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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녀미 Jan 27. 2020

'작은 공'에게 보내는 편지

2019.08.11, 작은 몸으로 고양이 별에 돌아간 작은 공에게 쓰다.

아가, 고양이별에 잘 도착했니? 그 곳엔 네 엄마나 형제자매들이 있었니? 

누구라도 거기서 반갑게 너를 맞아주었으면 좋겠다. 


이 곳에서 너무나 적게 환영받고 적게 사랑받고 적게 가져본 너이기에. 

엄마와 함께하는 아늑하고 안전한 시간도, 눈물 그렁그렁 맺혀가며 먹을 맛있는 맘마도, 

흔하디 흔한 장난감이나 상자도 제대로 가져보지 못하고 길에서 태어나고 

수조와 리빙박스에서 자라다 다시 수조에서 떠나버린 네가, 

고양이 별 그 곳에서는 고양이가 먹을 수 있는 것 중 가장 좋은 것을 먹고, 

가질 수 있는 것 중 가장 좋은 것을 가지고. 무엇보다도 심심하거나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 엄마는 아직도 이 곳 어디에선가 또 임신과 출산을 반복할 준비를 하고 있을지, 

아니면 구조되어 수술을 받고 이제 다시 아기고양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그 곳에 함께 있다면 네가 엄마 품 속에서 쿨쿨 자고, 자주 자주 젖을 먹고, 

엄마의 보살핌을 충분히 받아서 얼른 여느 아기 고양이들처럼 토실토실해지고 

배가 땅에 끌리도록 볼록 나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볼록 나온 배를 하고도 젖을 더 달라고 빽빽 울어대면 엄마가 또 너를 핥아주고, 품어주고. 

그런 시간들이 네 하루를 채웠으면 좋겠댜. 

나무 젓가락처럼 가느다란 팔과 다리로 돌아갔지만 건강해져서 엄마 품에서 꾹꾹이도 많이 했으면 좋겠다. 


갓 태어난 때와 비슷한 무게로 그 곳에 갔으니 이 곳에서의 시간은 다 잊고 그 곳에서 태어난 것 처럼 살기를. 

차가운 길바닥와 숨을 곳이라곤 없는 유리 수조의 인형 엄마, 고무 젖꼭지와 비닐장갑을 낀 손, 

억지로 약을 먹이던 주사기의 촉감과 혼자 남겨진 외로움을 모두 다 잊고 그 곳에서는 행복하기만 하렴. 

그러다 문득 너무 심심해져서 여기로 다시 오게 되거든 인생 2회차 고양이의 당당함을 가지고 건강한 몸으로,

한껏 사랑받을 준비를 하고 다시 이 곳으로 오렴.

네가 우리를 기억하지 못해도 알아차리지 못해도 우리가 널 만나러 갈게. 


그때는 우리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자. 




- 작은 공 (남자아이)

2019년 7월 17일에 태어나 24일에 0.3lbs 로 구조, 8월 4일에 임보처로 오고

8월 11일, 다시 고양이별로 돌아가다. 

태어난 지 24일이 넘은 4주차 아기고양이 였음에도 130그람의 작은 몸으로 간신히 세상을 견디다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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