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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녀미 Dec 18. 2019

내 몸과 마음에 대한 알아차림

순간순간 숨을 고르며 몸이 보내는 신호, 마음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인다.

 삶을 돌보는 밀레니얼 여성들의 베이스캠프 WOMEN'S BASECAMP를 시작하며, 녀미, 지은, 하늬가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보았습니다. LA에 살고있는 저희의 일상, 첫 캠핑의 추억, 건강한 삶을 위한 루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늦게 자고 일어나거나 밤을 새더라도, 매일 밤마다 야식을 먹더라도, 
지금 내 몸이 어떤 신호를 보내는지 알아차리고 보살핀다면, 
내 머리와 마음속에 어떤 생각과 감정이 머무는지 중간중간 물러서서 지켜볼 수 있다면 건강한 삶의 범주에 든다고 생각해요.



- 내가 생각하는 '건강한 삶'이란?


 규칙적인 생활과 꾸준한 운동, 건강하고 소박한 식사 등 '건강한 삶'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지만 제가 늘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알아차림' 이예요. 다른 말로는 '깨어있음'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내 몸과 마음의 상태가 어떠한지 살피고 알아차리는 것이 건강한 삶의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늦게 자고 일어나거나 밤을 새더라도, 매일 밤마다 야식을 먹더라도 지금 내 몸이 어떤 신호를 보내는지 알아차리고 보살핀다면, 내 머리와 마음속에 어떤 생각과 감정이 머무는지 중간중간 물러서서 지켜볼 수 있다면 건강한 삶의 범주에 든다고 생각해요. 반대로 아침 일찍 일어나 요가와 명상을 하고 신선한 채소와 통곡물, 양질의 단백질을 섭취한다고 해도 그것이 강박이 되거나 자신의 건강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것(타인이나 사회적 요구, 보여주는 일을 위한 것 등) 일 경우에는 그것이 건강한 삶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지 않을까요? 저도 운동을 잘하고 싶은 마음에 채소와 닭고기를 적당히 배가 찰 때까지만 먹고 매일 두 시간 이상 운동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런 방식의 삶을 오래 유지하는 것이 저에게는 버거웠고 스트레스가 되었어요. 


늘 그렇듯 균형과 조화로움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역시 그것들이 가장 어려운 저는 요즘 제 몸의 세포들이 기겁을 하지 않는 선에서, 마음도 적당히 여유로운 정도의 생활을 유지하려 하고 있답니다. 


일상 속 소소한 힐링이 되어주는 베란다 텃밭



- 첫 캠핑에 대한 기억은? 


유치원을 다닐 무렵이었고 팬티만 입고 냇가에서 수영을 해도 부끄러운 줄 몰랐던 걸 보면 여섯 살 무렵이었나 봐요. 부모님과 친척 언니, 동생과 함께 다섯이 어느 계곡에서 '야영'을 했어요. 캠핑이라는 단어도 생소한 시절이었죠. 지금과는 달리 아주 무거운 텐트와 코펠, 이불, 부루스타 등 일상생활에서 쓰는 물건들을 가지고 떠난 그 계곡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렀던 것 같아요. 

 낮에는 계곡에서 온종일 물놀이를 하고 밤에는 모닥불 앞에서 노래도 부르고 율동을 했던 기억이 나요. 엄마와 함께 수건으로 송사리를 잡고, 불을 피우는 아빠 얼굴이 주황빛으로 보였던 기억도요. 


친척 언니와 함께 온종일 물놀이와 모래놀이를 했던 나의 첫 캠핑



- 캠핑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기보다는 좋아하는 순간인데요, 저와 남편은 스무 살에 별을 보다 만났고 그 이후로도 별을 보며 연애해서 여전히 캠핑도 별 보기에 중점을 두고 장소를 찾아서 다녀요. 하지만 캠핑을 가서는 낮에도 할 일이 많다 보니 밤에 피곤해지는 일이 많아서 저녁을 먹고 해가 진 뒤에 별들이 뜨기까지 한두 시간 저녁잠을 자곤 하는데, 아늑한 텐트에서 잠을 자다 밤열시쯤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 텐트 문을 열면 늘 신발을 신기도 전에 하늘부터 확인해요. 눈에 보이는 하늘 전부에 별이 촘촘히 박혀있어서 잠이 확 달아나고 가슴이 두근거려요.

 

 캠핑을 많이 다녔지만 늘 별 하늘 아래의 순간들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낯선 지형과 풍경 속에서 익숙한 별자리들이 떠오르고 지고, 그 별들 아래에서 시간을 보내요. 주로 사진 촬영을 하거나 망원경으로 관측을 하지만 때로는 그냥 라면을 끓여 먹고 책도 보고 누워있기만 해도 그 시간은 너무나 충만해요. 한참 별을 보다가 해가 밝아올 무렵 잘 준비를 하고 텐트에 들어가 옷을 벗고 침낭 안에 들어가 누우면 피곤과 만족감에 온 몸이 녹아내리는 느낌이구요. 서서히 밝아오는 텐트 안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자는 아침잠은 정말 최고로 달달해서 절대 포기할 수가 없어요.   


