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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녀미 Feb 11. 2020

은혜 갚은 호빵이

호빵이는 그 사랑스러운 얼굴을 내게 부비는걸로 은혜를 갚는다

한 시간에 한 번,
가느다란 1ml 주사기에 설탕물을 채워서
탁구공처럼 자그마한 호빵이의 머리를 꼭 붙잡고 억지로 먹였다



내가 어떤 삶에 이토록 큰 영향을 준 적이 있던가?

잠자는 호빵이를 보며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아니어도 호빵이는 잘 살고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냥 오늘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 

내가 죽어가는 호빵이를 살려내 이렇게 건강하게 키워냈다고. 

그러니까 나는 호빵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좋은 일 중 가장 훌륭한 일을 했으니까,

호빵이가 살아있고 이렇게 건강한 것만으로도 감사하니까, 그러니까 다시는 호빵이를 못 봐도 괜찮다고. 


아주 작았던 호빵이를 기억한다. 정말 호빵만큼 작았던 호빵이를. 


호빵이를 따로 옮겨둔 종이상자를 옆에 두고 한 시간 간격으로 설탕물을 먹이며 지새웠던 밤.


호빵이가 살아있는지 보려고, 설탕물을 먹이려고, 살아날 거라는 믿음을 잃지 않으려고 자꾸만 호빵이를 흔들어 깨웠다. 한 시간에 한 번, 가느다란 1ml 주사기에 설탕물을 채워서 탁구공처럼 자그마한 호빵이의 머리를 꼭 붙잡고 억지로 먹였다. 고작 1ml 중에서도 반은 먹고, 반은 뱉어내서 입가와 턱 아래에 온통 찐득한 설탕물이 말라붙었다. 


호빵이는 먹는 것 보다 더 많은 양을 설사로 내보내며 자꾸만 체중을 잃었고 나는 잠을 자고 일어나면 호빵이가 우리 곁에 없을까 봐 무서워서 온 집안의 벽장 정리를 하며 잠을 몰아내며 그 밤을 보냈다. 


식탁 옆 창을 통해 쏟아지는 오전의 햇살 속에서, 다시 젖병을 빠는 호빵이의 모습을 봤을 때의 감정이란.

절대 잊을 수 없을 그 순간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계속 작별인사를 한다. 


그때 호빵이와 헤어지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호빵이를 하늘나라가 아니라 다른 집으로 보내는 거라서 정말 다행이야.

자기 암시를 걸듯 호빵이를 다른 집으로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수백 번을 생각한다. 


호빵아, 내가 너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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