었든 회사와 그와의 신뢰 관계는 이날로 깨졌다. 3주 동안 일한 날짜는 단 8일. 하루는 자기의 병가, 나머지는 4일은 가족 병환. 잠시 후 나에게 일한 8일의 급여는 꼭 달라는 카톡이 왔다. 이 날 대표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정신적 대미지는 상당했다. 스타트업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역할이 중하고 귀한데... 대표는 이 날 멘탈너덜너덜해졌다.


 가족의 병환은 사실이었고 서류 요구에 기분이 많이 상해서 그럴 것이라 믿고 싶다. 하지만 솔직히 한편으로는 거짓일 수도 있다는 의심은 지울 수 없다. 서류 제출이 그리 어려운가... 그래도 아닐 거야... 감정이 상해서 그럴 거야... 믿자... 일을 해야 하는데 하루 종일 쳇바퀴 돌 듯 이런 잡념들이 맴돌았다.


 아무튼 오늘은 일하기 글렀고 내일을 위해서라도 할 수만 있다면 이 일은 메모리에서 날려버리고 싶다. 앞으로 개발자를 더 뽑아야 하는데 첫 단추가 허무하게 떨어져 나갔다. 또 인재 서칭하며 인터뷰하고... 지겹다. 아... 언제 다른 잘 나가는 회사처럼 지원자들의 풍요 속에 빠져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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