아늑한 텐트에서 잠을 자다 밤열시쯤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 텐트 문을 열면 
늘 신발을 신기도 전에 하늘부터 확인해요. 
눈에 보이는 하늘 전부에 별이 촘촘히 박혀있어서
잠이 확 달아나고 가슴이 두근거려요. 


캠프그라운드 위로 서서히 은하수가 뜨고 지며 밤이 흘러간다



- 캠퍼로서의 로망이 있다면?

 안자 보레고 Anza-Borrego 지역에 비가 많이 내린 후 캠핑을 간 적이 있었어요. 도로가 망가진 곳도 많고 비포장도로 위로 물길이 생겨 얕은 강을 차로 건너야 하니 차체가 높고 4륜 구동인 차량만 다닐 수 있다고 해서 걱정을 안고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중간부터 더 가지 못하고 돌아 나오는 차 들이 꽤 많이 보였죠. 오프로드 구간의 3분의 2쯤 갔을 때 눈 앞에 높은 모래언덕이 나타났어요. 남편도 그런 지형은 운전해 본 적이 없어서 겁을 먹고 있는데 주위의 다른 차(서너 대가 다 지프였어요...!)에서 사람들이 내리더니 '저희에게 그 길을 오르는 법을 코칭해주시는 거예요. '살짝 후진해서 핸들을 왼쪽으로 최대한 돌리고 액셀을 밟아' 하는 식으로요. 중간중간 바퀴가 헛돌았지만 그분들의 세심한 지도(?)로 그 언덕을 오를 수 있었어요. 


 돌아오는 길에도 어느 차가 모래 구덩이에 빠져 바퀴가 헛돌고 있었는데 주위에서 다른 차주 분이 '이런 일은 너무나 익숙하다'는 듯이 트렁크에서 차 견인용 와이어를 꺼내 연결하고는 그 차를 구해줬죠. 그 언덕 주위는 마치 '오프로드 초짜들을 구출하는 지프 차주 정기모임' 행사 같았어요. 저도 언젠가는 오프로드를 능숙하게 운전하고 다른 운전자 코칭도 해주고, 다른 차가 위기에 빠지면 와이어를 연결해 구출해주는! 그런 멋진 캠퍼가 되고 싶어요. (그런데 아직 운전면허도 없으니.. 로망은 로망일 뿐이죠..)


처음으로 오프로드를 달려 도착한 곳. 캠프그라운드라고 할 것도 없이 황량하고 고요했던 사막



- 클라이밍을 시작하게 된 계기


5년 전쯤에는 한국에 살고 있었고 동네에서 복싱 체육관에 다니고 있었어요. 한참 운동에 재미가 붙어서 또 다른 운동을 해볼 게 없나 하고 물색하던 중에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시립 체육관 앞의 높은 벽에 알록달록한 돌멩이(?) 같은 것들이 붙어있고 줄에 매달린 사람들이 그걸 오르고 있는 모습을 봤어요. 어쩐지 흥미가 생겨서 알아보고 체험 강습을 받아본 게 시작이 되어 멤버십 등록을 했고 그 후로 몇 달은 자면서도 클라이밍 꿈을 꿨던 것 같아요. 



클라이밍이 저에게 집중을 강요한다는 점이 좋아요.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복잡하다가도 스타트 홀드를 잡고 
두 발이 매트에서 떨어지는 순간부터는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


- 내가 생각하는 클라이밍의 매력

클라이밍이 저에게 집중을 강요한다는 점이 좋아요.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복잡하다가도 스타트 홀드를 잡고 두 발이 매트에서 떨어지는 순간부터는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 무조건 내가 잡고 발 디딜 홀드, 해야 할 무브에만 온 신경이 집중되는 기분이 들어요. 웨이트나 요가, 러닝도 좋아하지만 잡생각이 많아질 때에는 운동 중에도 운동에 집중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는데 클라이밍을 할 때는 높이에 대한 긴장 때문인지 훨씬 쉽게 몰입하게 되는 것 같아요. 


스토니 포인트 Stony Point에서의 아웃도어 볼더링


- 관심이 가는 다른 운동이 있다면?

 한국에 갔을 때 잠깐 배웠던 폴댄스/폴피트니스를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클라이밍을 해온 덕분인지 좋은 상체 근력 덕분에 힘이 필요한 테크닉은 쉽게 하는 편이었는데 아무래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예쁜 표정이나, 댄스를 해야 하는 건 너무 민망하더라고요. 또 피부가 두껍고 건조한 편이라 폴에 살이 밀리는데서 오는 통증에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었는데 몇 달쯤 하면 익숙해진다고 해서 한번 그렇게 될 때까지는 해보고 싶어요. 마지막 수업 때 슈퍼맨 자세를 하면서 너무 아파서 '선생님 제발 내려주세요 짬뽕 먹고 싶어요' 하며 거의 울다시피 하고 내려온 기억이 있네요. 

 클라이밍이 온전히 내 근력으로 중력에 맞서는 운동이라면 폴 댄싱은 원심력의 도움을 받아 멋진 자세들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 생활에서 나의 몸/마음 건강을 위해 지키는 나만의 룰/루틴이 있다면?


 아침잠이 많아서 아침에 침대에서 나오기가 너무 어려운데 그래도 몸의 작은 관절부터 움직이며 스트레칭을 하면 좀 나은 것 같아요. 요가를 하면서 배운 건데 요가 수업의 마무리에 사바사나(corpse pose 시체 자세)를 하고 나면 계속 그대로 누워있고 싶은데 손가락과 발가락, 손목과 발목, 턱, 목, 무릎 순서로 작은 관절부터 움직이면 결국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더라고요. 또 제가 웅크리고 자는 편이라 굳은 어깨와 목, 허리를 풀기 위해 차일드 포즈로 잠시 있다 일어나요. 아침에 스트레칭을 하면 하루의 시작을 잘 한 기분이 들어서 첫 끼니를 먹기 전에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또 술도 좋아하고 패스트푸드도 좋아하지만 몸이나 마음이 피곤하고 지쳐있을 때는 술은 먹지 않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든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해요. 지친 마음에 술이라도 한잔 하고 잠에 들고 싶은 마음, 피곤한데 한 끼 대충 때우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술에게서 받는 위로나 한 끼 때우는 개념으로 얻은 열량은 저에게 큰 힘이 되지 못하더라고요. 각자가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술을 먹지 않고, 고기와 밥을 잘 먹고 푹 자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 


장기 프로젝트 중 하나인 핸드 스탠드. 조금씩, 꾸준히 연습하기



거주지로써 LA에 대한 느낌을 표현한다면? 


 2017년 2월부터 이 곳에서 지내고 있어요. 그전까지는 쭉 한국에 살았고 앞으로도 쭉 그럴 생각이었는데 약 10년 전, 스무 살에 만난 남편이 하필이면 미국 유학을 앞두고 있었어요. 미국에 갈 거라는 걸 알고 사귀었고, 사귄 지 다섯 달 만에 유학생 신분이 되어 7년간 장거리 연애를 했어요.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남편이 학부는 동부에서 다녔지만 그 이후 과정을 이 곳 LA에서 하게 되었다는 점이죠. 뉴욕과 LA 둘 중에서 고민했는데 저는 비교할 것도 없이 LA가 더 좋다고 생각했어요. 뉴욕은 너무 추웠고... 너무 추웠거든요...! LA도 큰 도시이지만 뉴욕에 비해서는 좀 더 여유가 느껴지고 산과 바다를 자주 갈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무엇보다도 햇빛 쨍쨍한 날이 많고 한겨울에도 많이 춥지 않다는 점이 가장 좋아요. 제 친구가 말하기를 제가 중학교 때는 겨울마다 "난 겨울이 없는 나라에서 사는 게 꿈이야"라고 말했다는데, 거의 꿈을 이룬 셈이죠! 



- 지은, 하늬와 만나게 된 계기


 LA에 와서 함께 운동할 사람들을 찾던 중에 지은언니와 하늬 언니를 알게 되었어요. 남자들과 함께 운동하는 건 한계가 있어서 꾸준하게 같이 운동할 여자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운동 특성상 시작한 지 한두 달 만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고 자주는 아니어도 꾸준히 연락하며 같이 운동하고 얼굴을 보게 된 사이였어요. 대화를 하다 보니 묘하게 겹치는 관심사가 많았는데 마침 셋 다 캠핑 등의 아웃도어 활동을 좋아한다는 점도 비슷했어요. 미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캠핑을 즐기지만 각자가 캠핑을 즐기는 포인트들이 달라 그것들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고, 캠핑장비나 차량, 장거리 이동 등의 문제로 쉽게 캠핑에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분들과도 함께 캠핑을 즐기고 싶은 마음도 있어 장난처럼 '우리가 여자끼리 하는 캠핑을 주최해볼까?' 하고 나온 말이 하늬 언니의 불길과도 같은 추진력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큰 마음을 내기는 너무 어려우니까 작은 마음들을 모아 모아서, 
거기에 작은 마음을 하나 얹어서,
그 마음을 데굴데굴 굴려서 주위의 마음들을 더해 
어디던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는


WBC에게 기대하는 모습


 여러 가지 이유로 해보고 싶은 일들을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 엄두를 못 내거나, 미뤄두고 있거나,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작당모의를 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행 계획은 세워뒀는데 운전을 못하는 사람과, 운전은 너무 잘할 수 있는데 계획 짜자니 머리가 아픈 사람이 서로를 찾을 수 있는 곳이 되고 저는 거기에 살짝 끼어서 가는 사람이 되고 싶고요!(헤헤 농담입니다.) 처음부터 큰 마음을 내기는 너무 어려우니까 작은 마음들을 모아 모아서, 저도 거기에 작은 마음을 하나 얹어서 그 마음을 데굴데굴 굴려서 주위의 마음들을 더해 어디던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는. 그렇게 생겨난 여기저기로 향하는 길들을 언젠간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바라요. 어쩐지 너무 멋지고 큰 꿈인 것 같지만, 모든 멋진 일들은 작은 마음들로부터 시작되는 거,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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